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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3. 2019

[플라톤] 뛰어난 개인이라도 여럿이 모이면 우매해진다

민주제 대중의 특징

  플라톤은 민주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귀족제가 가장 바람직한 체제다. 그 다음으로 명예제, 과두제 순이다. 민주제는 참주제 보다 나은 정도일 뿐이다. 선거에서 차악의 후보를 뽑듯이 민주제 역시 차악의 제도인 것이다. 민주제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은 학자는 플라톤뿐 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도 그랬다. 국민을 탄생시킨 홉스 조차 민중을 신민으로 규정했던가. 절대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봤다. 아마 대개 민중의 한계, 즉 우매함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의 경우는 그렇다.


  오늘날 우리가 교육 제도 개선을 주장할 때 흔히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는 방향이어야 강조한다. 플라톤 역시 인간은 재능이나 자질을 타고 난다고 봤다. 누군가는 음악에, 숫자에, 또는 글쓰기 자질이 뛰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적합한 재능이나 자질을 타고나기도 한다. 그에 따라 계급을 나눴다. 통치자, 수호자, 나머지 일반 다중이다. 통치자와 수호자를 상위 계급에 두는 이유는 사회 안정이다. 개인 목적을 달성하기에 공동체 형성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사회를 이룬 만큼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한다고 플라톤은 여겼다. 우리가 교육 제도 개선을 주장할 때 말하는 것처럼 플라톤은 교육을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보존하는 수단으로 봤다. 오늘날 우리 교육처럼 없는 기술이나 지식을 쌓는 기능이 없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교육의 첫째 목적은 절제력 함양이다. 욕망 덩어리인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그 욕망을 절제하는 힘이 사회를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따라서 절제(교육)은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중요하다. 게다가 교육은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등한 사람을 선별하는 역할도 한다. 그에 따라 통치자가 될 후보자 그룹을 형성한다. 이들에게는 통치자에게 필요한 조금 더 특별하고 엄격한 지식과 자질을 교육한다. 절제력과 체육 훈련은 기본이고 수학, 기하학, 논리, 추론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사람을 통치자로 선발한다. 통치자가 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수호자 그룹이 된다. 이들은 통치자 일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 가운데는 우등한 사람끼리 아이를 만드는 일도 포함된다. 우월한 아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가장 지혜로운 자인 철인 통치자는 짝 지을 사람과 시간 등을 지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가 서로 혈연인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도 기울여야 한다. 이들 그룹은 재산도, 가족도 없다. 철저한 공동 소유다. 부패 방지를 위한 조치다. 이 때문에 플라톤이 제안한 정치 체제는 오늘날에 부합하지 않다. 우생학, 공산주의 같은 부분이 있어 지탄도 받는다. 플라톤이 이토록 극단적 모델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교육은 곧 절제력 함양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다중을 가장 열등한 계급으로 본 이유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사회 안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통치자 자질을 가장 우등한 능력으로 꼽았다. 만약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다른 자질이 가장 우등한 능력이 됐을 것이다. 가장 완벽한 통치자인 철인을 한 명으로, 그리고 소수를 그 보조자로 설정한 이유는 인간 자질이나 능력을 순위대로 하나하나 일렬로 세울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다수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흔히 조직 효율성 향상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과제와 비슷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럿이 모일수록, 집단 규모가 커질수록 전체 능력은 개개인 능력의 합과 일치하지 않는다. 능력이 10인 사람이 열 명 모이면 그 조직의 산출능력은 100이 돼야 마땅하다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아주 잘 해야 70~80 정도다. 조직 전체 능력은 떨어지지만, 덕분에 10에 못 미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일종의 무임승차다. 대신 능력이 10인 사람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혜택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능력이 10인 사람은 없다. 다른 부족한 부분에서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를 이루는 것이 인간 개인에게는 더 유리하다. 


  최대 효율, 최대 산출을 낼 수 있는 조직 규모가 있다. 사회도 분명 그렇다. 토크빌이 민주주의 모범 사회를 형성했다고 본 독립 전 미국도 뉴잉글랜드 한 개 주 정도 규모였다. 플라톤도 안정과 조화를 이룰 적정한 사회 규모 준수를 언급한다. 이에 따르면, 가장 우수한 통치자와 수호자 그룹이 사회를 지배하도록 한 제안은 일종의 조직 효율성 때문이지 우생학적 관점 때문이 아닌 것이다. 다중은 기분과 욕망에 따라 사나워지거나 온순해지는 짐승이며, 그림자만 볼 뿐 지식(이데아)을 알지 못해 철학자가 될 수 없다. 소피스트의 말에 쉽게 휘둘리며 따라서 철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비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언뜻 다중을 깔보는 듯하다. 그렇지만도 않다. 소피스트가 주입한 오해와 편견을 풀면 대중은 철학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중 그 자신이 지배계급이 될 수준은 아니라고 플라톤은 선을 긋는다. 하지만, 철학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는 의미는 개인 자질에 대한 판단 이전에 다중의 한계, 비효율성, 하향평준화를 더 우려한다고 볼 수 있다. 회사도, 아무리 탈권위 분위기라 하더라도 의사결정에서 위계질서가 전혀 없는 곳은 없다. 따라서 민주제가 최선의 체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여럿이 모이면 전체 능력이 각각의 총합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실제 우리 투표 결과를 보면 늘 지혜로웠다. 특히 유권자의 뛰어난 선택을 보여준 선거도 있다. 세월호 사건 직후 치렀던 지방선거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크게 치솟았지만 야당은 괜히 나섰다가 그 민심에 혹여 상처 입을까봐 몸을 사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름대로 관리를 한 것이었지만 자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유권자는 이 또한 엄격히 심판했다. 야당의 기대와 다르게 선거 결과는 무승부였던 것이다. 여야에 의석을 정확하게 반씩 나눠줌으로써 여야를 모두 질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의 우려를 흘려들을 수는 없다. 중우정치, 이어서 참주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민주제에는 늘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귀족제나 과두제를 채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사회 수준을 높이려면 구성원 각자가 노력해 우리 평균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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