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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5. 2019

[케인즈와 하이에크] 입 맛 따라 달라지는 진실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_박종현

케인즈와 하이에크는 정반대 경제 정책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이들이 제시한 경제 정책이 서로 다른 이유는 불황과, 경제에 영향을 주는 변수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자연스러운 대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보느냐 차이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신용이 발달한 경제에서 호황과 불황은 자연스러운 것이”(56)라고 본다. 불황은 저금리로 인한 과잉투자 때문에 생긴다. 기업이 투자한 만큼 수익을 거두지 못하면 금리가 높아지고 기업 투자도 감소하면서 경기가 침체한다. 그동안 자연히 부실기업이 퇴출하면 다시 경기가 살아난다. 컨디션이 좋다고 과로했다가 몸살에 걸리면 꼼짝없이 앓다가 건강을 되찾는 것과 같다.

하이에크는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가격이라고 말한다. 가격기구는 훌륭한 정보 전달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 경쟁이 꼭 필요하다. 경쟁은 가격 변화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가져와 우리가 새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경쟁이란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생산자가 적응해가는 과정이자 의견이 형성되는 과정이다.”(80) 경쟁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그의 주장처럼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확실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분야는 경제가 아니라 법이다. 법이 평등하고 명확해야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125)


케인즈는 불확실성과 불황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는 당시 시류였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영국 노동당이 시행하는 현실 정치가 “기존 제도를 무너뜨리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되리라”고 본다면서 “이미 정착한 사회적 합의를 자의적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그러한 시도는 삶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공동체 윤리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37) “삶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됐을 때 비로소 변화와 구조조정, 나아가 혁신에 기꺼이 동의하고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88)하는 인간의 특징을 꿰뚫기는 했지만 다소 안정지향형이 아닌가 한다. 자전거가 균형을 잡으려고 핸들을 끊임없이 움직이듯이 사실 안정은 불확실과 불안 속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 불황의 원인을 “변덕스러운 기업가의 투자 의사 결정” 때문이라고 본다.(62) 기업의 투자 감소는 불황을 야기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근거로 투자를 줄일지 늘릴지를 판단하는가? 기업은 미래 예측을 근거로 투자한다. 그런데 기업가의 전망이 확실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게다가 기업이 판단하는데 참고한 지식과 정보가 객관적이고 충분한지 알 수 있는 주체도 없다. 제 아무리 정부 또는 대기업 같은 큰 조직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완전히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기업가(인간)는 먼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는데 필요한 객관적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러한 “불확실성 상태에서는 기업가의 주관적 기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가의 투자 의사 결정이 변덕스럽다고 하는 것을 보면 케인즈도 이러한 주장을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기대는 믿을 만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피노자처럼 그도 인간의 정념(탐욕·무지·공포·모방 등)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균형을 향한 시장의 움직임이 어긋난다고 『일반 이론』에서 밝힌다.(101)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면 개인이나 기업은 돈을 보유하려고 한다. 그러면 금리나 물가에 상관없이 개인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미래를 어떻게 기대하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움직이는 것이다. 케인즈에 따르면 “이러한 기대가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하이에크의 주장처럼 가격이 믿을 만한 정보 전달 시스템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주가 같은 “금융 자산 가격이 무지한 군중의 변덕스러운 판단과 감정에 따라 격렬하게 요동친다면 기업가가 주가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102) 따라서 그는 가격 변수 일부를 정부가 조정해 경직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정성을 보일 수밖에 없는 시장경제에 안정성을 확보하려”했던 것이다.(103)


하이에크와 케인즈가 경제 변수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불황에 대해서 다른 태도를 보인 이유는 삶의 범위를 장기적으로 보느냐 단기적으로 보느냐가 달라서다. 하이에크는 오랜 동안 광범위하게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발달한 시장을 단지 자기 주변 지식과 정보 밖에 알지 못하는 인간이 조정하려고 하면 필히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므로 특정 주체의 인위적 개입을 최소한으로 그치고 시장, 즉 자연에 맡기자고 말한다. 케인즈도 장기적으로 보면 개입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케인즈는 국민 경제에 문제가 있으면 외부 개입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길 원하며 외부 세계의 개입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자유를 갖기를 원한다.' - ≪예일 리뷰≫ (1933년 여름호) <자족적 국민 경제>”(219)


