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싫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원고를 보내 놓고 어떤 피드백을 받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감에 허우적거렸다. 그 전까지는 글쓰기에 몰입한다고, 어제는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신랑 밥 만 겨우 한 번 차려주고,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도 손 하나 까딱 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에 괴로워하면서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나는 '완벽한 노예'라는 사실을! 정신의 자유 어쩌고 하지만, 그건 그만큼 내가 완벽한 노예라는 사실을 방증 하는 말이다. 내가 노예이기 때문에 그토록 자유를 열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의 꿈이 부자가 될 수 없고, 김연아의 꿈이 김연아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정도의 멘탈이라면 자유에 그토록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를 보거나 주위에서 직접 보거나, 가끔 정말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 플레이어를 접한다. 그들이 한 일 목록을 보면 나는 저절로 기함이 나온다. 어떻게 그 많은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할까?! 존경심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곤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위축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할까 말까, 겨우 하는 나는 정말 세상 무능하기 짝 없다. 비참하고 안쓰러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원고도 일단 통과됐지만, 반만 아니 반의 반만 통과된 듯하다. 깜냥도 안 되는 게 뭘 해보겠다고 애 쓰느라 가랑이만 찢고 있는 건 아닐까, 내 가랑이가 아니라 관계자들 가랑이를......나야 되든 안 되든, 이런 글이든 저런 글이든 아무거나라도 계속 쓰면 그만이라 애 쓸게 없는데 그 때문에 관련자에게 폐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소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돈과 관련한 일인데 그들이 내 처지를 가엾게 여겨 봐줄리는 없는 게 현실인 줄 알면서도......
아무튼 그래도, 아무리 이러든 저러든, 결론은 하나다. 그게 나인 걸 어쩌나, 그렇게 생겨 먹은 게 나인 걸 어쩌겠냐 말이다. 한 번에 이것 저것을 훌륭하게 해 내는 사람이 아무리 많고,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내 기를 팍팍 죽여도 그걸, 또 나를, 뭐 어쩌나. 나는 한 번에 하나도 겨우 하게 생겨 먹은 걸, 뭐 어쩌겠나.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요모양 요꼴로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도 나는 할 수 있는 반응이 한 가지 밖에 없다. 니 똥 굵다,하고 걍 나한테 닥친 일 가운데 할 수 있는 일 하나만, 내 능력 만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