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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Aug 06. 2021

도쿄 디즈니랜드 입장료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싼 이유

일본, "가격인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되다

저는 도쿄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씨를 무척 좋아합니다. 두 군데 합쳐서 다섯 번 넘게 간 것 같아요. 특히 디즈니 씨의 해질녘 풍경을 참 좋아합니다. 지금도 가끔씩 예전 여행 사진 보면서 추억에 젖곤 하죠. 그러나, 갈때마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고민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8천엔이 넘는 입장료는 상당한 부담이었죠. 가족 인원에 맞춰 입장하려면 우리 돈으로 수십만원이 넘게 드니까 말입니다. 특히 도쿄역의 그 복잡한 환승을 거쳐 디즈니랜드로 가는 기차를 타는 데에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입니다. 일본 여행하시는 분들에게 일종의 마계던전처럼 느껴지는 곳이 시부야, 신주쿠, 그리고 도쿄역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전, 저에게 부의 상징은 "도쿄 디즈니랜드 인근 호텔에서 숙박"하는 일이었습니다. 힐튼 등 다양한 호텔체인이 즐비하지만, 숙박비가 너무 비싸서.. 2월이나 11월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기 말고는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디즈니랜드, 세계서 가장 저렴…日 어쩌다 ‘물가 싼 나라’ 됐나"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사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세계 주요 디즈니랜드 리조트 중에서 도쿄가 가장 저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30년 넘게 일본이 디플레에 허덕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그림>은 1980년 이후 미국과 일본의 소비자물가 추이를 보여주는데, 일본은 1990년 이후 물가가 전혀 오르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 물가는 3.4배 수준으로 치솟았죠.


<그림> 1980년 이후 미국과 일본 소비자물가 흐름

세인트루이스 연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홍춘욱이 수정한 그림

출처: 세인트루이스 연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 요소는 일본경제가 1990년을 전후한 자산가격 버블 붕괴 이후 경제에 심각한 '공급과잉'이 생긴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의 현재 소비수준과 총생산능력의 차이를 측정한 것을 'GDP Gap'이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각국의 GDP Gap 데이터를 다운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hong8706/220507276566


경제의 공급능력(=잠재GDP)에 비해 판매량이 적으면, 당연히 경제 내에 재고 및 실업자가 넘쳐흐르게 됩니다. 이 때 GDP Gap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죠. 반대로 경제의 공급능력 대비 판매량이 많으면, 경제 내 재고가 소진되고 실업자가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이때는 GDP Gap이 플러스를 기록하게 되죠.

아래의 <그림>은 1985년 이후 일본의 GDP Gap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GDP Gap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마이너스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경제 내에 재고가 넘쳐 흐르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데,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도쿄 디즈니랜드의 입장료도 오르기 어렵습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이 가운데 지속적으로 세금이 인상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제 내에 유휴설비와 재고가 넘쳐흐르는 중에, 1997년과 2014년 그리고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소비세가 차례대로 인상되었습니다. 소비세는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대응하는 세금으로, 물건을 살 때마다 지불해야 합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데, 굳이 세금을 인상해야하는지? 더 나아가 물가 하락 영향으로 일본의 국채 금리가 제로 수준이라, 정부가 부담하는 이자부담이 거의 없는데도 세금을 인상해야 했는지? 여러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림> 1985년 이후 일본의 GDP Gap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국제통화기금의 데이터 베이스에서 받은 자료를 홍춘욱이 가공


물론 '일본 민주당의 재정건전화' 정책, 그리고 "2010년대 유럽 재정위기 비슷한 일이 일본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식의 선정적인 주장을 펼친 이들이 세력을 얻은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2021년 세계 각국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만 경제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상황이 빚어진 것에 대해서는 '공과'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은 아직 일본처럼 공급과잉이 일상화되며 디플레가 본격화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한국의 소비자물가, 특히 식료품과 에너지 제품을 제외한 근원물가의 상승률이 1.2%에 그치는 등.. 한국도 디플레 위험이 아예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에 대해서는 지난 번 포스팅(IMF, "일시적인 인플레에 긴축으로 대응말라" 권고)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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