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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만 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세상이 내 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by 홍주현

어느 독자는 또 다른 한 줄 평을 남겼다. "좋아하는 일만 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약간 농담 뉘앙스를 풍기는 듯해서 흘려들으려고 했는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만 하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사실, 그 질문을 듣자 마자 떠오른 말은 "그런 방법은 없다"였다. 언젠가 어느 강연 프로그램에서 박신양은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러시아에서 유학하는 힘든 시절, 어느 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인생관을 바꾼 싯구다.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이 많은 것이 인생, 힘든 시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좋아하는 일이 있는 것은 반드시 싫어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빛이 강할 수록 어둠이 짙듯이, 어떤 일이 너무 좋고 그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어떤 다른 일이 너무 싫고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바람도 크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일만 알고 있거나 싫은 일만 알고 있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즉, 자기가 명확히 인식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차이일 뿐이다.


좋아하는 일만 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독자의 질문도 싫어하는 일에 대한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과 싫어하는 일, 거부하고 싶은 일이 동시에 다가올 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박신양의 말처럼 내 일 또는 내가 처한 상황의 반쪽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나 배우자의 모습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습은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그 가족이나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랑'이란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욕정에 불과하다.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자아도취적 만족'일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지만, 이런 식의 설명은 살짝 교조적이다.


어제 오늘 나는 아주 거부하고 싶은 상황을 맞닥뜨렸다. 얼마전, 나는 가계부 재정을 빠듯하게 맞추기 위해 에어컨을 이전 설치하고 싶어하는 배우자의 계획을 다른 대안으로 겨우 무산시켰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게, 계획에 없던 물건을 떠 안게 될 사건이 어제 생겼다. 비용은 딱 내가 애써 아낀 에어컨 이전 설치 비용에 상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조화 속인가! 맨붕이 왔다. 정말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은 괴롭고 싫은 상황이었다.


나는 방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싸 매고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 상황에서 내가 깨달아야 할 메시지가 뭘까? 너무 돈 무서워하면서 살지 말란 메시지일까? 너무 아둥바둥 살지 말고 펑펑 쓰고 싶은대로 쓰면서 살라는 의미일까? 써야 할 돈은 써야 한다는 오랜 격언, 그것을 알려주려는 것인가? 저 애물단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튼,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온 몸을 벌벌 떨면서도 나름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받아들이는 대신 뭔가 교훈을 얻으려고 (신이 알려주려는 메시지를 알아채려고) 애썼다. 그러는 도중에 다행히 일이 자연스럽게 원래 계획대로 잘 풀렸다. 그 물건을 떠 안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내린 이번 사건의 메시지는 "너무 걱정하며 살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거부하고 싶은 싫은 상황에 부딪혀도 너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흐름에 맡기고 마음 편히 살라는 교훈이다.


물론, 이것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교훈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 성격, 성향, 사고방식, 태도에는 좀 더 필요한 교훈이다.(나는 사람마다 필요한 삶의 교훈이나 격언도 제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격, 태도, 사고방식이 사람 마다 다르므로 부족한 면, 필요한 것도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건 아니다. 교훈이나 그런 삶의 메시지는 언제나 거부하고 싶고 싫은 일, 상황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이것 만큼은 인간으로 태어난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좋아하는 일, 좋은 일을 통해서 교훈을 얻기는 도무지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각자에게 다를 그 교훈은, 그러므로 오직 자기가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 한 비유가 있다. 신은 언제나 인간에게 귀한 선물을 준다. 천사가 그 선물을 전달하는데 짖꿏은 장난꾸러기 천사는 그 선물을 고난, 어려움, 고통, 싫은 일이나 상황 같은 것으로 포장해서 준다고. 누구나 그 선물을 받는데 대부분 포장지만 보고 그 선물을 내팽개친다. 볼품 없고 싫은 모습을 한 그 포장지를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푸는 소수의 사람이 비로소 신이 선물한 진귀한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만 하는 방법은 싫은 상황과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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