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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타일과 황금의 빛깔

경건 속의 화려함

by 트릴로그 trilogue

포르투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소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골목을 하나씩 걸어보면, 도시의 숨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종교 건축과 예술, 그리고 일상의 기도가 눈에 들어온다. 성당들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서서, 한 시대의 미학과 인간의 신앙심이 새겨진 살아있는 이야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번 여정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아줄레주의 시원한 쪽빛 벽화부터 금빛 탈랴 도라다의 찬란함까지, 포르투의 신앙 예술이 시간을 걸어온 발자취였다. 카르무, 알마스, 산투 일데폰수, 포르투 대성당, 상 프란시스쿠, 산타 클라라. 이 여섯 개의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과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고요한 서사였다.


쪽빛 신앙의 외벽들 - 아줄레주 성당들


카르무 성당 (Igreja do Carmo)

포르투에 첫발을 딛고 맨 처음 찾은 곳이 바로 이 성당이었다. 포르투 중심부에 자리한 카르무 성당은 클레리구스 탑이나 렐루 서점 같은 다른 명소들과 함께 둘러보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성당 측면 전체를 장식한 거대한 아줄레주 벽화였다.


1912년 실비스트르 실베스트르가 제작한 이 작품은 푸른색과 흰색 타일이 어우러져 마치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사의 날개 하나하나, 성인의 눈빛, 신의 은총을 상징하는 빛줄기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깊은 코발트블루부터 연한 하늘색까지, 각기 다른 푸른빛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햇살 아래에서 더욱 영롱하게 빛나는 이 벽화를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푸른 환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카르무 성당 외벽의 아줄레주


카르무 성당은 1756년에 착공되어 1768년에 완공된 건물로,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내부에는 금으로 장식된 예배당과 다양한 성인상, 예수상이 정성스럽게 자리하고 있어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성당 바로 옆에는 카르멜리타스 성당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이 두 건물 사이에 놓인 '세상에서 가장 좁은 집'도 독특한 볼거리다. 당시 수도사와 수녀의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이 집은 불과 1미터 남짓한 너비로, 건축 규범과 당시 사회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역사의 흔적이다.

정전(停電)된 카르무 성당의 외부와 내부
왼쪽은 카르멜리타스 성당, 오른쪽은 카르무 성당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쉽게도 정전으로 내부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고요한 어둠 속에서 느낀 정적과 경건함이 오히려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장식이 잠시 사라진 자리를, 공간 그 자체가 지닌 위엄과 고요함이 채우고 있었다. 빛이 사라졌기에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고, 그 침묵 속에서 들리는 마음의 소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카르무 성당 부근 광장의 '사자 분수'


알마스 성당 (Capela das Almas)

포르투의 중심 거리, 상 벤투 역 인근의 분주한 길목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푸른 성당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알마스 성당이다. 볼량 시장 등 번화한 상점가와 노면전차가 오가는 거리 한가운데 우뚝 선 이 성당은, 외벽 전체를 뒤덮은 아줄레주 덕분에 한순간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메트로 볼량역과 알마스 성당


'영혼의 예배당'이라는 뜻을 지닌 이 작은 성당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 예술성과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외벽을 채운 15,000장의 아줄레주는 20세기 초 조르즈 콜라소가 디자인한 것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성녀 카타리나의 순교 장면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타일 하나하나가 마치 세밀화처럼 섬세하며, 그 속에 담긴 장면들은 하나의 종교 회화처럼 다가온다.


이 성당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한참 동안 외벽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소음은 자연스레 잦아들고, 시선은 그림처럼 펼쳐진 타일 속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 머물렀다. 아줄레주의 푸른빛은 맑고 차분하여,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알마스 성당의 푸른 외벽


실내로 들어서면 바깥의 푸른빛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빛나는 제단과 작은 촛불들, 그리고 벽을 장식한 금빛 프레임들은 고요함 속에서도 깊은 신앙의 무게를 전한다. 공간은 비록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기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알마스 성당의 입구와 내부 모습

알마스 성당은 포르투를 걷는 여행자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은은한 쉼표 같았다. 번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만나는 이 고요한 공간은, 포르투가 품고 있는 신앙과 예술의 정수를 조용히 들려주는 듯했다.


