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와 나치즘_박찬국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과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생산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근대 사회에서 종교와 예술 그리고 윤리의 역할을 탐구한다. 이후 서양의 근대 사회를 연구한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만 나치즘에 동조했다는 오명을 남긴다.
하이데거가 활동하던 시대 독일은 사회적 혼란과 분열이 극에 달했다. 바이마르 정권은 1차 세계대전 후 민족적 자존심이 추락한 상황에서 연합국의 엄청난 배상금 요구를 받으면서도 무너진 경제를 겨우 살렸다. 그러나 곧이어 1929년 세계대공황 타격을 받고 극심한 실업과 빈부 격차에 시달린다. 그런데 32개에 달하는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의 정파들은 당리당략에만 몰두한다. 무책임한 대중을 이용한 정치 모리배의 활개 속에서 극단적 노선 대립이 득세한다.
자연스럽게 극좌파와 극우파, 지식인이나 대중할 것 없이 모두 자유주의 체제에 한계를 느낀다. 이들은 무책임한 대중 대신 통찰력과 책임감을 갖춘 탁월한 지도자나 소수 엘리트가 이끄는 민족 공동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병폐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치즘은 이를 위한 실험적 선택이다.
전체주의의 잔혹성은 2차 세계대전 후 그리고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야 알려졌다. 사람들은 아우슈비츠나 스탈린의 강제 수용소, 테러 등 나치즘을 비롯한 전체주의의 폐해를 상상하지 못한 채 극단적 방법만이 상황을 해결하리라 기대한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던 것이다.
극단적 좌우 이념 대립은 유럽 전체에서 벌어졌지만 독일은 소련과 가까워 좌익 세력이 특히 강했고 독일 특유의 역사적 전통에 더해 1차 세계대전의 설욕을 노리는 극우 세력도 강력했다. 식자층을 포함한 독일 국민 대부분은 바이마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타협과 관용으로는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극좌 아니면 극우 정권만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스탈린 체제에서 잔악한 숙청을 자행했다는 소문이 독일에 퍼진다. 공산주의는 무서운 체제다. 반면 그때까지 나치당은 덜 과격해 보이고 인종주의나 세계 정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나치는 대중에게는 민족 공동체적 사회주의 혁명을 말하고 볼셰비즘을 두려워하던 상층 계급에게는 강력한 국민 국가의 법과 질서를 약속한다.
게다가 연합국에게 굴욕적 태도로 일관하던 바이마르 정권과 달리 히틀러는 순식간에 독일 자존심을 회복한다. 독일 국민은 열광한다. 나중에는 히틀러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당시에는 히틀러가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했다. 히틀러를 지지했던 사람은 독일인뿐만이 아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히틀러를 환영하고 런던 언론도 히틀러를 지지한다.
하이데거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처럼 계급의 지배와 대립을 지양하는 사회를 추구한다. 다만 마르크스는 노동자 중심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반면 하이데거와 나치즘은 민족 공동체를 주장한다. 하이데거의 민족 공동체에서 개인은 개인의 사정이나 의견이 아니라 민족의 국가적 운명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공동체에는 노동자 신분만 있는 “노동자 국가”다. 단결을 위해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노동은 책임감을 갖고 개인과 국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행위다.
그 시대 독일 민족의 사명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생산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정신적 퇴폐에서 유럽 문명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독일 민족의 인종적 우수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시, 음악, 철학 같은 독일 민족의 정신적 업적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계승 의지로 이어받을 수 있다.
독립적인 상태에서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우호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진정한 민족 공동체다. 그는 오히려 교묘하게 조작된 대중 집회를 민족의 정신적 통일과 혼동하고 권투 선수 같은 스포츠 선수를 민족의 영웅으로 숭배하는 독일 국민을 비판한다.
하이데거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처럼 역사가 공산주의라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향해 간다고 보는 점에서 종말론적이며 또한 혁명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종말론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방식은 그 내용이 좌파적인 것이든 우파적인 것이듯 비슷한 위험과 오류를 갖는다. (p.376~378)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대개 자신이야말로 미래가 나아갈 방향을 진정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오만과 결부돼 있다. 따라서 모든 토론과 반박을 거부하는 독단으로 흐른다. 또한, 전체주의적 엘리트주의를 낳는다. 종말론적이고 혁명적 사고방식은 대개 다가올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갖는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을 상정한다. 이러한 인간이나 집단은 그러한 비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총체적 지배권을 행사한다.
나치는 자신만이 독일 정신을 진정으로 구현하고 있고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자부했으며 볼세비키는 자신만이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이해를 구현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렇게 자신을 존재의 매개로 보는 오만에 사로잡혀서 자기 사유가 얼마나 우연한 역사적 조건과 성장 배경 그리고 자기 독선이나 선입견 등에 의해서 영향 받는지를 반성하지 못한다.
하이데거도 마르크스처럼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자기 본질을 구현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순수한 의도로 사상을 주장하고 나치에 동조했다. 하지만 볼세비즘과 나치즘 처럼 내용이 좌파적이든 우파적이든 현실을 버리고 새롭게 갈등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극단적 사상과 행동은 위험을 초래하며 실패하기 마련이다.
하이데거는 니힐리즘의 극복을 위해서 내맡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내맡김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추구해야 할 태도지만 사회적으로 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이다. 다만, 나는 개인의 내맡김 태도와 사회의 제도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내맡김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며 스피노자와 마르크스의 이성이다. 내맡김의 자세를 갖추고 만든 제도와 분노나 이익 추구 같은 정념 상태에 만든 제도는 내용이나 형식이 다르다. 설사 내용이나 형식이 같더라도 그것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행위 그리고 결과가 다르다.
개인과 사회는 동체다. 무책임한 개인으로 구성된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사회에 혐오를 느낀 바로 그 개인들과 사상가들이 시도한 체제가 극단적 전체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