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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an 01. 2023

"돈의탄생 돈의현재 돈의미래"3 - 화폐가 8천종?

19세기 미국에는 8천 종의 지폐가 유통되었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에 대한 3번째 서평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1860년대 미국에 약 8,370가지의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혹시 이전에 올린 서평을 못 본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 돈의 발명 이야기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2- 골드버그 이야기


***


영국 국왕이 부과한 세금이 싫어서 혁명을 일으킨 나라,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습니다. 즉, 국민들이 사용하는 화폐를 각 지역의 은행들이 예금고(=正金 보유량)에 맞춰 찍어내는 식이었죠(160쪽).


주 정부들은 시중 은행들이 정직하게 운영되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그래서 은행들에게 최소한의 금과 은을 비축하도록 권고했고 조사관을 보내 운영 상태를 점검했다.

미시간주 은행들은 길거리에 첩보원을 심어서 이러한 주 정부의 방침에 대응했다. 주 정부 조사관이 등장하면 첩보원들은 시중 은행들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 시중은행들은 조사관이 도착하기 전에 부랴부랴 금을 확보했다.

1838년 어느 조사관이 시중 은행들의 이러한 행태를 보고 다음과 같은 시적인 글을 남겼다. “금과 은이 마법처럼 재빠르게 나라 안 여기저기로 이동하네. 그것의 소리가 숲 깊은 곳에서도 들렸네. 허나 바람처럼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아니면 어디로 가는지 그 누구도 아는 이 없네.” 어떤 은행은 조사관에게 금화로 가득 찬 듯한 상자들을 보여 줬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자를 못으로 가득 채우고 그 위를 금화로 살짝 덮어 놓은 것이었다.


물론 모든 은행이 이렇게 엉망으로 운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은행의 숫자가 너무 많고 또 자유롭게 화페를 발행했기에 금융 및 상거래 위험이 대단히 높았습니다(160~161쪽). 


시중에는 은행이 발행한 지폐가 차고 넘쳤다. 한때 <시카고 트리뷴>은 미국에 8,370가지 지폐가 유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일상의 부조리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고객이 가게로 들어와 밀가루 한 포대를 달라고 한다. 고객은 밀가루 값을 치르기 위해서 가게 주인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넨다. 고객이 건넨 종이에는 산타클로스가 그려져 있고 수백마일 떨어진 위스콘신주 와펀(아무렇게나 지어낸 마을 이름이다.)에 있는 어떤 은행의 이름이 적혀 있다. 산타클로스가 그려진 종이는 2달러짜리다. 가게 주인은 이것이 받아도 되는 지폐인지 어떻게 알까?

가게 주인은 미국에 있는 모든 은행의 명단, 각 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의 모양과 은행의 지불 능력 등이 기록된 정기 간행물인 《톰슨스 뱅크 노트 리포터>를 꺼낸다. 가게 주인은 위스콘신주 섹션에서 와펀은행을 찾았다. 거기에는 와펀 은행이 합법적인 은행이라는 것과 그곳에서 발행한 2달러짜리 지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다. 와펀 은행의 2달러 지폐에는 '2s'라는 글자와 함께 산타클로스와 썰매를 끄는 순록 그리고 '하우스 앤씨'라고 적혀 있다고 나와 있다. 고로 고객이 건넨 산타클로스가 그려진 지폐는 진짜 돈이다!

또 《톰슨스 뱅크 노트 리포터》에 와펀 은행의 2달러 지폐가 1퍼센트 할인이 적용된다고 적혀 있다. 즉, 와펀 은행이 발행한 2달러 지폐의 실질 가치는 1달러 98센트다. 할인율은 도시마다 달랐다. 발권 은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해당 지폐를 사용할수록 할인율은 커졌다. 발권 은행이 지폐를 회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한 것이었다. 발권 은행이 파산할 기미가 있다면 할인율은 빠르게 증가했다. 《톰슨스 뱅크 노트 리포터》는 위조지폐 판독서와 미국에서 유통되는 국내 주화와 모든 외국 주화를 소개한 주화 보충서도 출판했다. 위조범들은 수천 가지에 이르는 지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활개를 쳤다.


이렇게 엉망진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도, 미국이 19세기 내내 성장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강력한 이민의 유입, 그리고 서부지방으로의 팽창이 금융 혼란을 상쇄시켰다고 볼 수 있겠죠. 물론,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 덕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철도가 거미줄처럼 뻗어가는 가운데, 미국 경제를 통합하고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냈죠. 


***


아무튼 악몽 같은 은행 시스템(과 재멋대로인 화폐 발행)으로 인해, 경제 발전에 큰 장애가 발생한다는 생각이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북전쟁이 발생하면서 국법은행이 출현했죠(164쪽).


1865년 3월 3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최종 은행 법안에 서명했다. 경제 역사학자 브레이 해먼드 Bray Hammond는 “그날은 집권 2기 취임 전날이었고 남부 연합의 수도인 리치먼드가 함락되기 한 달 전이었으며 그가 살해되기 6주 전이었다.”라고 썼다. 이 법으로 주법 은행이 발행한 지폐에 10퍼센트 세금이 부과됐다. 이것은 주법 은행의 지폐에 세금을 부과해 시중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만들고 국법 은행이 발행한 단일 지폐만이 미국에서 유통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다. 법은 효과가 있었고 곧 주법 은행이 발행한 지폐는 모두 사라졌다.

남북 전쟁 이후 사람들은 '미합중국들' 대신에 '미합중국'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즉, 서로 다른 주들로 구성된 연합체가 단일 국가로 다시 재편된 순간이었다. 주법 은행이 마구잡이로 발행한 수천 가지지폐가 유통되던 세상이 사라지고 국법 은행이 발행하는 단일 지폐가 유통되는 세상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것은 국법 은행법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단일 화폐의 사용은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중앙은행이 없었기에, 대규모 은행 파산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입니다(165쪽).


국법 은행이 발행한 지폐는 액면가로 유통됐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국법 은행은 정부 채권을사들이고 채권 규모에 상응하는 규모로 지폐를 발행했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은 정부 채권 규모에 의해 제한됐다. 매해 가을이 되면 농부들은 추수를 위해서 사람들을 고용할 돈이 필요했고 상인들은 곡물을 살 돈이 필요했다. 가을이면 통화량이 부족했고 대출금리가 치솟았다.

자주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대규모금융 위기였다. 10년을 주기로 미국에는 대형 은행이 도산하거나 투기 거품이 터져 버리는 거대한 금융 위기가 닥쳤다.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은행으로 달려가 모든 예금을 인출하거나 금으로 교환하려고 했다. 항상 그렇듯 심지어 건전한 은행조차도 이러한 뱅크런 사태를 견뎌 낼 만큼 충분한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뱅크런 사태가 발생하면 경제가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고 수백만 명의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러한 금융 위기를 금융 공황이라 불렀다. 아주 적절한 명칭이다.

유럽에서는 정부로부터 지폐 발행 독점권을 인가받고 국가의 화폐를 관리할 의무를 수여받은 중앙은행을 통해 금융 공황의 빈도와 강도를 줄일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두가 공황에 빠졌을 때 중앙은행이 재정적으로 건전한 대출자(시중 은행)에게 자유롭게 대출을해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중앙은행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앙은행은 월가나 워싱턴의 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되고,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이전시키는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 결과, 미국은 대공황까지도 제대로 된 중앙은행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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