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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May 23. 2024

[가여운 것들] visible에 그치는 관찰자 시선

영화 <가여운 것들>에서 발견되는 사회주의의 한계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이야기의 주요 인물인 벨라와 god의 관찰자적 시선 또는 태도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모험을 통해 자립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벨라는 자기가 경험하는 것들을 시종일관 '있는 그대로' 흡수한다. 그 대표적 수단이 성(생식)이다. 즉, 유쾌한 성적 감각을 긍정하고, 자립 수단으로서의 매춘도 긍정한다. 그렇게 세상을 경험하면서 인간과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벨라의 시선은 제3자적 관찰자로서의 그것이다. 


벨라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god 또한 과학자로서 실험하고 관찰하면서 실증에 입각한 탐구 태도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의학적 실험 대상으로 바라볼 정도다. 


세상과 삶을 관찰자인 것처럼 경험하라는 얘기는 현자들이 늘 하는 조언이기에 벨라와 god의 이야기에 더 몰입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찰자적 시선에는 한계가 있었다. 벨라와 god의 관찰은 오로지 물질 세계, 즉 신체나 감각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가령 감정이나 현상의 이면 같은 내면은 관찰하지 않는다. 


벨라에게 빠진 던컨(여자를 지배하려는 남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하던데)의 감정을 벨라는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god 역시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손가락을 잘렸을 때, 잘린 손가락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과 달리, 벨라가 떠난 후 그 상실감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관찰하지 않고 외면하고 회피한다. 


내면과 감정을 경시하고 배제한 채 물질에 국한한 관찰자적 자세는 인간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집착을 방지할 수는 있지만, 벨라를 대체하는 새로운 개조 인간 펠리시티를 god가 냉대하면서 실험체로만 대하듯이, 인간을 수단화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두 주요 인물의 이러한 태도는 이념과 이상 실현을 추구했지만, 현실에서는 그 이념과 이상 실현을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던 사회주의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사회주의에 인간에 대한 내면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탓이기 때문이다. 


벨라가 사회주의자가 된 계기 또한 표면적 현상에 대한 반응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생략할 수밖에 없는 영화 매체의 한계 때문인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한 뒤 갖게 된 벨라의 문제 의식은, 그가 성적 쾌락에 탐닉했을 때처럼, 고통 받는 사람을 볼 때 그 모습을 본 사람도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적 반응에 지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벨라의 사회주의는 표면적, 본능적 반응에 따른 행동, 이를 테면 청소년의 이상 추구처럼 세상을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할 때 갖게 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는 사회주의자로서 벨라의 활동은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벨라의 사회주의적 활동 내용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가 그린 벨라라면, 벨라는 오래지 않아 사회주의에 의문을 품고 실망해야 인물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내면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해도 세상을, 현상을 아무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받아들인다면, 사회주의가 전제하는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간은 현실에서 인간을 교조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는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해석이 감독의 의도에 부합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의도와는 정반대라는 건 확실할 것이다. 그는 생전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며 활동한 사회주의자였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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