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유물론적 태도
정부 역할 가운데 하나는 시장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가격도 포함된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정부의 '관리' 역할을 '통제'로 둔갑시키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이런 현상은 '가격'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가운데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가격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영향력의 주체는 대개 공급자/생산자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는 듯하다. 첫째는 표면적 직관이다. 모든 생산물의 가격은 만든 사람이 책정해서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둘째는 공급받는 사람, 즉 수요자/소비자의 존재를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객체로 여기는 무의식적 시각이다. 이런 시각에는 수요자/소비자가 갖고 있는 힘을 매우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내포하고 있다.
생산물 가격은 언제나 공급자가 정한다. 이것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물건 생산자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서비스 생산자도 마찬가지다. 가령, 우리 사대부들이 주로 하는 강의, 의료/법률 서비스(컨설팅) 등도 그렇다. 강의를 의뢰하면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라고 물으면서 가격 책정 권한을 생산자에게 부여한다. 모든 생산물에는 비용이 들어가는데 제3자가 그 비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요자/소비자를 피동적이고 무력한 객체로 보는 사람에게 생산자가 가격을 정하는 이 방식은 매우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생산자가 과도한 이익, 부당한 이익을 가격 책정에 반영할 수 있다고 여긴다. 반면 소비자는 무력한 객체이므로 또 다른 시장참가자이자 비교적 공평하리라 믿는(또는 달리 기댈 곳이 없으므로) 국가/정부의 개입을 촉구하고, 그런 어떤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정치 권력이 적당한 가격을 책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시장을 국가라는 경찰이 감시를 넘어서 조금씩 '통제'해 나가도 그것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방향이라고 여긴다. 자기도 모르게.
오늘날 모두가 소비자이지만, 모두가 생산자이기도 하다. 물론 대기업 같은 커다란 조직에서 아주 잘게 나눈 생산 단계 일부만 참여하는 사람은 잘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소비자는 결코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 경제 발전 초기, 생산품 자체가 별로 없을 때는 공급자/생산자가 우위였지만, 풍요 시대는 소비자/수요자가 우위다. 그 기점은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의 대공황 이후다. 생산품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공급자가 오히려 수요자에게 선택받으려고 발버둥 친다.
공급자가 책정한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요자는 그것을 외면해도 큰 지장을 받지 않는 환경이다. 가령, 강사가 자기 강의 가격을 얼마라고 의뢰인에게 제시하면, 의뢰인이 그 가격을 합당하다고 판단할 경우에 한해서 그 강연은 성사된다. 의뢰인이 그 가격을 너무 비싸다고 판단하면 그 강사는 강의를 할 수 없다. 그 강사가 돈을 받고 강연하고 싶다면, 그 가격은 수요자/소비자가 (강사가 책정한) 그 가격이 합당하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로 떨어질 것이다.
이런 경쟁은 공급자가 과도한 이익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 따라서 설사 체감적 또는 직관적으로 다소 가격이 높은 것 같아도 그것은 그만큼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그 공급품을 원한다는 의미다.(그래서 가격에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가격은 그것을 단순한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공급자가 가격에 과도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대표적인 게 담합이다. 비슷한 서비스나 상품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가격을 책정해서 파는 것이다. 그러면 수요자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의 '관리' 역할이 필요하다. 국가 역할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격을 책정하는 게 아니라 그 담합을 해체시키는 일이다.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아, 쓰다 보니 넘 뻔한 얘기를 써 놨네...--;;;)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갈등, 대개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가격 문제로 벌어지는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어느 일방, 대개 공급자를 '통제'하려는 시도, 그런 요구는 수요자를 마치 힘 없고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피동적 객체로 본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그런 태도가 권위주의에 익숙한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마치 공기처럼 익숙하게 여기는 나머지 그것을 '정의'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얼마 전, 아는 형님에서 가수 설현이 개그맨 김신영과 여행을 갔다가 크게 화 낸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말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설현, 김신영, 그리고 다른 한 명이 친해서 해외 여행을 가기로 하고 서로 합의해서 얼마씩 회비를 걷어 그걸로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경비를 지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신영이 자꾸만 자기 개인 돈을 쓰더라는 것이다. 자기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같이 밥 먹거나 간식을 사 먹을 때 같이 공금을 써야 할 때마다 그러길래 설현이 주의를 줬는데 계속 그래서 급기야 나중에 화가 폭발했다고 한다. 설현은 함께 합의한 약속을 깨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자기가 언니/연장자이므로 사주고 싶었던 김신영 맘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배려'해주는 맘보다 규칙과 약속을 지키는 걸 화가 날 만큼 훨씬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아는 형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최고 연장자 강호동을 중심으로 김신영 태도를 더 칭찬하고 훌륭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연장자의 배려가 '정의'이며 '바람직하다'라는 생각이 온 몸에 배어 있기에 가능한 반응인 것이다.(권위주의에 익숙한 사람은 이런 '배려'를 그저 호의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설현 같은 사람은 그 권위적 태도가 내포하고 있는 서열, 김신영 같이 돈 내주는 사람이 너/설현보다 위에 있다는 신호를 강하게 받는다. 설현의 분노에는 아마 이런 느낌도 포함돼 있었을 테다.)
가격 문제로 인한 갈등에 대응하는 한국 주류의 방식에 불만인 것은 시장 질서 저해, 시장 왜곡 이런 건 차라리 뒷전이다. 이런 권위주의적인 시각, 공급자나 국가 같은 어느 일방에게만 힘이 있다는 무의식적 생각/태도가 나는 훠어~~~씬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요자를 무력한 존재로 보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은근한 모멸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