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인지인식 방식을 이해하고 수용하느냐의 문제
결혼의 본질은 '다름'에 대한 적응이다. 결혼이 비슷한 집안 사이 정략 계약이던 전근대와 달리 가문과 상관 없는 개개인의 로맨스 결과가 된 근대 이후 지금의 현대 사회 결혼은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서로 다른 인지인식 반응을 가진 사람이 만나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의 문제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결혼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존 친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의사소통되던 방식이 새로운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그 의사소통 방식을 발화자 의도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오해하면서, 그 인지인식이 끝내 갈등으로 발전하고 마는 지를. 기실 한국의 고부 갈등 등 결혼으로 인한 갈등 상당 부분은 새로 맞이한 가족이 자신이 나고 자란 기존 친가에서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며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친가에 갈 때마다 엄니는 나를 데려오라고 한다. 나는 그 얘길 전해 들을 때마다 엄니가 날 얼마나 보고 싶어하고 사랑하는지, 내가 시댁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되어 뿌듯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굳이 자기를 왜 꼭 데리고 오라 하냐면서 그 요구를 불쾌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같은 일을 겪어도 그 당사자가 인지인식하는 방식이 다를 수록 그 일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제각기 달라진다. 갈등은 대부분 그 차이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오래되지 않은 옛말에 중매결혼이 연애결혼보다 이혼율 적다는 얘기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라면서 형성된 인지인식 방식이 비슷할수록 오해 여지도 감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은 대부분 남편에게 아내가 털어놓는 시댁에 대한 불만을 그저 긍정하라고 하지만, 다소 현실적이지 않은 조언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인지인식 방식의 차이로 인한 오해에서 불거진 불만이기 때문에 자기 부모의 의사소통 방식을 오해한 부분을 바로잡아 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오해를 내버려둔 채 무턱대고 호응하다가는 자칫 더 겉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단지 표현 방식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문제가 서로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표현) 방식의 서로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나아가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다름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수용하느냐가 한국 같은 유교 잔재 사회에서는 특히 가족 안에서 개개인 삶의 행복을 일구는 중요한 관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