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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Dec 24. 2023

인생이 우연(운)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슈테판 클라인,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을 읽고


feat.자기 성공을 운 덕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네 성공은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


유럽에서 활동 중인 과학 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의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을 읽었다. 이 책은 주제와 주장을 책 제목과 1장과 2장 제목에 명시한다. 우리가 현상이나 사건의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그것을 소위 '운명'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며, 세상 거의 모든 일은 우연 또는 운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연 또는 운을 강조하는 주장에는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폄하하려는 의도와 목적이 숨어 있을 것이라 넘겨짚기 쉽다. 저자의 의도와 목적은 세상 모든 일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여서 우연이라는 불확실성을 기회로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우연, 운을 강조한다고 해서 세상의 변화 성질이 불규칙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운에 맡기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은 동전 던지기나 카지노 룰렛 등 "모든 도박은 아주 단순화된 인생 모델"이라면서 세상 일에 어떤 규칙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생에 비해 경우의 수가 한정되어 있는 동전 던지기나 룰렛은 대략적인 규칙이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동전 던지기에서 그림과 숫자가 나올 가능성은 각각 반반이고, 룰렛은 공의 속도, 회전속도, 공기 저항 등을 알면 어느 칸으로 떨어지지 않을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만, 문제는 뇌다. 뇌 기능의 방향은 단순화다. 복잡한 현실, 혼란스러운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데이터를 단순화하고 분류해서 규칙이나 프레임 같은 형식을 부여하려고 한다. 규칙이 너무 복잡해서 사건을 단순한 패턴으로 기술할 수 없으면, 인간은 그 사건의 인과관계를 알 수 없고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즉 저자가 말하는 '우연' 또는 운은 인간 인지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결짓기를 좋아하는" 우뇌는 불충분한 자료로 연상을 만들어내고 "질서를 좋아"해서 체계와 규칙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좌뇌는 그 연상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려고 애쓴다. 자연히 그 결과는 논리적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뇌에게는 현실이 중요하지 않다. 말이 되기만 하면,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위기나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뇌의 이런 성질이 인간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런 불행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유가 모호하면, 때로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거나 아니면 타인 또는 시스템 같은 나 아닌 것에서 찾는다. 그조차 실패하면, 그땐 신의 뜻, 운명을 붙잡는 것이다.


책에는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당연히 입학 성적과 학업 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리고 9.11에서 생존했던 사람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죽은 미국의 비행기 사고와 스위스 스키장에서의 열차 사고 등 9.11과 비슷하게 아무 과실 없는 사람 여러 명이 참혹하게 죽은 일도 여럿 소개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와 상관 없이 대부분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작은 실수가 원인이었다. 


이런 실수와 사고는 문명 발달 속도와 정도가 증가할수록 함께 증가한다. 일은 더 세분화되어 여러 사람에게 분산되고, 그럼으로써 그 모든 일을 속속들이 알고 통제하기는 어려워지고, 또 (인간에게 완벽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언제나 세상은 미완성 상태인 것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는, 우연과 운으로 가득한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가운데 중앙통제 따위에서 벗어나 각각의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제안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되어 있으면, 어느 부분에서 발생한 작은 실수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겉잡을 수 없는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정유공장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건물에 설치하지 않고 과정마다 건물을 따로따로 지으면, 어느 한 곳에서 화재가 나더라도 그것이 전체를 태우는 화마로 번지지 않는다.


입학 성적과 학업 능력이 비례하지 않는 능력 문제에 관한 의견도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캐나다 대학처럼 입학은 쉽고, 졸업은 무진장 어렵게 식일 것이다. 일자리로 치면, 고용(취직)과 해고(이직)가 쉽고 승진(성과보상)은 엄격하게.


책을 덮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성공은 운이라면서 능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원인이 모호한 사고에 대해서는 정부의 (무)능력을 강조하는 주장은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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