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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May 21. 2024

좋기만 한 사람이 존재할 거란 착각

인간 관계, 심각하고 무거우면 가라앉을 뿐 나아가지 못한다


친구가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다른 한 친구에 대한 불만이 문제였다. 나쁜 생각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한 친구에 대한 불만은 나도 평소 갖고 있던 터였다. 그 (다른 한) 친구는 자존감은 약하고 자존심만 강해서 종종 자기방어적 태도를 보이는데, 나와 내게 고민을 토로한 친구처럼 속 얘기를 털어놓는 가까운 사이에서까지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 (아니, 솔직하지 못하다기보다 자기 마음을 자기자신이 잘 모르는 탓에 변명처럼 자기방어적인 말을 하는 것 아닌가 하다.)


고민을 토로한 친구는 친한 친구에게 좋지 않은 마음을 갖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자기가 나쁜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너처럼 그 다른 한 친구의 그런 면이 종종 짜증나고 싫다면서 자책하는 친구에게 공감을 표한 뒤, 상대방이 그런 태도를 보일 때 짜증나고 싫은 마음이 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좋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친할수록 싫은 면이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불만이 있으면 지금 내게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와 얘기하든 어쩌든 풀어내고 나서, 또 잘 지내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친구는 크게 위안 받았는지 뜬금없이 스벅 쿠폰을 선물했다.


나이 먹어가면서 깨닫는 절실한 한 가지는 세상에 다 만족스러운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 불만 없고 좋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아주 친한 건 아니라는 방증이다. 인간은 누구나 미워하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소중한 엄마, 아빠, 형제자매도 때론, 아니 자주 짜증나고 싫다. 배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죽고 못 사는 자식도 그렇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예외 아니다. 누군가에게서 상처나 해를 입을까봐 본능적으로 방어할 정도로 소중히 여겨도 나 자신의 모든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때론 미치도록 싫다.


그런데도 가족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내게 완벽한 인간이 있으리란 착각에 너무 쉽게 빠진다. 친구나 지인과 평소 잘 지내면서도 때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을 발견하거나 내 심기가 건드려지는 일이 생기고, 그게 자꾸 쌓이면, 그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긴다. 그렇게 그 관계에서 생기는 흠을 견디기 어려워하다가 결국 관계를 끝내 버린다. 그러나 그런 파탄의 원인은 그나 내게 있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 사이에 아무 불만이 없어야 한다는 그 비현실적인 이상에 있다. (한국에서는 시어머니 또는 시댁에 대해서도 이런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한 친구에 대한 불만을 내게 털어놓는 걸 친구는 뒷담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 그 불만을 들어줄 만한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뒷담화는 그런 게 아니다. 악의를 갖고 그 사람의 단점을 부풀려서 그 사람에게 어떤 해를 입히는 행동이다. 사람 사이에 불만이 없을 수 없고, 당사자에게 양해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문제이거나 아니면 양해를 구해서 개선해야 만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성격의 내용이 아니라면, 서로 아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관계를 원만하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기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다룰 수 있다면 더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털어내는 게 백조인 척 고매한 척하다가 관계를 망쳐버리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태도다. 


유투브 등 SNS 짤에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이 넘쳐난다. 특히 요즘엔 이런 사람은 미련 없이 끊어내라는 등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제목이 적지 않은 듯하다. 내용을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인간관계는 원래 기본적으로 쉽지 않다. 즐겁고 좋은 사이보다 불쾌하고 불편한 경우가 훨씬 많은 법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으로 인한 그 불쾌하고 불편한 마음을 용인하지 않는 태도에서 대부분 기인한다.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면,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볍게 툴툴 털어낼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삶을 풍족하게 만들려면,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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