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냉정한 사회 분위기
영화 〈라푼젤〉은 소위 헬리콥터맘 처럼 부모가 과잉보호 하는 양육 방식을 잘 보여준다. 라푼젤이 자란 고립된 탑은 일종의 부모 품안, 안락한 온실과 같다. 그곳은 부모의 시야와 통제력으로 점령된 곳이다. 아이는 부모가 허락한 만큼만 바깥세상을 경험한다. 영화에서는 나쁜 계모의 이기적 목적 때문에 라푼젤을 가두는 것으로 그렸지만, 실제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에게 최고의 경험만 선사하고 싶은 ‘선의’에서 아이를 통제한다. 직접 경험하도록 열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자신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접하도록 만든다. 아이 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한 자신이 현실의 어두운 면, 위험요소, 실패 가능성을 제거한 후 안전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 그런데 세상이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여태 보호해준 부모 말을 들으면 겁이 난다. 그래서 움츠러들다가도 또 세상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해 본다. 움츠러들다가도 시도하고 실패하면 위축돼 있다가 다시 또 시도하기를 반복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험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툴다. 실패하고 넘어질 때마다 부모는 말한다.
“그거 봐라.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엄마는 미리 경험해 봤다. 그러니, 엄마 말을 들어라. 엄마 말대로 하면 안전하다. 즐거울 것이다. 엄마는 다 안다!”
영화에서 계모가 노래로 이런 얘기를 하다가 Mother~ knows best!라면서 끝을 맺을 때 나는 엄마가 떠올랐다.
어릴 때 나는 고분고분한 아이였다. 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내 성격이 순종적이어서가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라면 하고 말라면 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달라졌다. 조금씩 욕구라는 게 생겼다. 이것저것 ‘판단’하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것,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엄마와 부딪히기 시작했던 건 이때부터다. 엄마가 정해주고 하라는 대로 잘 따르던 아이가 다른 걸 하겠다고 하니, 엄마도 낯설었을 것이다. 엄마는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보니, 자주 날카로운 언성이 오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해 봐서 다 알아. 엄마 말만 들어. 그러면 틀림없어. 이게 좋은 거니까 엄마가 하라고 하지 나쁜 걸 왜 하라고 하겠어.”
“싫어! 난 다른 거 하고 싶어!” 나는 반발했다.
“그게 왜 싫어! 그렇게 하면 잘 될 텐데 왜 싫어!” 엄마는 그저 사춘기 반항처럼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괴로웠다!
“엄마는 하라고 말만 하면 그만이지만, 직접 해야 하는 사람은 나잖아. 엄마는 좋아도 나는 그 결과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것까지 엄마가 책임질 수 있어? 엄마가 내 인생까지 책임질 수 있냔 말이야!”
“그 결과를 왜 안 좋아해? 좋다니까! 글쎄, 해 보기나 해 봐. 엄마가 책임질게!”
일본의 정신의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자식에게 제 아무리 강압적으로 구는 부모라도 “엄마 아빠가 책임질 수 있냐?!”는 자식의 반박에 대꾸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내 엄마는 예외였다. “엄마가 책임지겠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내 가슴팍이 옥죄이는 듯했다. 천장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 방 안에 갇혀 짓눌리는 것도 같았다. 그건, 내 선택이 부정당함으로써 나를 낳은 근원에게서 내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리오네트 인형이 아니야! 엄마가 내 팔다리를 움직여서 나를 조종할 수는 없어!’ 비록 마음속 외침이었지만 나는 지지 않고 또 대꾸했다.
엄마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엄마의 그 숨 막히는 통제와 강요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말대로, 내가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이미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입장에서 내 의견은 들어주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였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네가 시도하고 싶은 대로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넌 왜 일부러 실패하려고 하는 거니? 그걸 엄마 입장에서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으란 거야!’
흔히, 과거 고성장 시대엔 실패해도 재기할 가능성이 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래서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 섣불리 시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과거에 국가 경제 성장률이 높았으니 기회도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통계상으로 그렇다고 해도 개인이 결코 실패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패 후 재기 성공은 대개 사회안전망에 달려 있는데 복지나 국가 지원은 그나마 지금이 나으면 나았지 그때는 지금보다 열악했다. 뭔가를 다양하게 시도할만한 일도 많지 않았다.
우리는 전쟁 후 모든 게 무너졌다. 사회기반 시설뿐만 아니라 신분도 사라지고, 사회지도층 공백도 컸다. 일단 먹고 살기 위한 경제 재건을 중심으로, 사람들 전부 오직 성공을 위해서 각개 전투를 벌였다. 특히,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시골에서 소 팔고, 땅 팔아서 어떻게든 대학 공부 시키려고 애썼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집안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그 자녀도 졸업 후에 어엿한 직장에 취직해야 했다. 자기 꿈을 위해 다른 일을 해 본다거나 또는 다양한 경험을 하겠답시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일이 허용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비어 있는 성공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현실에서 한 번 실패하면 기회가 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의 유년기, 청년기 시절이 그랬다. 실패에 대해서 냉정한 사회 분위기, 성공을 향한 고속 질주 분위기가 부모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실패에 너그러운 건 엄마에게 너무나 낯선 태도였을 것이다. 느긋하게 다양한 경험을 허용하고 자녀의 의지를 존중하는 건 엄마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탓에 자녀의 경험을 부모의 경험 범위로 한정하려고 하고, 자녀가 부모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 본의 아니게, 방해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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