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벨렝에 새겨진 영광의 시간

마누엘 양식의 찬란함,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탑

by 트릴로그 trilogue


대항해시대의 흔적을 찾아서


코메르시우 광장 부근 버스 정류장에서 728번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20분쯤 가다 보면, 테주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지점에 벨렝이라는 작은 지구가 나온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 뭔가 다른 공기가 흐른다는 걸 느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과 넓은 광장, 그리고 멀리 보이는 4월 25일 다리 너머로 펼쳐진 수평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여느 유럽 도시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곳이 바로 500년 전 포르투갈이 세계로 뻗어나간 출발점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그 다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벨렝은 단순한 리스본의 한 동네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인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바로 그 장소였다.


'Rick Steves Portugal'에서 인용


세계를 바꾼 작은 나라의 큰 꿈


엔히크 왕자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그리다

15세기 중반, 유럽은 아직 세계의 일부에 불과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고, 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 너머가 미지의 땅이었으며, 아시아로 가는 길은 오스만 제국이 장악한 육로뿐이었다. 그때 포르투갈이라는 작은 나라가 바다를 통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벨렝 탑 앞에 서서 테주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1415년 엔히크 왕자가 이 강에서 아프리카 탐험을 위한 첫 함대를 출항시켰을 때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험이었다.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간다는 것, 그것도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내려간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아시아의 향신료였다. 당시 후추 한 자루가 양 한 마리 값이었고, 계피나 정향 같은 향신료들은 같은 무게의 은보다 비쌌다. 이 귀한 물건들이 모두 베네치아 상인들과 이슬람 상인들을 거쳐 유럽으로 들어왔는데, 만약 바다를 통해 직접 아시아에 갈 수 있다면 중간 마진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





돌에 새겨진 세계인의 꿈


아침 일찍 벨렝에 도착해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갓 구운 나타(에그타르트)로 하루를 열고,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에 섰다. 안개가 엷게 걷히며 낮은 햇살이 수도원의 정면을 스치자, 거대한 석조 건물이 천천히 깨어나는 듯 보였다. 1496년, 마누엘 1세가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를 기리며 착공을 명한 이 수도원은 향신료 무역의 풍요로움에 힘입어 긴 세월 동안 완성되었다. 대항해 시대의 웅장한 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보물 같은 공간이었다.


수도원 오픈 전 줄지어 있는 모습


수도원 입구


정문 오른편의 산타 마리아 성당 입구는 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 정교했다. 햇살을 비스듬히 받으며 빛나는 부조 속에는 엔히크 왕자와 12 사도, 성 제로니무스의 생애가 촘촘히 담겨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서늘하면서도 장엄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부드럽게 휜 아치형 천장은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길처럼 펼쳐져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뚫고 들어온 빛은 성당 내부를 성스러운 화면처럼 물들였다.


성당 입구의 모습
성당 내부의 모습


왼편에 놓인 바스쿠 다 가마의 석관에는 밧줄과 범선, 혼천의와 십자가가, 오른편의 루이스 드 카몽이스 석관에는 월계관과 펜이 새겨져 있었다. 두 인물은 각각 바다와 언어를 통해 포르투갈을 세계의 무대에 세웠다. 해묵은 돌에 남은 조각이지만, 그 곁에 서 있으면 시간의 무게가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듯 심장이 두텁게 울렸다.


바스쿠 다 가마의 석관
카몽이스의 석관
성당 안의 스테인드글라스




성당을 나서자 수도원의 진정한 하이라이트, 55미터 사각형 회랑이 펼쳐졌다. 그곳은 돌로 빚은 바다였다. 기둥마다 밧줄, 닻, 나침반, 해양 생물과 이국의 식물이 뒤엉켜 한 편의 서사처럼 조각되어 있었고, 야자수 문양은 천장을 떠받치며 마치 거대한 대지를 이루는 수목처럼 솟아 있었다. 햇살이 좁은 창으로 스며들며 기둥과 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 오래전 항해자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설렘이 잔잔하게 되살아났다. 한 걸음마다 바다로 떠나는 꿈과 기도가 돌 속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성 제롬의 일생을 그린 작품 중의 하나


회랑을 천천히 돌며 문득 2층으로 올라섰다. 층마다 미묘하게 다른 장식과 곡선이 드러나 건축가들의 서로 다른 숨결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긴 회랑 끝자락에 자리한 고해의 방은 이 화려한 공간에도 수도승의 은둔적 기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회랑을 지나 정원에 이르자 바람소리조차 한층 낮아졌다. 그곳에 서서 눈을 감으니 수백 년 전 바다를 꿈꾸던 이들의 숨결이 고요히 스며와, 이 광활한 세계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원래 식당으로 사용했던 공간이라고 하는데 아줄레주가 일품이다
회랑의 모습
포르투갈 예술유산의 수호자였던 알렉산더 에르쿨라노의 무덤


