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9 눈 비비며 분유 타던 시절은 이제 안녕일까?
지구가 태어난 지 145일만에 처음으로 새벽수유가 없는 날이 왔다!
일반적인 지구의 수면패턴은 다음과 같았다.
오후 7시 반 취침 - 새벽 2~3시 기상 - 새벽 6~7시 기상
이것이 지금까지 가장 이상적인(?) 패턴이었고, 들쭉날쭉하게 새벽 4~5시에도 깨곤 했는데 그럴 경우에는 다시 잠들기 어려워서 강제 아침형 인간 체험을 할 때도 있었다.
육아책을 봐도 백일 이전에는 일정 시간텀 (3~4시간)마다 수유를 꼭꼭 해주는 것이 좋지만 백일 이후에는 밤잠 시간에 수유를 스킵해도 괜찮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지구가 새벽에 깼을 때 어떻게든 맘마를 먹이지 않고 다시 재워보려 노력한 시간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아이들마다 모두 성향이 다르니까, 그리고 지구는 뱃골이 커서 배고플 땐 270ml도 원샷하는 아이니까, 몸무게는 월령대비 상위 5%를 넘어서 1%를 향하는 아이니까 사실 큰 기대를 안했는데 역시나 새벽에 깨서 떠나가라 우는 지구에게 젖병을 물리지 않고는 재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7시 반에 지구를 재우고는 새벽 3시쯤 수유를 한 번 하겠거니 생각하고 잠 들었는데, 지구가 우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평소와 다른 개운함을 느꼈다. 암막커튼 사이 틈으로 들어오는 어둠을 보니 역시 동틀 때는 아직 아니라서 으레 2~3시려니 했는데, 시계를 보니 무려 5시 15분이었다!
지구가 잠든 시각이 전날 오후 7시 반이니 시간으로 따지면 9시 45분을 스트레이트로 통잠을 잔 셈이다. 그러니 깨었을 때 몰려드는 배고픔이 얼마나 클까? 빵빵하게 넘칠 듯 찬 기저귀를 갈아줬더니 힘차게 운다. 그래서 지구를 아기침대에서 들어내어 우리 사이에 놓고 아내가 품에서 달래기를 시도했다. 딱 6시 정도까지만 잠연장을 해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결국 다시 깊게 재우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비몽사몽 간에 지구와 시간을 보낸 후, 6시가 다 되어 아침 맘마를 먹였다. 공복 시간으로 따지면 어제 오후 7시부터 오늘 6시까지니 총 11시간이다. 정말 대견하다 대견해!
이러한 새벽수유 없는 통잠은 전날까지만 해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새벽에 한 번 깨는 것은 예사이고, 두 번이나 심지어 세 번을 깰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전날과 전전날만 하더라도 원더윅스가 왔는지 자정, 새벽 3시, 5시에 깨서 엄마아빠를 좀비처럼 만들었던 지구였다. 그래서 오늘의 통잠이 더욱 신기하고 의미있었다.
왜 통잠을 자게 되었을까? 물론 성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이유를 찾아 보자면 지구의 피로도가 높았던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전날과 전전날 부족했던 수면을 긴 낮잠으로 어느정도 보충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했을 것이다. 또한 어제는 날씨 좋은 토요일을 맞아 오전과 오후에 긴 동네 산책을 했고, 자기 전에는 오랜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튜브를 끼고 물놀이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요즘 배밀이를 하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하는 데 재미를 붙이다 보니 매트 위에서 용을 쓰며 꼬물거리는 시간도 늘어나 스스로의 에너지 소모도 컸을 것이다.
오늘의 유의미한 변화가 항구적으로 발생하리란 법은 없기 때문에 당장 오늘 밤은 또 어떨지 모른다. 이른 새벽에 정적을 깨우는 울음을 터트려 엄마아빠를 들었다 놨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흐름에서 본다면 결국 새벽수유는 없어질 것이고 성인의 수면 사이클과 유사해질 것임은 틀림 없으니 발생하는 상황 자체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히 폭풍성장이라 표현해도 부족한 지구의 하루하루를 볼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다. 이달 초만 하더라도 되집기를 못 했는데, 지금은 종종 되집기를 하고 배밀이까지 하며 기동력을 갖춰나가고 있다니.
또 내일은 지구가 어떤 모습을 새로이 보여줄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