우승자에 대한 국가지원으로 인한 남부끄러운 모습
얼마 전 야구에서 한국이 태국과 경기할 때였다. 1루에 선 어느 태국 선수의 웃는 표정이 보는 사람 기분도 좋게 만들 정도로 너무 해맑아서 인상적이었다. 안타를 치고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남편이 설명하길, 세계적 수준의 한국 투수(아마도 미국 보스톤인지 어디 소속) 공을 쳤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조금 보니, 태국 선수들 표정이 다 밝았다. 어이 없는 점수 차로 지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마도 잘하기로 소문난 한국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게 된 것 자체를 행운으로 여기는 것 아닐까 싶었다. 신랑에게 물어보니, 태국팀 선수는 다 아마추어였다. 태국에서 야구는 비인기 종목이라 프로가 없다고 한다. 아마추어가 프로랑 경기를 하니, 그 입장에서 이기고 지는 게 뭔 상관이랴. 그냥 즐거울 수밖에.
다음날은 일본팀과의 경기였다. 이번에도 물었다. 일본 팀 저 선수들은 우리처럼 프로냐고. 아니란다. 일본 프로 선수는 아샨 게임에 관심 없다고 한다. 아샨 게임 출전한 그 선수들은 다 아마추어였다. 프로 선발에서 떨어진 사람들이라지만, 암튼 야구를 직업으로 삼아 밥 먹고 야구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회인 야구하는 사람 중에서 젤 잘하는 사람이 출전한 것이다.
나는 조금 많이 놀랐다. 어느 해인가 야구 게임에서 일본 이겼다고 선수 포함 언론이 난리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프로가 아마추어 이겨놓고 그렇게 좋아했던 거란 말인가? 한국에서는 밥 먹고 운동만 하면서 죽기 살기로 해야 다른 나라에서 취미로 하는 수준 정도 되는 거란 말인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축구나 야구처럼 기량이 이제 세계적인 수준이 된 종목에서조차 프로 선수가 아샨 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아마추어 경기에 출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군대 면제라는 혜택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위상이 이 정도되면, 이제 그 같은 정책은 폐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오래 전 한국이 내세울 게 아무 것도 없던 시절,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갖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실시한 정책 탓에 한국인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남보기 부끄러운 반응을 하게 된다.
언젠가 군대 가기 싫어하는 어느 청년 에피소드를 들은 적 있다. 한국 남자의 병역 의무는 북한과의 대치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통일만 되면 군대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싶어서 병무청인가에 질의했가 하루라도 빨리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통일이 되면, 군대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답변 때문이다. 경계선이 북한보다 훨씬 강한 중국과 러시아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정말로, 통일되었다고 국방 경계력을 약화시킨다면, 지금 우크라이나 같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이곳 한반도다. 따라서 운동 선수의 군대 면제 혜택 폐지 조건에 물리적 조건 변화 같은 건 해당하지 않는다.
아마추어 국제 경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리는 국가 중에 한국같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가 국위 선양을 목적으로 정책적으로 선수를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 지원을 받아 메달을 싹쓸이 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대표적인 전체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이제는 주지해야 한다. 스포츠로 나라 권위와 위세를 높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개정 전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16년 전 유시민의 지적과 똑같이, 파시즘의 잔재다.
16년 전 유시민이 '국기에 대한 맹세'의 파시즘적 문구를 지적했을 때, 그는 왜 아마추어 국제 경기에 대한 국가 지원의 파시즘적 성격은 지적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엘리트 체육 제도는 그와 그 세력이 그토록 증오하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이며 또한 전두환의 잔재이기도 하다. 진보라고 인식되는 민주당 세력이 정말 진보라면, 이제라도 이 문제에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진짜 진보인가 하는 문제를 논외하더라도) 이 문제에 잠잠한 건 아마도 단지 문구를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일처럼 간단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정치 세력에게 이 관행 개선은 스포츠계의 반발과 지지 철회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국 위상에 맞게 군 면제 및 연금 같은 국가적 혜택을 부여하는 행태 개선은 한국인 각자에게 달려 있다. 과거부터 이어오져 온 관행에 따라 맹목적으로 반응하기를 멈추어야 한다.
아샨 게임이나 올림픽을 세계 각국 모두가 협력해 개최하는 효과에는 인간이 가진 정복 욕구, 전쟁 욕구를 스포츠 경쟁으로 해소하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정말로 특히 축구처럼 몸싸움하는 경기, 그걸 열렬히 응원하는 관중은 흡사 전쟁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마추어인 생활 체육 수준은 미약하면서(도쿄 여행 중 일요일에 지하철 타고 가다가 창 밖으로 본 모습에 놀란 적 있다. 강을 따라 끝없이 지어진 야구장 시설에 빈 곳이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생활 체육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 국가 대항전에만 열광하는 모습은 한국인의 제국주의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 국제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은 파시즘적 국가주의를 체화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게임에 냉소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남편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한국 선수를 응원하고 경기를 즐기는 날은 스포츠에서 파시즘적 국가주의가 제거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