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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Aug 01. 2024

프랑스 올림픽 개막식과 프랑스(대륙) 전통의 합리주의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가 초래하는 오만 그리고 계획주의, 간섭주의

다소 거북스러워 할 반응이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올림픽 개막식 쇼와 이어진 국가, 국기 표기 실수 등의 원인이 프랑스의 오만함이라는 의견을 접하면서 문득 프랑스가 주류 서양 사상의 한 축에 영향을 끼친 내용이 떠올랐다. 데카르트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합리론이 인간 이성을 신의 능력과 동급으로 전제하는 오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프랑스)로 대표되며 유럽 대륙의 전통 사상이었던 합리론은 인간 이성만으로 객관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인식론이다. 합리론이 세계를 진실하고 올바르게, 또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일에 이성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건 신에 대한 (당시까지도 너무도 당연했던) 믿음 때문이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면, 완전한 존재(신)가 있다는 의미이다. 신은 선이므로 실제 사실(세상)을 인간이 인식한 것과 다르게 만들어 인간을 속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신의 목소리를 분별하는 시스템을 내재하고 있는 이성을 통하면, 인간은 진리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뿌리를 갖고 있는 프랑스 계몽주의는 자유 역시 "인간 이성의 창조물로 여긴다. 자유가 가져다줄 편익과 피해를 산정해서 최대 편익을 주는 방향으로 법 제도를 선택함으로써 자유를 확보한다"(민경국, 자유론, 북코리아)는 공리주의는 인간 사이 상호작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인간 이성의 지휘 아래에 자유를 놓는다.


인허가제, 대기업 규제 등 특히 한국의 법규제와 제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섭주의는 이러한 프랑스(대륙) 전통을 따른다. 한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 이성을 맹신하는 자유 사상에서는 공권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한국인처럼 시민의식이라고 하면 일사불란한 질서와 횡단보도 신호등 맹신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행동이 전부라고 여기기 쉽고, 또 법에 '예속'되는 걸 자유라고 여기기도 한다.


한국인이 자유를 등한시하고 좋은 건 무조건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현상 역시 한국의 법제도와 가치관이 프랑스 전통을 따른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자유를 말하지만, 프랑스 전통의 사상은 사실 자유가 아니라 평등, 즉 "민주주의 역사다." 


프랑스의 자유라고 알고 있는 프랑스의 합리주의는 인간이성에 대한 맹신에 바탕하기 때문에 계획주의로 이어지고, 개선과 개혁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새로이 설계하는 극단적 혁명으로 나타나기도 쉽다. 인간 이성이 "개인적, 사회적 삶에 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무의식적 전제로 인해 그 계획과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는 태도가 교조적이 되기도 한다.


계몽주의가 근대를 열었을 때에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성 대신 경험과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성된 관습, 관행, 전통을 기반으로 한 스코틀랜드 파가 주류 서양 사상의 다른 한 축이었다. 이후 하이에크와 칼 포퍼 등이 진보는 인위적이고 교조적인 계획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따라 자기 오류와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오늘날 현실은 거의 프랑스로 대표되는 대륙파의 압도적 승리처럼 보인다. 오늘날 진보라하면 계획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스스로 진보의 상징을 자처하는 한 이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지도..


개막식을 보지 않아서 내가 그에 대해서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쇼에 대한 적지 않은 거부감과 반발감에는 이런 프랑스 특유의 (무의식적 오만의) 배경이 은근히 엿 보였기 때문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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