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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Oct 15. 2021

스티븐 핑커 - 지금 다시 계몽

거장이 들려주는 계몽된 세상 이야기

SNS를 보다 보면 분노에 가득찬 이들을 쉽게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에 망조가 들었다"고 주장하며, 또 "미래는 대단히 어둡다"라고 단언합니다. 물론, 그런 주장이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현실에 근거해 있지 않죠.


2020년의 그 힘든 코로나 역병을 겪은 후, 세계경제는 놀라울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중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2021년 세계경제는 무려 5.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에도 4.9%라는 쾌속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특히 미국경제는 올해 6.0%, 내년 5.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었네요. 그런데도.. 언론지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횡행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말 그대로 저성장(0%에 가까운 성장?) 속에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는 것을 뜻하죠. 1973년의 1차 석유위기, 그리고 1979~1980년의 2차 석유위기가 아마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경제 성장률이 5.9% 그리고 4.9%인 것을 묘사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과연 적합할까요?



이처럼, 세상에는 잘 이해 안되는 표현이 넘쳐 흐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한 책 『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커, 2021년)』은 세상이 대단히 비관적인 표현으로 가득찰 때, 세상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고.. 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1. 1950년대를 고비로 굶어죽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1860년부터 2016년까지,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보여줍니다. 1920년대 말의 우크라이나 대기근, 그리고 1950년대 말 중국의 대약진 운동 이후 발생한 대기근 등이 큰 산을 만들기는 했지만.. 결국은 지금 거의 0을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구호단체들이 다양한 노력을 펼친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며, 또 '이동형 강도' 스타일의 악마같은 정부들이 예전보다는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참고로 이동형 강도란, 징기스칸의 초기 정복처럼.. 풍요로운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보다 한번에 다 털어먹고 그곳을 말키우는 목장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태도를 가진 지배자들을 은유하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징기스칸이 이끌던 몽골족은 공공연하게 "중국인을 다 죽이고 목장을 만들자"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실행에 옮긴 사례가 있습니다. 쿠빌라이칸의 '원(元)' 나라는 이런 면에서 보면, 조금 더 진일보한 정치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의 이동식 강도 정부가 집권하는 경우, 기근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고 또 평균적인 삶의 수준도 하락하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에는 이동식 강도들이 권력을 장악한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한다면 그래도 그 숫자는 크게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2. 굶주림이 아니라 비만이 문제가 되는 세상으로 변신 중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잘 먹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1700년부터 2013년까지 주요 국가의 1일 평균 섭취 칼로리를 보여주는데, 영국은 1800년을 전후해 2천 5백 칼로리의 벽을 돌파했고.. 프랑스는 1820년대에 이 벽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평균을 보더라도 2000년에 1일 2,500 칼로리의 벽을 돌파했고 2020년대에는 인도도 이 벽을 돌파할 전망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기근에서 벗어나고 또 굶어죽지 않게 된 것에 만족하면 안되겠죠. 이제부터는 비만 위험에 대응해야 하고, 또 값싼 정크푸드 위주의 식단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전이 이뤄진 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유아사망률의 급락 현상!

마지막으로 볼 <그림>은 1751년부터 2013년 동안의 유아 사망률입니다.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아이의 비율이 1750년 스웨덴, 그리고 1950년대 한국이 비슷했습니다. 35% 이상의 아이들이 다섯살이 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스웨덴, 캐나다, 한국, 칠레 모두 0%대로 줄어들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는 것처럼 부모에게 슬픈 일은 없으니, 세계가 점점 더 슬픔 없는 세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한국은 1990년대 말이 역사적인 자살율의 정점이었고.. 이후 지속적인 하락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다시 젊은이들의 자살율이 높아지고 있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 그리고 빈곤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의 문제를 모두 해결애햐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무작정 비관하고 또 진보를 부인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스티븐 핑커 교수님의 책 『지금 다시 계몽』은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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