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의 몰락한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주인공 에밀리 그리어슨의 비극적인 삶과 그녀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다루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서술자는 마을 사람들로, 그들의 시선에서 에밀리의 삶을 조각조각 회상하며 진행된다.
소설은 에밀리의 죽음과 장례식로 시작된다. 한때 명문 가문의 딸이었던 그녀는 오랫동안 은둔하며 살아왔으며, 그녀의 집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쇠락한 상태로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과 애도 속에서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소설은 그녀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에밀리는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자라며, 결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과보호하며 구혼자들을 모두 내쫓았고, 결국 그녀는 독신으로 남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녀는 며칠 동안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시신을 내놓지 않았다. 이 사건은 그녀의 정신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후 에밀리는 북부 출신 노동자인 호머 배런과 사랑에 빠진다. 마을 사람들은 귀족 가문의 여성이 평민과 어울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둘의 관계를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한편, 호머는 결혼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 무렵 에밀리는 약국에서 비소(독극물)를 구입하지만, 그 용도를 밝히지 않았다.
그 후로 에밀리는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채 집 안에서 은둔 생활을 한다. 세월이 흐르며 그녀의 모습은 점점 변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잊혀 가는 존재로 여긴다. 그러다 결국 그녀가 죽자, 사람들은 그녀의 집을 정리하던 중 오랫동안 잠겨 있던 방 하나를 발견한다. 문을 열자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침대 위에는 미라화된 호머 배런의 시신이 놓여 있었고, 그의 곁에는 에밀리가 함께 누웠던 흔적과 긴 회색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이 결말은 에밀리가 호머를 독살한 후, 그를 곁에 두고 평생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그녀가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몰락한 남부 귀족 사회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전통과 변화의 충돌, 사랑과 집착, 고립과 광기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포크너는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선형적으로 그리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에밀리라는 인물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소설의 진행과 사건 발생 순서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말하자면 역순행적 구성의 서술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읽으며 시간 순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소설이다.
에밀리 그리어슨은 남북전쟁 이전 번성했던 귀족 가문의 후손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녀의 집안은 몰락했고, 그녀의 삶도 점점 쇠락해간다. 그녀의 낡고 퇴락한 저택은 남부 전통의 잔재이자 몰락한 과거의 상징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색 중 “gray, 회색”이 가지는 상징성도 눈여겨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회색은 보통 빛이 바래거나 먼지가 내려앉은 모습을 연상시키며 남부 귀족 사회의 쇠퇴를 반영하는 장치로써 사용된다.
하지만 동시에 단단한 돌이나 시멘트의 색이기도 하면서, 강하고 고집 센 모습을 대변하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회색이다. 에밀리의 머리 색은 낡았음에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저택의 그것과 닮았다.
에밀리는 호머를 왜 죽였을까? 그녀는 호머가 자신을 떠날 것을 두려워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을 견디지 못한 걸까? 결국 그를 살해한 행동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통제할 수 없는’ 광기에서 비롯된 것일까?
제목에 등장하는 "장미(Rose)"는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장미는 “사랑, 죽음, 애도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치 무덤에 헌화하는 꽃처럼, 제목은 에밀리에 대한 동정과 애도의 감정을 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장미를 에밀리에게 건넨다. 에밀리를 가여운 여성(Poor Emily)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미친 여자로 보아야 할까? 어찌 보면 그녀는 마을에서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가십거리를 몰고 다니는 연예인과도 같았다. 이런 그녀의 최후와 비극적인 배경 스토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혹시 우리 사회에도 에밀리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