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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타델레 Jan 28. 2019

손은 꼭 잡고


 

누군가 내게 "자주 여행가서 좋겠어요."라고 물어왔을때 "여행이요? 혼자 가는 것이 여행이죠. 가족끼리 가는 것은 가족엠티 같은 거죠. 멤버쉽 트레이닝." 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서로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고 공통의 지향점을 찾아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족여행도 엠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다섯번째 함께하는 휴가 중에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족을 '잘' 아는 것에도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린 여행 중 종종 다투는 편이다. 익숙한 일상에서라면 이해하거나 양보하거나 그냥 농담처럼 넘어갈 일들도 여행만 오면 이틀에 한번쯤은 다투는 일이 생긴다. 하루만 지나고나면 다퉜던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불과 몇시간전 교토 시내의 맥도날드에서 왼손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오른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쥐고 번갈아 마시며 두잔을 비웠다. 물론 그를 노려보며 씩씩대며 마셨다. 왜 그랬는지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홧김에 시켜서 혼자 한봉지를 다 비운 라지 사이즈의  감자튀김이 더 속상할 뿐이다. 늦은 오후였고 다리도 아팠고 피곤해서 잠시 이성을 잃었다. 굳이 두잔을 시켜서 다 마셨던 이유는 아마도 '나'를 몰라줘서일 것이다. 회사 출장이나 엠티라면 상상도 못할 은밀하고 유치한 행동들이 가족여행에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아침에는 사단이 났다. 아들에게 주려고 편의점에서 무심하게 집어온 파인애플 한봉지 때문이다. "나도 파인애플 진짜 좋아하는데...내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지도 몰랐지?" 내일 모레 마흔인 남편이 한 말이다. 몰랐는데 '푸딩'도 좋아한단다. 그러고보니 여행할 때마다 편의점 냉장칸을 뒤적이며 푸딩을 찾아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파인애플이든 푸딩이든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다. 그래서 그 정도로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사실 우리 부부는 타인에게 심할만큼 관심이 없는 타입이기도 하다. 며칠전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랬다. "모르셨어요? 단테가 여기서 떡을 제일 좋아하는데"  물론 몰랐다. 우리 부부는 둘다 떡이라면 질색을 하기 때문에 -일년에 두번쯤 먹는 경기떡집의 갓 나온 뜨끈뜨끈한 떡이라면 모를까- 우리가 낳은 아들이 떡을 먹을 것이라곤, 심지어 어린이집에서 제일 떡을 좋아하는 아이일거라고 상상도 못한 것이다. 여하튼 배웠다. 어제 이후로 우리의 여행에서 파인애플과 푸딩의 존재는 몹시 중요한 일이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진한 커피 한잔을 마셔야 하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 늦은 오후쯤에는 다시 한번 커피를 마셔야 하루의 리듬이 맞기도 하다. 혼자 다니는 여행과 출장에서도 나를 위한 커피타임만큼은 얼마나 부지런히 챙겼던가. 그러나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여행에서의 커피란 부질없는 주장이 되버리곤 한다. 어딘가를 다니다보면 커피를 '마셔야하는' 타이밍과 두 남자의 컨디션이 매번 애매하게 어긋나 버리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지 못한 것에서 오는 피곤함과 가고싶은 카페에 가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짜증과 이렇게 커피를 갈구(?)하는 나를 몰라주는 것에서 오는 섭섭함이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맥도날드 커피 두잔과 라지 사이즈 감자튀김'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여기에 곧 5세가 되는 4세 아동도 다른 의미로 한끝을 더 보탠다. 여행만 오면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몰랐던 문장과 단어들을 우수수 쏟아내고 가끔씩 허술한 거짓말을 하며  '낮잠'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자본 적이 없는 어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더 강력한 어조로 기차와 지하철 탑승을 요구하고, 딸기가 그려진 모든 간식들에 집착하는 한편, 엄마와 아빠가 이런저런 유치한 이유로 싸-한 분위기를 연출할라 치면 우리의 두손을 맞잡으며 실없이 '헤헷'하고 웃어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는 엄마로서 반성을 하는 바이다.) 



가족엠티 삼일차, 서로의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세명의 가엾은 영혼들은 오늘도 '본인에 대한 어필','상대가 나를 몰라줘서 속상함','다음번에는 알아주겠지.헤헷'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든다. 손은 꼭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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