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도입부에서 니체의 영혼 회귀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아니 이 책 연애 소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당황하며 입문에서부터 어려움을 느껴 읽기를 포기하는 독자가 수두룩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려움을 꾹 참고 읽다 보면 이 책은 오묘해서 아름답다. 실존과 방황에 대해, 사랑과 삶에 대해, 책임과 자유에 대해,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들며 이어나가는 작가의 문장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글쎄 그러니까 참고 읽어 보세요.
난 어릴 적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장례식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항상 무뚝뚝하시던 이모할머니가 그렇게 우시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장례식장에서는 저런 의식 같은 걸 하나 보다, 추측했던 것 같다. 그때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모할머니는 지금 연습 중이신 걸까? 그런 건지 엄마한테 여쭤봐도 될까?’ 그랬다가 바로 그 생각을 수정했다. ‘아니지, 죽음에는 연습이 없어. 그냥 바로 실전이지.’ 아마 이때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을 깨달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인생에 내던져졌기에, 마치 밑그림 없이 그린 수채화와 같다.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양날의 검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한 번밖에 못 산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 삶이 무척 특별함을 의미할 수도 있고 내 삶이 무척 쓸모없음(가벼움)을 의미할 수도 있기에. 이런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까, 혹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빠져 살도록 할까? 우리 삶에는 연습이 없고 실전뿐이란 사실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소설 내에서는 네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각자가 그 사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주인공 ‘토마시’는 프라하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며,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책임 지는 것을 회피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사진작가로 일하는 ‘테레자’를 만나며 사랑과 자신의 삶의 방향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토마시의 애인 중 한 명인 ‘사비나'는 조국과 사랑을 배반하며 끊임없이 도망치는 인물이다. 사비나의 애인인 교수 ‘프란츠'는 사랑을 숭배하려 하는 등,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적 가치에 충실한 인물이다.
각각의 인물이 ‘무거움’과 ‘가벼움’을 상징한다는 점도 흥미롭게 볼 만 하다. ‘사비나’는 가벼움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그와 반대격이라 볼 수 있는 ‘프란츠’는 무거움을 대표한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서로의 관계에서 각각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이동하려는 입체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것,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정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인생에서 추구하려고 한다. ‘키치’의 일반적 정의는 모방 예술, 저속한 상업적 예술을 의미하지만,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키치’는 바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추한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책의 6부인 <대장정>에서, 스탈린의 아들이 똥 때문에 비난을 받자 전기 철조망에 몸을 던져 자살한 일화가 나온다. 그는 더러움을 부정하는 행위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키치다.
가끔씩 잠들기 전에, 죽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인생이 한 번 뿐이고 죽음 뒤에 아무것도 없단 사실이 우리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이유고, 삶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갖는 이유이다. 아마 우리 모두 살아가며 모두 저마다의 무거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책 속의 토마시와 테레자가 서로의 관계에서 삶을 극복했듯이, 서로 사랑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베푸는 자세라면 충분하다. 우리 모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이니 서로서로 꼭 붙들어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