산투 일데폰수 성당 (Igreja de Santo Ildefonso)

알마스 성당을 나와 산타 카타리나 거리를 구경하며 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작은 광장을 마주한 채 단정히 서 있는 성당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탈랴 광장 부근에 위치한 이 성당은 겉모습만으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산투 일데폰수 성당은 18세기 초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두 개의 종탑이 균형 있게 솟아 있고 정면 외벽 전체가 아줄레주로 뒤덮여 있다. 이 푸른 타일은 1932년에 완성된 것으로, 역시 조르즈 콜라소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타일에는 성 일데폰수의 생애와 복음서 속 장면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면 하나하나의 표정과 동작에서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산투 일데푼수 성당의 멋진 모습


푸른 타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건한 울림을 준다. 단순한 장식을 넘어서서, 한 편의 성화를 정면에 새긴 듯한 느낌이다. 도시의 소음과는 조금 떨어진 이 언덕 위에서, 성당은 고요하게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는 듯했다.


아쉽게도 성당이 닫혀 있었고 일정의 제약으로 내부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외벽 앞에서 잠시나마 머물렀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붐비는 거리와 언덕길 사이에서 마주한 그 고요한 정면은, 화려함보다는 단단한 신앙의 흔적처럼 다가왔고, 그 차분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돌과 시간의 축적 - 포르투 대성당

숙소에서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포르투 대성당(Sé do Porto)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을 넘어서서, 포르투라는 도시의 역사와 예술적 혼이 집약된 공간이다. 도시 중심부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이 대성당은 견고한 요새를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포르투 시내 전경과 도루 강, 그리고 맞은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한다.

대성당 앞에서 바라본 전경


이 대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새형 교회로 처음 건립되었으나,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증축과 개축을 거치며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 요소들이 층층이 쌓여, 다양한 시대의 미학과 기술이 혼재된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으로 진화했다. 두꺼운 석벽과 작고 견고한 창문, 육중한 쌍탑은 중세의 불안정한 시기에 방어 기능을 겸했던 요새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포르투 대성당의 위용

14세기에는 우아한 고딕 양식이 도입되면서 건물은 새로운 미적 변화를 맞이했다. 특히 대성당의 상징과도 같은 장미창은 내부로 빛을 풍성하게 끌어들여 신성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이후 17세기말부터 18세기에 걸쳐 바로크 양식이 대대적으로 가미되며, 금박을 입힌 목재 조각(탈랴 도라다), 은 제단, 화려한 제단화 등 장식적 요소들이 더해졌다. 이 시기의 변신은 단순한 외관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신앙의 위엄과 장엄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문화적 전환이었다.

대성당의 내부와 예배당

이른 아침 브라가로 가기 전에 다시 찾은 대성당은 아직 붐비기 전이라 여유 있고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부에서 가장 압도적인 예술적 요소는 바로 회랑을 뒤덮은 푸른빛 아줄레주였다. 18세기에 제작된 이 아줄레주는 성모 마리아의 삶과 고전 신화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종교적·신화적 장면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뿐만 아니라 결혼 피로연이나 사냥 같은 세속적인 주제도 함께 다뤄서, 아줄레주가 단순한 장식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층 복도의 아줄레주

아치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줄레주에 반사되며 만들어내는 푸른빛과 그림자의 교차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처럼 아줄레주는 정적인 장식이 아니라, 빛과 시간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이며, 성당 내 경건한 기도와 명상의 매개체로 기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타일의 냉각 효과는 포르투의 더운 기후에서 실내 온도를 낮추는 실용적인 역할도 겸했다고 하니 참으로 지혜로운 발상이었다.


