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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Aug 09. 2024

신성화 된 '민주주의'

민주주의 숭배와 인간의 오만


한 달 전, <공부왕찐천재>에 인물세계사 3번째 편으로 "희대의 살인귀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진짜 이유"란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히틀러 시대 독일의 인종주의를 어떤 역사 관련 교수가 홍진경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설명의 시작을 여는 홍진경은 역사 관련한 보통의 인식을 대변하듯 당시의 유대인 학살이 마치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독재자 한 사람의 부도덕성 탓이었느냐, 그런 사람이 최고 권력을 갖게 된 건 무력으로 국민을 짓밟아서이냐는 뉘앙스로 교수에게 묻는다. 


일제의 조선 지배가 몇몇 탐욕스러운 친일 매국노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듯 역사의 참혹한 사건이 단지 부도덕한 권력자 한 사람 때문이었길 바라고 있을 많은 한국 시청자를 의식해서인지 교수는 명확하게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 체제에 조금만 관심 있으면 뻔히 알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명색이 역사 교수가 모른 체할 수 없을 터, 다행히 설명이 길어지면서 히틀러가 국가 수반이 된 건 당시 독일 국민이 투표한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라고 설명하고, 이에 홍진경은 유권자로서의 경각심을 환기했다.


그러나 참혹한 재앙은 결국 히틀러 개인의 교만과 당시 독일인의 영웅 숭배 탓으로 방송은 귀결시켜 버렸다. 인종주의와 영웅 숭배는 같은 맥락에서 흘러나온 사상이고, 우생학 등 당시 지식인과 독일 뿐만 아니라 소련, 스웨덴 등 여러 국가 정책에 반영되었던 시대 주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모습이 자못 아쉬웠다.


그는 영웅을 숭배하는 순간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교훈을 우리가 얻어야 하고, 전후 독일이 뼈저린 반성을 통해 지금은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이런 설명은 마치 우리가 지키고 지향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라는 인상을 심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춰서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없다. 히틀러가 큰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 덕이고, 그가 입법 권한을 부여받아 독재자로 우뚝 서게 한 것도 독일 국민의 커다란 지지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 절차 덕이었다. 


"나는 민주주의 수호자다." 히틀러는 당당하게 말했고 독일 국민은 환호했다. 


영웅 숭배가 파괴한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이다. 전후 독일이 모범 국가로 탈바꿈했다면 그건 자유에 대한 가치를 제고한 덕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에는 아무런 지향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다수가 독재를 원하고 필요에 따라 차별과 폭력, 억압을 요구하면, 민주주의는 그 모든 것을 승인한다. 민주주의로는 독재와 차별, 폭력, 억압을 막을 방법이 없다. 흔히 생각하는 그 '선한' 민주주의는 그것이 '자유'라는 가치를 수호하고 지향하고자 할 때에 한한다. 


민주주의는 다원화 사회에서 가장 나은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언제나 자멸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아무런 가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다원화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그로 인한 갈등을 풀려하면, 의회는 언제나 싸우기만 할 뿐 무능한 곳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그에 실망하고 불만인 유권자가 강력하게 권력을 집행해서 질서를 회복하게 할 인물을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 한국에서도 우려되는 조짐을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전, 치킨 가격, 배달서비스 가격 인상에 불만이 클 때 한갓 도지사였던 한 정치인이 민간기업에 강한 액션을 취하면서 일약 잠룡으로 급부상했던 일, 또 코로나 팬데믹 시기 어느 대학 기숙사를 찾아가 학생들을 쫓아내고 일방적으로 보호시설로 만들어버렸을 때 잘한다고 칭찬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현상이다. 


'자유'를 말해야 할 때, 한국인은 지식인 마저도 '민주주의'를 말한다. 마치 민주주의가 모든 '선'의 상징이고, '선'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오직 '민주주의'만 말한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면 뭔가 매우 불순하고 위험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히틀러의 오만은 그 한 사람의 오만이었지만, '민주주의'가 신성화된 사회에서는 유권자 모두가 오만하다.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할 교훈은 그것이다.




20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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