실로 자연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회복한다. 바다에서 난파된 함정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다의 일부가 된다. 그 두껍고 차가운 철 덩어리를 해초가 감싸고 물고기가 보금자리로 만들어 자연의 일부로 만드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시장도 그렇게 움직인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참고 견디기에 참으로 고통스럽다. 케인즈는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 죽는다.” 이 말은 “지금 이 순간이 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177)



시장의 자정 작용에 방점을 뒀다는 이유로 종종 하이에크를 방임주의와 혼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방임주의는 있을 수 없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외부효과를 바로 잡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이에크도 경제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오늘날 경제정책의 목표는 물가안정, 완전고용, (나머지 하나는 생각이 안남)이라고 배운다. 이러한 목표는 케인즈 이후 생긴 것으로 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방임주의에는 최소한 케인즈가 주장했던 경제 개입을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정부역할은 케인즈가 주장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정치제도와 함께 시작했다.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경제학도 철학에서 출발(181)한다. 미국의 경우 케인즈가 『일반이론』을 발표하기 전에는 공급 중심이었던 정부의 시장 개입이 이후에는 수요 중심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이 기술과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라고는 소비자라는 것밖에 없고 그 소비자는 자신이 의지할 곳이 정부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정부 역할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더욱이 그 소비자에게 잘 보여야 하는 정치인은 정부와 정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떠벌린다.


역사는 케인즈의 이론과 하이에크의 이론을 시대에 따라 이용했다. 케인즈의 주장은 대공황시대에 루즈벨트의 경제 정책을 지원했고 하이에크의 주장은 호황기에 대처와 레이건의 경제 정책을 뒷받침했다. 최근을 살펴보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기 전까지 호경기 때는 효율에 가치를 둔 작은 정부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후 불경기 때는 분배에 가치를 둔 큰 정부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어떤 주장이 더 타당해서 우리가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이 좋을 때는 실업이나 물가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부의 시장 개입이 달갑지 않고 사정이 나쁠 때는 정부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경제 정책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비슷하다. 어디가 아프면 의사가 내 몸을 진찰하고 어떤 조치를 내리기를 바란다. 빨리 통증을 없애려는 것이다. 맞아서 팔이 부러진 것처럼 외부 충격 때문에 다친 경우는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감기에 걸리거나 과로한 경우는 좀 힘들더라도 자연히 회복하도록 쉬는 게 더 낫다. 어떤 약이든 약은 다른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 잠깐 아파서 약을 먹는 경우는 다 낫고 나서 그 약의 부작용을 몸이 스스로 치유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몸이 많이 아파서 약을 오랫동안 복용한 사람은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하이에크는 좀 힘들더라도 자연히 낫도록 놔두자는 것이고 케인즈는 죽을 때 몸이 어떻든 사는 동안 편안해야 되지 않겠냐면서 약을 처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인즈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자동 안정화 장치의 메커니즘(163)은 경기 침체기에는 유용하고 적절하게 작동할지 모르지만 경기가 회복하고 나서는 경기 침체기에 늘렸던 조치를 다시 축소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는 한 번 약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약 없이는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방글라데시에 그라민 은행(마이크로크레디트)을 만들어 저소득자의 재기를 돕고 노벨평화상을 탄 무하마드 유누스는 정부 주도 복지를 반대한다. “어려움을 일시적으로만 달래줄 뿐이며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86) 병원과 약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사고로 다치거나 큰 병에 걸렸을 때는 의사와 의약품에 의지하고 과식이나 과로, 심리적 이유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는 한동안 아프더라도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현명하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과신하고 의존하면 자생력을 잃어 ‘노예’가 된다.



하이에크가 가장 경계한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시장, 경제는 광범위한 영역과 지역에 걸쳐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세상 모든 일을 알 수 없으며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런 유한한 인지와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에 인위적 조치를 취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오만 뿐만 아니라 경계해야 할 오만이 한 가지 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 또는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만이 타인을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함부로 시장에 손댔다가는 생각지도 못했던 피해자와 문제를 양산한다. 이미 시장에 온갖 개입을 해놓은 상태에서 이제 와서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무리리지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지적 능력, 정보 능력에 한계가 있다 해도 그 한에서라도 가능한 어떤 피해가 생길지, 아무리 오래 걸려도, 따져보고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마지 않는 북유럽 국가는 정책 하나를 추진하는데, 입법 하나를 통과하는데 우리 상식 이상으로 오래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특히 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방식은 가장 취약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 더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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