대성당 2층과 중정
회랑의 아줄레주 중 일부
대성당 회랑

성당 앞 광장은 포르투 시내의 전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이곳에서 바라본 도루 강과 히베이라 지구,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풍경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광장에 세워진 페로우리뇨(Pelourinho)라는 기둥은 한때 죄인이나 노예를 묶어두던 처벌 장소로, 도시의 어두운 역사를 말없이 증언한다. 이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으로서, 포르투가 지닌 복합적 역사와 정체성을 되새기게 하는 듯했다.

성당 앞 페로우리뇨 기둥


결국 포르투 대성당은 시간의 흐름 속에 다양한 건축 양식과 예술이 응축된, 도시의 정신적 심장부이자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 견고한 벽과 화려한 아줄레주, 고딕의 빛과 바로크의 화려함이 어우러져 포르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장소였다.


금빛의 신비 - 탈랴 도라다의 세계


상 프란시스쿠 성당 (Igreja de São Francisco)

렐루 서점을 구경하고 히베이라 강변으로 향하며 만난 상 프란시스쿠 성당은 겉모습만으로는 소박한 고딕 양식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부를 가득 채운 금빛 탈랴 도라다(Talha Dourada)의 장관에 숨이 멎었다. 제단부터 기둥, 천장에 이르기까지 나무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이 순금박을 입고 찬란하게 빛났다.


이 성당은 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18세기 브라질 식민지에서 들여온 금으로 바로크 양식의 재단장 작업이 이루어졌다. 단순한 부의 과시를 넘어서서, 신앙의 엄숙함과 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의지였다. 특히 '이새의 나무(Tree of Jesse)' 제단 조각은 예수의 족보를 시각화한 독특한 신학적 예술로, 성경의 계보가 하나의 나무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상 프란시스쿠 성당의 이모저모 (우측 하단이 '이새의 나무')

18세기 포르투갈 교회에 쏟아진 금과 장식의 열기. 그 찬란함 뒤에는 한 시대의 선택과 방향이 있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성당을 바라보며 떠오른 아이러니였다. 만약 그 금을 미래 산업과 교육에 사용했다면 포르투갈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이처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얻게 되었다.


산타 클라라 성당 (Igreja de Santa Clara)

상 프란시스쿠 성당의 감동을 간직한 채, 포르투 대성당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타 클라라 성당은 외관으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숨이 멎을 듯한 황금빛 숲이 펼쳐진다. 15세기 고딕 수도원 건물 내부는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개조되었고, 탈랴 도라다 기법으로 극도의 섬세함이 구현되었다.

산타 클라라 성당의 모습

벽면과 천장 전체를 가득 메운 황금빛 목조 조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수많은 천사상과 식물 모티프, 종교적 상징들이 금박으로 빛나며, 그 밀도는 감각을 일종의 황홀경으로 몰아넣는다. 상 프란시스쿠 성당이 남성적이고 웅장한 금빛이라면, 이곳은 훨씬 더 섬세하고 여성적인 금빛의 성소였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나는 오히려 마음 깊이 새겨 넣을 수밖에 없었다. 눈과 가슴에 담긴 이 풍경은 어쩌면 더 오랫동안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성당이 들려주는 이야기

성당은 결국 말이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벽면과 천장, 타일과 조각들은 시대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나는 이 여정 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마주했고, 걷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묵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성당들을 따라 걷는 여정은 하나의 순례이자, 도시를 건축과 신앙의 지도로 읽는 경험이었다.

포르투라는 도시는 이 여정 속에서 거대한 신앙의 공간처럼 다가왔다. 벽돌 하나, 타일 하나, 나무 조각 하나에도 시대와 믿음이 서려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의 감각과 시간을 조용히 맞춰갔다. 그곳에서 만난 성당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여행자인 나에게도 조용히 번져와, 말없이 마음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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