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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일에는 싫다고 말하고 싶어요

갈등을 감당하면

by 홍주현

어느 독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당당하게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당당하게'라는 부분이 걸리지만, 나도 누군가에 의해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 주먹을 부르르 떨며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치를 떨었던 적이 숱하다.


요즘엔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이삼십 대를 돌아보면 그런 상황은 도처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결혼하고 나서 초기,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를 때 배우자 부모와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 심지어 친한 친구들 사이에도 그런 경우가 흔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친 가족하고는 그런 일이 없었을까? 결코 아니다. 그래도 친 가족과 그런 일이 있으면 그야말로 '당당하게' 싫다고 말하기는 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아 언쟁과 다툼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싫은 일에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는 사람의 의도는 아마 내가 당당하게 '싫다'라고 말하면 아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할 테다. 그러나 가장 편하고 가까우며 나를 위해주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친 가족과의 경우를 떠올릴 때 알 수 있듯이, 내가 어떤 요구를 받을 때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태도가 아무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체로 언쟁과 다툼 같은 갈등을 수반한다.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싫은 일에 싫다고 '당당하게'는커녕, 내색도 하지 못하는 것일 테다.


따라서 싫은 일에 싫다고 말하고 싶다면, 그에 따른 갈등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먹으면 된다.


이삼십 대 때 나는 사실 싫은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일을 하는데 매우 서툴렀다. 거의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싫은 일은 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과거 때문에 그런 책을 더 썼는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싫다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어쨋든 "나 지금, 싫은 일을, 당신 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입술과 혀 대신 얼굴 전체와 몸으로 표현했다. (책에 그런 상황이 조금 나온다^^;) 그러면, 시킨 사람이나 주위 사람이 아무튼 인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나를 무시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건 그들 몫이다.


조금의 갈등도 꺼리는 사람은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상황조차 싫어할 수도 있다. 아예 아무 내색하지 않고 싫은 일을 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테다. 그러곤 속으로는 그런 자기 자신을 또 싫어한다. 만약 싫은 내색을 하는 내 뜻을 사람들이 무시하면 아무 갈등은 없지만, 또 무시당해서 열 받는다. 기억에 남는 내 경우는 대체로 주위 사람들이 그런 나를 불편해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다.


심한 경우, 상사와 다툰 적도 있다. 그런 내 태도가 못마땅한 나머지 내게 태도가 그게 뭐냐고 따졌다. 나도 지지 않고 내 생각을 말했다. 상사가 받아들일 리 없다. 그렇게 다투고 감정이 최고조인 상태를 지나고 나면, 물론 그 다툼은 내가 수습해야 한다. 내가 먼저 사과하면서 다가가면, 내 불만이 영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면, 대개 상사는 받아들인다. 이후에는 오히려 그 상사가 내 불만을 잘 알기에 나를 조금 신경 써 주는 경우도 있다.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그 상사가 싫지만 않다면). 어쨋든 짤리면 안 되기 때문에 먼저 사과하는 것이지만, 그 갈등을 풀려는 손을 먼저 내미는 건 내가 주도권을 갖을 수 있는 기회를 낚는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계산을 하고 의도적으로 싫은 내색을 한 건 아니다. 싫은 내색으로 싫다는 내 마음을 드러낸 건 그냥 내 성질에 못 이겨서였다. 즉, 그 일이 진짜 너무 싫으면 대개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싫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쩌면 '진짜' 싫은 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냥 비 올 때 나가야 하는 상황(예를 들면 엄마 심부름)이 싫은, 그런 그냥 귀찮아서 하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 그건 해야 할 일을 귀찮아하는 '자기 자신' 문제지, 그 상황이나 타인의 문제는 아니다. '자기' 문제를 타인이나 상황, 즉 남 탓으로 여기면서 싫은 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거나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런 묘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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