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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an 01. 2023

천년의 바다 - 왜 이슬람 세력이 몰락했을까?

노예군단(맘루크와 예니체리 등)에 군사력을 의지하면서부터!


남종국 교수의 책 "천년의 바다"는 지중해 세계 1천년의 역사를 그린, 흥미로운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은 이슬람 세력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을 꽤 많이 가르쳐 줍니다. 그 가운데 십자군 세력을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몽고군을 처부순 이집트의 맘루크에 대해 재미있는 사실이 소개되어 있기에 인용해 봅니다.


***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품은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였습니다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상품은 바로 노예였습니다. 특히 건장한 신체와 미모로 이름 높은 슬라브계 노예는 이슬람의 하렘과 군대의 핵심을 구성했죠(254쪽).


제노바 상인들이 노예무역을 주도했다. 이들은 흑해에서 다양한 민족 출신의 노예를 기독교 세계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도 공급했다. 프랑스 출신 도미니쿠스 수도회 소속 수도사 기욤 아담Guillaume Adam은 1317년 저술한 저서 『사라센을 절멸시키는 방법에 관하여』에서 이집트 맘루크제국을 절멸시키고 성지를 되찾기 위한 자세한 방법을 설파하면서, 맘루크제국에 노예 등의 군수 물자를 판매해 이교도의 경제와 군사력에 도움을 주는 기독교인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의 말을 조금 더 인용해보겠습니다(254~255쪽).


그래서 거룩한 교황 성하께서는 많은 사람이 성지에 큰 해를 끼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바빌로니아의 사라센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첫째, 로마 교회를 따르는 상인들, 둘째, 우리 교회의 순례자들, 셋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 넷째, 북쪽의 몽골족들의 황제, 다섯째, 인도양의 상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사라센을 지원합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인 카탈루냐 상인들, 피사 상인들, 베네치아와 다른 해상 도시 상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노바 상인들이 사라센인에게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사라센인은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고, 때론 먹을 곡식과 땅을 경작할 충분한 인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앞에서 언급한 상인들이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옥의 관리자이고, 가짜 기독교인입니다.

이런 죄들보다 더 큰 죄는 신을 숭배하지 않고 교회를 공격하며 인간의 본성을 모욕하는 가짜 기독교인들이 바빌로니아제국(=맘루크제국)을 강화시키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고 세례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을 무슬림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는 것으로, 이로써 그들은 들어보지 못한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가짜 기독교인들은 소년, 소녀들을 노예로 구입합니다. 이 어린아이들은 기독교식 이름을 가진 것을 기뻐하는 불가리아 아이들, 그리스 아이들, 러시아 아이들, 알란족 아이들, 그리고 이교도들의 관습처럼 신앙심이 없는 부모가 팔아먹은 몽골(타타르) 아이들, 쿠만족 아이들과 또 다른 이교도 아이들입니다. 이 이교도 아이들은 몽골, 튀르크, 혹은 다른 이민족 적들에게 침략당하고 정복된 아이들입니다.”(Adam, 2012)


즉 기독교 상인들이 기독교 아이들을 맘루크 제국에 노예로 팔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맘루크 제국은 태생부터 기독교 국가에서 팔려온 노예에 의해 출발한 바 있습니다(255~256쪽).


아담의 이야기는 맘루크제국이 최대 노예 구매자였음을 알려준다. 맘루크제국은 1250년에 건국해 1517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를 통치했던 이슬람 왕조였다. 맘루크 Mamluk는 노예 출신 병사라는 뜻이고, 맘루크제국은 노예 출신의 장군에 의해 건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노예 병사를 충원해서 체제를 유지했다. 중세 말 맘루크제국에게 노예 병사를 공급했던 상인들이 바로 제노바와 베네치아 상인들이었다.

이들 상인들이 맘루크제국에 노예를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비잔티움제국과 킵차크 칸의 암묵적인 동의와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킵차크 칸은 일 칸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고, 맘루크제국 또한 일 칸과 잦은 전쟁을 벌였다. 즉 적의 적은 동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국제 정세 하에서 킵차크 칸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일 칸과 싸우고 있는 맘루크제국에 노예 병사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맘루크제국에 노예를 공급하면서 여러 상업 특혜를 대가로 얻을 수 있었다. 중세말 맘루크제국의 최대 무역국은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맘루크제국으로부터 가장 원했던 것은 향신료였고, 실제로 중세 말 지중해 향신료 무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기독교 세계를 가장 위협한 세력, 맘루크는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노예상인들 덕분에 세워지고 또 만들어졌던 셈입니다. 이런 까닭에 아담 같은 학자들은 맘루크에 대한 노예무역을 중단하는 순간, 즉각 맘루크 제국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역사의 반전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 읽고 있는 책 "How the world became rich(한국 제목은 '부유해지는 세계')"는 13~14세기 이후 이슬람 세계가 유럽에게 서서히 뒤쳐지게 된 이유를 바로 '노예군단'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블레이즈Blaydes와 체이니Chaney(2013)는 이슬람 정치의 중대한 특징이 통치자들이 노예 병사를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무슬림 통치자들은 다른 엘리트 집단과 군역이나 군사 자원을 놓고 교섭할 필요가 없었다. 중세와 근대 초 유럽 통치자들은 노예 군대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봉건 영주와 의회에 권리를 양보해야 했다.

반면 (노예군단 때문에) 중동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정치권력의 변화를 꾀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따라서 반란이 흔히 벌어졌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던 까닭에, 힘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으며 반란은 흔치 않았다. 그 결과, 9~10세기의 봉건 혁명으로 권력 분산이 제도화된 뒤에는 유럽의 통치자들이 더 오래 권력을 지속하는 경향이 있었다(<그림 4.4>를 보라).

플래토Platteau(2017)는 중동의 정치적 불안정성에 관한 설명에서, 이슬람의 탈집중적 성격(가톨릭교회의 중앙집중적 성격과 대립되는)으로 인해 언제나 지배 연합에서 배제되는 성직자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이 성직자들은 주로 급진적이었고, 1979년 이란혁명 당시 그랬던 것처럼 견고한 기성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이었다.


즉 서유럽의 지배자들은 경쟁자를 설득하고 또 복종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제도(특히 의회)를 도입하고, 이게 점차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발하는 제도로 발전해 나갔던 반면..  중동의 지배자들은 노예군단에 무력을 의지하고 있었기에, 경쟁자들에게 권력을 배분하는 등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결과, 중동에서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권력에서 소외된) 종교지도자에 의한 혁명과 반란이 끊임없이 벌어지며 지배  기간을 매우 단축시키는 등 끝없는 정치적 불안정을 유발했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요인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림 4.4>에 표시된,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 통치자의 집권 기간 격차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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