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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와 희생이 다수결 원칙과 만날 때

가족의 근대화는 곧 생활의 민주주의

by 홍주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배를 만났다. 함께 일할 때 그는 신혼을 갓 지나 두세살된 아이를 두고 있었다. 육아도 육아지만, 한창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할 시기였다. 그 불만은 많은 한국 며느리가 그렇듯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려고 하는 시댁과 그 사이에서 잘 처신하지 못하는 남편 태도 때문이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문제는 지속되고 있었다.


나는 일방의 얘기만 들을 수 밖에 없는 처지지만, 최근에는 본가쪽 요구와 아내의 요구 사이에서 남편이 본가쪽에서의 자기 명분을 위해 일방적으로 가족의 일을 결정해 선배와의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자기 요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배는 직장 일에 몰두하면서 겉돌았고, 그런 선배에 대해서 시댁에서도 불만을 쌓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시댁과 남편 그리고 며느리 갈등으로 드러나지만, 서로 상반되는 요구의 합의점을 찾지 못해 갈등을 지속하는 모습은 가족 안 다양한 관계에서 나타난다.


이렇게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양보 또는 희생이다. 그리고 양보와 희생을 요구받는 사람은 대개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다. 선배 경우에도 시댁의 결정에 가장 큰 불만을 갖고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선배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배우자를 비롯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선배에게 '너만 양보하면 된다, 너만 참으면 된다, 너만 희생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눈초리를 주면서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희생과 양보가 하나의 미덕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물러서지 않는 사람에게 '옳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압력을 가한다.


이런 태도는 비단 가족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회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희생과 양보 요구에 대한 정당성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다. 선배 경우처럼 집단 안에서 어떤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늘 소수이기 마련인데, 다수결을 따르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규범이라는 걸 빌미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다수결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권위주의에 지나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의 다수결 역할을 하던 신분권력이나 정치권력 또는 재산권력이 머릿수, 큰 목소리, 여론 같은 숫자로 바뀐 것 뿐이다. 자기 의견을 펴기 위해서 권위주의 시대에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했던 게 이제 자기 편드는 사람을 더 많이 모으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삭의 힘 싸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군말 없이 집단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가족처럼 작은 집단 안에서는 이것이 양보와 희생으로 표현되며,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힌다. 이런 갈등은 대개 그 이기적인 사람이 집단에서 제외되는 또는 탈출하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가족의 경우에는 겉돌기, 별거, 이혼 같은 것이고, 사회의 경우에는 소위 헬조선 탈출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일 테다.


한국이 제도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이뤘다면, 이제는 생활의 민주주의를 이뤄야 할 때라는 지적이 있다. 그것은 아마 가족의 민주주의를 의미할 테다. 체제를 수입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구와 달리 국가라는 힘에 의해 위에서부터 이루어졌고, 그 덕에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가족 단위 생활은 여전히 전근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 따위의 감정이나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성이 합리에 앞서고, 희생과 양보 같은 집단(의 다수)을 위해 소수(개인)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태도다.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익숙한 방식은 다시 사회에 반영되 역시나 갈등은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다뤄진다. 다수라는 세력을 모으는 방식은 힘싸움에 지나지 않아 갈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사회는 전쟁터처럼 변하고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마치 희생하고 양보하듯 모든 것을 내줘야 하는 상실과 굴욕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생활의 민주주의, 가족의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법/제도만으로는 전근대에 머물거나 아니면 전체주의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갈등을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한 힘 싸움 아니면 그저 회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욕구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화하려는 방식으로 풀려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 한 가족 안에서든, 사회에서든 한국의 민주주의는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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