1755년 거대한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하나의 정신을 보여준다. 돌벽에 새겨진 무수한 조각은 당시 사람들의 손길 속에 담긴 신념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온라인 예약으로 긴 줄을 피하면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고, 특히 이른 아침에 찾으면 고요 속에서 시대와 시간이 맞닿는 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대항해 시대의 영광과 꿈을 돌에 기록한 이 수도원에서, 우리는 세계를 향해 손 내밀던 인간의 치열한 열망과 끝없는 상상을 만날 수 있었다.


벨렝탑으로 향하던 중 찍은 사진. 여전히 엄청난 대기줄과 트램의 모습이 인성적이다.





테주강의 귀부인, 벨렝 탑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나와 길을 건너 Museum of Contemporary Art를 관람한 후, 오후 1시경 테주 강변으로 향했는데, 멀리서부터 수면 위에 우아하게 솟은 벨렝 탑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탑을 향해 걸어갔지만, 아쉽게도 복원을 위한 출입 통제로 탑 내부는 물론 바로 앞까지 다가갈 수도 없었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경계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본 벨렝 탑은 오히려 그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내 보였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16세기 마누엘 양식의 정교한 조각들을 비추며,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탑의 표면이 부드러운 크림색으로 빛났다. 멀리서 바라보니 탑의 균형 잡힌 비례와 테주 강과의 조화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출입 통제선을 따라 탑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감상했다. 강 쪽에서 바라본 벨렝 탑은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환상적인 모습이었고, 육지 쪽에서는 견고한 요새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외벽에 새겨진 왕관 문양과 그리스도 기사단의 십자가, 그리고 항해와 관련된 상징들의 윤곽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출입 통제 구역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여러 각도를 시도해 보며 겨우 탑의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위치를 찾았는데, 그나마 강변 쪽에서 비스듬히 바라본 각도에서만 탑의 특징적인 모습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었다. 통제선 안쪽의 더 가까운 거리에서 찍었다면 훨씬 세밀한 조각들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벨렝 탑만의 독특한 실루엣과 테주강과의 조화는 충분히 기록할 수 있었다.


특히 유명한 코뿔소 조각을 찾아보려 애썼는데, 다행히 멀리서도 그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거리상 한계가 있었지만, 16세기 포르투갈의 세계 탐험 정신을 상징하는 이 독특한 조각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 있었다. 실제 인도코뿔소를 본떠 만든 이 조각이 당시 유럽인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존재였을지 생각해 보니, 대항해 시대의 모험과 발견의 설렘이 전해져 왔다.


붉으 원안에 잇는 것이 코뿔소 조각임


근처 벤치에 앉아 테주 강을 바라보며, 오후의 온화한 햇살 아래서 이 탑이 품고 있는 이중적 성격에 대해 생각했다. 16세기 초 마누엘 1세 치세에 건립된 아름다운 요새이면서도, 동시에 반역자와 정치범을 가두는 감옥으로도 쓰였다는 어두운 역사. 화려한 외관 아래 숨겨진 비극적 이야기들이 탑의 무게감을 더해주었다. 밀물이 차오르면 하부층 창문까지 강물이 스며들었다는 전설을 떠올리니, 고요한 지금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과거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탑에 직접 오를 수는 없었지만, 대신 이곳이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상상해 보았다. 바스코 다 가마를 비롯한 용감한 항해사들이 미지의 대양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고향의 상징. 가족과 동료들이 이 탑을 배경으로 작별을 고했을 그 순간들이 고요한 강물 위로 스며드는 듯했다.


오후 2시경, 탑에 비치는 빛의 각도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정오의 강렬한 빛보다 부드러워진 햇살이 탑의 한쪽 면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이 순간만큼은 출입 통제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덕분에 벨렝 탑과 테주 강, 그리고 노을이 만들어내는 고요하고 장엄한 풍경을 온전히 독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탑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거나 꼭대기에서 강 전체를 내려다보지 못했지만, 멀리서 바라본 이 만남 자체가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대상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밀한 디테일은 놓쳤을지 몰라도, 대신 벨렝 탑이 테주 강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장대한 풍경의 전체를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멀리서나마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던 시간에 만족하며 발걸음을 발견기념비 방향으로 돌렸다. 복원이 완료되면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탑 내부의 숨겨진 공간들을 탐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오늘은 테주강의 귀부인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그 우아한 자태와 깊은 역사가 마음 깊이 새겨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keyword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