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한 폭력과 광기로 가는 생생한 과정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

by 홍은표


길먼의 누런 벽지 (The Yellow Wallpaper)는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가 남편 존과 함께 요양을 위해 시골 저택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존은 의사(a physician)로서 아내에게 휴식과 안정만을 요구하며 그녀가 글을 쓰거나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한다. 주인공인 ‘나’는 저택의 황량한 방에 갇혀 지내며, 특히 방 안의 누렇게 바랜 벽지에 집착하게 된다. ‘나‘는 처음에는 그저 보기 싫은 벽지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안에서 이상한 패턴과 형체를 보게 되고, 마침내 벽지 뒤에 갇힌 여성이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믿게 된다. 그녀는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하고, 마침내 자신이 그 벽지 속에서 해방되었다고 여기며 방 안을 기어 다니는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문을 연 존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충격으로 쓰러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단편소설은 화자의 일기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에는 신경증을 앓는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에게 절대 안정(Rest Cure/Bed Rest)라는 치료법을 권유하며 일은 물론 (“am absolutely forbidden to “work” until I am well again)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활동을 금지시키고(“he hates to have me write a word”) 침대에서 휴식하기를 강요했다 .

작중 초반에 “나”가 별장으로 오게 된 이유도 그러한 치료법을 따르기 위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고, 의사인 존이 일기를 쓰는 행위 또한 금지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 처방이 가지는 문제점은 당시 이 치료가 거의 여성을 ‘교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여성과 아내를 독립적 주체로, 또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닌, 특정한 사회적 요구를 수행하기 위한 존재(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빌리자면, 집 안의 천사)로 보는 가부장적 시대 삶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작가인 샬럿 또한 출산 후 우울증이 심해져 당시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미첼 박사를 찾아 갔는데, ‘무조건 휴식을 취하고 모든 지적 활동을 금지할 것’을 처방 받는다. 의사의 조언대로 살아가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잃어감을 느끼고 다시 가정적인 삶에서 벗어나 일을 시작한다. 그 후에 쓴 소설이 바로 “The Yellow Wallpaper”이다. 어느 정도는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한 셈이다.


작중 화자는 벽지에 갇힌 여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꺼내 주기 위해 벽지를 뜯어 낸다. 방 속에 물리적으로 갇혀 있는 자기 자신과 벽지 속의 여인을 동일시하는 것. 또한 누런 벽지는 작중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씌운, 자유를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창살을 비유한다. 문학 속에서는 특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 벽지는 여성의 손에 의해 찢어지고 아내인 화자는 남편 위를 기어 다닌다(creep over him,). 작가는 문학에서라도 권력의 구조를 뒤엎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소설속에서 존이 ‘가정적’이라고 보이는 순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는 다소 통제적이지만, 다정한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안고 올라가 침대에 눕히기도 하고 잠에 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아내의 건강을 위해 저택을 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제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는 그녀를 걱정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내의 상태를 걱정해 방 안에 들어간 그는 아내가 벽지를 다 뜯어놓고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하고 만다.


그래서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내 짝의 아픈 모습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혹은 내가 상상하는 이상향만을 추구하며 그 사람이 ‘낫기’만을 바라는 것일까? 존이 마지막에 목격한 여인은 그가 사랑하던 여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을까?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에 진정 “그녀”가 존재하기는 했을까?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것은 아닌가?


현대적 시각에서 이 작품을 읽을 때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시선 없는 응시와 내밀한 폭력에 대해 다룬다. 이 소설은 100년 전에 쓰였지만 너무나 현대적이다.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고 바로 따지려 들 것이다. 이런 사실조차 그 아이러니의 존재를 완벽하게 입증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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