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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5. 2019

[스피노자] 자유는 이성을 위한 수단

정치론

이데아를 지향했던 플라톤과 달리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종교적 경건을 내세우던 당시 신학자와 달리 스피노자가 추구하는 진리는 삶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 스피노자에게 국가의 목적은 코나투스를 실현하는 것, 즉 복지다. 코나투스란 존재보존성향, 즉 자기 힘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인간 본성이다. 이러한 인간 본성은 세상 만물에 내재하는 신의 힘 때문이다. 


그는 모든 자연물 안에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 즉 신의 힘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려면 자아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완성하려는 욕구를 관리해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이러한 인간 본성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힘을 갖아야 한다는 의견은 홉스와 같지만 궁극적 지향점은 홉스와 달리 안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자아실현에 있다.


그는 인간 본성을 고려하면 정치 형태와 상관없이 절대 권력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공평하게 절대자 신의 힘을 나눠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체제이건 권력은 다중의 힘이 없으면 전복되기 때문이다. 다중의 지지를 받는 권력만이 절대적이다. 권력은 자기 마음대로, 임의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주체는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결국 파멸로 이른다.


누구에게나 있는 코나투스라는 본성은 자기 욕구를 무분별하게 확장하려고 하고 이는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선한 믿음에 의지하는 국가는 불안정하다. 개인이 코나투스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성의 인도를 받아야 하듯이 국가도 같은 목적을 위해서 공무 집행자의 성정 보다는 법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또한,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모인 사회가 평화롭듯이 법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시민을 화합하게 만든다. 공무집행자와 마찬가지로 신민도 법을 따라야 하며 국가는 그 방법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 법은 코나투스를 갖고 있는 개인의 권리를 평등하게 만드는 힘이다. 법치국가의 권리를 누리는 사람들이 시민이며 의무를 준수하는 사람들이 신민이다. 


복종을 요구하는 주체의 힘에 대해서는 스피노자도 홉스와 의견을 같이 한다. 국가의 절대 권력, 즉 군주정을 긍정한다. 단, 국가의 절대 권력은 개인의 (사고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최대한 확장해야 한다. 시민이 자유로울 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신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종 수단인 법은 신민의 복종 능력 이상으로 확장될 수 없으며 이는 신민입장에서 보면 복종이 곧 자기 권리를 확장하는 방법이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복종하는 신민은 예속 상태에서 맹종하는 노예가 아니다.


자유로운 다중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더 잘 인도되지만 정복된 사람의 목적은 오직 죽음을 면하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보다는 두려움에 더 잘 이끌린다. 이렇게 맹종하는 신민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황무지다. 스피노자에게 국가의 전제 조건은 이성적인 인민들의 능동적 참여다. 군주제라 할지라도 스피노자는 의회를 구성하도록 정치 체제를 설계한다. 시민의 요구와 청원은 모두 의회에서 처리하도록 해서 의회를 왕과 시민의 소통 창구로 만든다. 이렇게 볼 때 군주정이라 해도 권력은 분산되며 왕과 다중, 그리고 왕과 의회 사이의 상호의존성으로 군주의 권력을 형성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민주적 군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홉스처럼 위협에 대한 인민의 두려움을 기반으로 존립하는 국가의 인민은 독립성을 상실하고 이성이 아니라 정념에 이끌리기 쉽다고 말한다. 만약 국가 권력이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하도록 위협한다면 다중은 집단의 힘으로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통치권을 이양하려면 반드시 다중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가 권리를 결정하는 힘은 다중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를 지지한다. 군주는 항상 자신에 대한 음모를 두려워한 나머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며 도리어 다중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기 때문이다. 왕이 국가의 권리를 많이 위탁받을수록 왕의 두려움이 커지고 국가는 불행해진다. 마키아벨리는 공동체 구성원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공화정을 주장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다중이 왕을 선출해야 하지만 다중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한다. 다중은 모호하며 만약 정념에 이끌릴 때 위협을 당하면 두려움이 폭발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선출된 왕이 가능한 오래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는 사람이든 국가든 독립성을 많이 유지할수록 좋은 상태라고 말한다. 즉,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존하며 행동할 때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자기 힘을 인지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는 시민이 되려면 군대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복무는 무보수다. 공동체를 보호하는 일은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며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주인이 인민 개인 각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스피노자도 사유재산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 당초 로크가 주장한 사유재산권의 전제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필수조건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서로를 해칠 것이라고 주장한 홉스와 달리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이성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 아니라 노동의 결과로 주어지는 사유재산권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사유재산권의 경제적 의미만 부각되는 상황이 되자 스피노자는 사유재산권 때문에 불평등이 생기고 다중이 독립성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앙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그는 이성과 정신이 인간의 삶을 정의하는 최우선 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중이라는 개개인 인간 본성을 긍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에 적합한 정치 체제를 제안했다. 그에게 정치론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한 목적으로 모으는 방법이었다. 그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성에 근거한 개인의 능동성을 강조했고 이를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는 봉건적이고 수동적인 신민subject으로서의 국민을 훈육적이며 능동적인 시민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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