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자유 vs. 정신의 자유
독자들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 가운데 하나는 '자유'에 관한 부분인 듯하다. 요리사 장진우의 말을 빌어 정의한 자유다. 한 마디로 하면, 몸이 자유로운 게 아니라 생각이 자유로울 때 진짜 자유라는 것이다.
'자유'라고 하면, 흔히 몸의 자유를 떠올린다.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날이라면, 지금 이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어디 시원한 바닷가 앞 럭셔리 리조트에서 칵테일 한 잔 손에 쥐고 베드체어에 누워 있을 수 있는 상태 같은 것이다. 몇 해 전, 어떤 영화 주인공 처럼, 일종의 생각만 하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그런 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시원한 바닷가 럭셔리 리조트로 이동하는 건 실은 직장 다닐 때 여름마다 사무실 책상에서 멍 때리면서 내가 떠올린 모습이다. 나는 요즘에도 '자유'를 열망한다. 아마 이 넘의 날씨 탓일 테다. 그런데, 이전의 그 '자유'와는 조금 다르다. 몸의 자유가 아니라 정신의 자유다.
나는 내가 지금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몸의 자유를 열망하는 건 실은 지금 내가 처한 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몸의 자유를 떠올릴 때 대개 지금 여기가 아닌 지구 다른 어떤 곳으로 가는 장소 이동을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지금이 아닌 과거나 미래로 가는 시간 이동까지 원하게 될 것이다. 어디로 가든, 이 몸이 지금 있는 곳을 부정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영화나 공상이 아니라 장소 이동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유체이탈이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출현한 가수 김태원은 최근 유체이탈 초보 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망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유체이탈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몸을 떠나 여러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그것을 실감한다고 하니, 그런 방법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전혀 없다. 망상같은 허황된 짓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지금 이 곳을 부정하는 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몸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지금까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모든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그런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신과 같은 어떤 초월적 힘과 함께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일종의 수호신 같은 힘을 부정하는 태도라는 생각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몸이야말로 신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몸이 없으면 결코 인지할 수 없는 그 모든 감각, 느낌을 세밀하고 온전하게 알기 위한 수단으로서 신은 인간의 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직접 체험을 통해서든,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서든, 또는 혼자 생각으로 인해 생기든 결국 인간이 좋다, 싫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은 몸의 느낌을 거쳐서 전달 받는데, 인간은 그것으로 자기 전체 삶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을 통해서 전달받는 그 느낌이 고통스러울 때가 적지 않고, 그 고통은 정말 너무 괴로운 게 사실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나는 더위를 먹었는지, 입 맛 없고 무기력하기만 한데 가만히 있으면 몸 속에서 무언가가 사포를 들고 살살 긁고 있는 듯 은근하게 괴로운 느낌이 든다.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낮에 깨어 있을 때 졸린데, 낮잠을 청해도 잠이 들지 않아 하루 종일 졸린 상태로 지내면서 생기는 느낌도 무척 괴롭다.
그래서 더 몸에서 자유롭고 싶다. 이 외부 현실에서 자유롭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몸의 느낌에서 자유롭고 싶다. 몸이 이 현실을 떠남으로써 얻는 자유가 아니라 정신이 이 몸 상태에 좌지우지 되지 않음으로써 얻는 자유를 얻고 싶다. 아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과도 통할 듯하다. 행불행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연할 수 있는 자세, 그것과도 비슷할 테다.
그러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몸에서 발산하는 싫은 느낌을 회피하려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똑바로 가만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할 테다. 정말 이 날씨 속에서 생활하는 것만큼 힘든 작업이다. 장자가 삶을 두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했던가. 나도 폭염 때문에 힘든 건지 싫은 느낌을 정신적으로 회피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게 힘든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