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2023.1.1)
2022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트리플 약세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원화가치가 폭락한 가운데 주식 부동산 등 주요 자산 가격이 죄다 약세를 보였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2023년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2가지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
환율 상승, 우리 기업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나?
첫 번째 긍정적인 포인트는 환율 상승이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도로 인해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상승이 출현하기에, 환율 상승 국면에 주식시장이 큰 폭의 조정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업 이익 측면에서는 다른 게 볼 부분이 많다.
일단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모인 KOSPI200에서, 수출주의 영업이익 비중은 무려 77%에 이른다. 수출기업의 이익 비중이 날로 높아진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22년 카드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쟁자를 압도할 가격 우위가 필요하다.
출처: Wisefn, 프리즘 투자자문 작성.
***
품질개선 및 가격 우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 수출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했고, 최근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총요소생산성 조사에서, 한국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가장 높은 성장률(2.8%)을 기록한 바 있다. 여기서 총요소생산성(Multi-factor Productivity)이란 노동력이나 자본의 추가적인 투입 없이 달성한 생산성의 향상을 뜻한다. 즉 근로자의 숙련 수준 향상이나 새로운 기술의 도입, 그리고 기계장치와 노동력의 결합 방법 개선 등을 통해 만들어낸 생산 효율의 개선이라 할 수 있다.
생산성의 향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두 가지 이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생산단가가 떨어진다. 예를 들어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매년 10%의 생산성 향상을 지속할 수 있다면, 이 회사의 생산단가는 올해 100이었던 것이 내년에는 90이 되고 내후년에는 81, 3년 뒤에는 72.9로 떨어질 것이다. 만일 경쟁기업들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회사는 매년 10% 가격을 인하하면서도 수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앞으로 2년 동안의 생산단가 하락을 감안해 아예 19%를 인하하는 선택지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생산성이 꾸준히 지속되는 나라나 기업은 제품 가격 인하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심지어 환율이 상승할 경우에는 가격 우위를 더욱 강화할 여지가 생긴다.
두 번째 이점은 물가 안정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가 강력한 인플레를 겪었지만, 한국의 소비자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 11월 기준으로,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1%인 데 비해 한국은 5.0%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은 달러가치가 상승한 반면, 원화 환율이 전년 대비 200원 이상 상승했음을 감안하면 한국은 인플레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쪽에 속하는 셈이다. 인플레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생산성 향상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성의 향상으로 매년 생산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면, 굳이 제품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저항을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물가가 안정되면 각국 통화의 실질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물가가 연평균 2% 상승하는 대신 미국 물가가 3%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10년 후 두 나라의 누적 물가 상승률은 각각 21.9%와 34.4%가 된다. 따라서 환율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가정하면, 한국 제품은 미국보다 무려 12.5%만큼 개선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 나아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200원 가까이 높아졌음을 감안할 때,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가장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경쟁력 개선의 효과가 즉각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했던 데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연준이 시장 참가자의 예상 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금리 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및 원자재 폭락 사태, 정책 기조 전환으로 이어질 듯
연준의 통화 정책 기조가 시장의 예상보다 빨리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미국의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붕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담보 대출 금리 상승 및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매물까지 겹치면서 케이스-쉴러 전미 주택가격지수는 최근 3개월 연속 가격이 떨어지는 중이다. 정점이었던 6월에 비해 9월 가격이 2.6%나 빠졌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2월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부동산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집세 물가도 내림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으며, 건설업에 고용되어 있는 775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의 고용도 위태로워진다.
그뿐만 아니라 2022년 6월을 정점으로 국제유가는 물론 곡물 가격이 급락한 것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 3월 8일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123달러까지 상승했지만 12월 9일에는 68달러까지 떨어졌으며, 옥수수도 같은 기간 1,237달러에서 735달러로 폭락했다. 물론 원자재가격의 하락이 소비자물가에 즉각 반영되지는 않는다. 기업이나 가계가 보유한 재고가 아직 소진되지 않은 데다, 가격 인상의 속도도 업태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서울 택시요금이 국제유가가 폭락한 지 5개월이 다 된 2022년 12월 초에 인상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2023년 상반기 인플레 지표가 발표되며 연준의 태도가 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감안할 때 내년 2분기부터 기저효과(Base Effect)가 본격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2023년 하반기에는 한국기업들이 고환율 여건에 적응하며 본격적인 가격경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끝없는 악재 속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높지만, 저 멀리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림> 국제 식량가격(파란선,좌축) vs. 미국 식료품 물가(붉은선,우축)
출처: 세인트루이스 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