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의 <해리슨 버거론(Harrison Bergeron)>
커트 보니것의 <해리슨 버거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 2081년의 사회를 다룬다. ‘사람들이 신과 법 앞에서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평등한 사회.’ 과연 이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정부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못생겨 보이는 ’핸디캡 장치‘를 착용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정신 장애용 라디오(Mental Handicap Radio)를 귀에 껴 생각을 하지 못하게 수시로 잡음을 듣게 하며, 힘이 세거나 운동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장치를 달아 행동을 굼뜨게 만들었다. 결국 하향평준화로 인해 평등을 이룩한 사회가 바로 소설 속의 사회이다.
어느 날, 주인공인 ’조지‘와 ’헤이즐‘은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그들의 아들 ‘해리슨 버거론‘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내 금방 까먹는다. 그는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이유로 비정상이라며감옥에 수감되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중 이 ‘해리슨’이 탈옥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해리슨은 남들보다 지능이 뛰어나고, 외모가 출중하며, 신체 능력이 뛰어난, 소위 말하는 천재적인 인물이다. 사회에서는 그에게 더 많은 제약을 가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능력을 제한하는 수많은 장치를 착용해야만 했다. 때문에 그는 ‘거의 할로윈 분장과 다름없는‘ 외양을 갖게 되었다. 해리슨은 텔레비전 생방송 중에 스튜디오에 침입해 ‘자신이 황제임(emperor)’을 주장하며 난동 내지는 반란을 일으킨다.
그 반란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해리슨은 국장의 소총에 맞아 즉사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전국의 시청자가 보는 생방송 TV 화면 속에서.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금방 잊어 버리고 마는 장면으로 소설은 막이 내린다.
작가 커트 보니것의 SF적인 상상력과 사회 풍자적인 블랙 유머는 볼 때마다 매력적이다. 유머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있는 풍자라면, 블랙 유머는 인류에 대한 불신과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둘 중에서 커트 보니것이 택한 방식은 전적으로 후자이다.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포로로 드레스덴에 끌려가 수용소에 갇혀 폭격을 경험한 그로썬 인간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원론적인 평등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진정한 평등은 어느 정도의 하향 평준화와 불평등을 수반하지는 않는가. 오히려 개인의 개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더 공평하지 않을까.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도 평등의 이름으로 불공평이 행해지고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또한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미디어가 어떻게 사람들의 세상을 통제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대중의 사고 방식을 미디어가 어떻게 절제하고 미디어에 이용할 수 있는지, 그것이 현대 사회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해리슨 버거론은 어떤 인물일까? 그의 반란은 영웅적일까, 무모할까? 나는 그가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해리슨의 최후에는 어느정도 미국적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도 반영되어 있다. 작중 해리슨은 총 한 발에 즉사한다. 이는 반영론/표현론적 관점으로 해석했을 때, 작가의 냉소적인 시각과 전쟁을 경험한 사람으로써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당시 그에게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평등과 불공평의 역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저울질하며 저글링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경험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