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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5. 2019

[존 스트어트 밀] '소수'의 가치

자유론

밀은 토크빌과 동시대를 살았다. 토크빌이 살았던 프랑스는 민주주의 발생지였지만 자치 경험이 전혀 없어서 혁명을 반복하면서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밀이 살았던 영국은 자치로 타운을 운영해 온 전통이 있었지만 산업혁명 발생지로 경제적 번영 속에서 극심한 빈부격차로 내홍을 겪고 있었다.


격동의 시기에 새로운 변화가 사회에 긍정적으로 정착하고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려고 해서인지 두 학자의 주장은 거의 같다. 평등, 민주주의라는 시대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본 토크빌은 인류가 민주주의로 번영하려면 시민 참여, 즉 자치를 할 줄 알아서 정치권력에 의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동시에 다수의 힘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전제정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공리주의자 밀도 참여 정치라고 할 수 있는 자치를 필수로 드는 한편, 다수의 지배를 경계한다.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명성을 날렸던 듯하다.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보고 배우려고 직접 미국에서 지냈고 밀은 미국이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자유론』에서 언급한다. 둘 다 미국 정치에서 배워야 할 점은 시민의 자치라고 말한다. 또한, 둘 다 전제정치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 주장의 논거는 다르다. 토크빌은 귀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비교하면서 전제정치의 위험성이 평등으로 인한 개인의 고립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밀은 전제정치의 위험성을 민주주의 작동 원리인 ‘다수’에서 찾는다. ‘다수’가 자신과 다른 의견, 사람을 무시하면 사회가 후퇴하고 그러한 ‘다수의 권력’은 독재자의 절대 권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소수를 강조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무엇이 최선인지도 알 수 없다. 아무리 다수가 지지하는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벽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다수와 다른 의견이 있다면 토론과 논의를 거쳐서 보다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소수의 의견이 옳지 않다면 다수의 의견을 더 확신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코페르니쿠스, 아인슈타인 등 지금은 모두가 수긍하는 주장들도 그 당시에는 소수 의견이었다. 현대의 월트 디즈니, 스티브 잡스 등 저명한 사업가의 아이디어도 처음에는 다수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소수 의견이었다. 밀의 의견에 논거를 덧붙이자면, 인간은 누구나 다 소수가 될 가능성을 상당히 많이 내포하고 있다. 나는 사지육신이 멀쩡하다는 점에서 다수지만 (소소하다 할지라도) 내가 앓고 있는 특정 질병으로 분류하면 소수다. 또, 또래로 살펴보면 결혼을 했다는 점에서 다수지만 기혼자 중에서 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소수다. 기준이 바뀌면 누구나 다수에 속하다가도 소수가 될 수 있으며 또 그 반대일 수 있다.


밀은 어떤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만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 이익과 관련된 문제는 합리적으로 판단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그저 개인적이고 감정적 판단으로 의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한 때 이슈였던 ‘오픈 프라이머리’도 이와 관련된 위험성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당원이 아닌 사람에게 자기 당의 후보를 추천하도록 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닌 개인적 감정적 판단으로 의견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애당초 그 당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미 당원일 것이기 때문이다. 

밀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구든, 어떤 일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권리를 서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데 밀의 주장에서 애매한 부분도 있다. 어떤 사람이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든 말든 어떠한 이유로도 간섭해서는 안 되지만 술에 취해 공공 기물을 파손하는 등 상습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유의 범위와 규제의 범위가 애매해진다. 함께 사는 이상 인간은 서로에게 적든 크든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밀도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하다.

규제와 간섭의 범위 문제는 지금까지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폭력 같은 인권과 관련된 문제만 제외하고 사생활 영역을 사회 권력이 관여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밀의 주장을 현대 사회가 무겁게 곱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복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한편으로 개인 사생활을 국가에게 내놓아야 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밀은 범죄 예방 문제도 경계한다. 치안과 질서 유지는 정부의 의무지만 범죄 예방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빌미로 개인의 활동과 생활을 감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듯하다. 얼마 전 핸드폰에 도청장치 설치를 의무화한 ‘휴대폰 감청법’이나 안전을 빌미로 각종 영업장에 감시카메라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것이 그 예일 것이다.


자유로운 정치제도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면 시민의 자치 경험과 습관이 필수이며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하고 성숙했는지는 그 사회와 시민이 소수를 얼마나 존중하고 소외된 자를 얼마나 포용 하는가‘로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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