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쎄오 Oct 24. 2023

지구 백일 스튜디오 촬영 한 날

23.09.27 쓰다 보니 스튜디오 사업 분석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지구의 백일 촬영을 한 날이었다. 집에서 키트를 빌려 지구도령 컨셉으로 찍은 것은 백일 당일이었는데, 스튜디오에서 만삭-본아트-50일-100일-돌에 이르는 패키지를 구매해놓은 바 그 촬영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백일 사진이 이쁘게 나오려면 터미타임이 3~5분 정도는 편안하게 되어야 한다 해서 일반적으로 120~150일경에 찍는 것을 스튜디오에서는 추천했지만 우리는 일정상 112일차에 찍어 내심 잘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웬걸. 지구는 너무나 튼튼히 상체를 곧추세우고 포즈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을 주어 앞으로 기려 해서 문제였다.


여러 컨셉 중에 두 가지를 고르는 시스템이었는데 하나는 '오가닉',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살롱' 컨셉을 선택했다. 오가닉은 단어에서도 느껴지듯이 베이지 톤의 포근포근한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기본빵은 해 줄테니 망설임 없이 골랐다. 갈색의 넓은 깃이 있는 체크 셔츠에 아이보리색 제빵사 모자-내가 볼 땐 그런 느낌이었다-를 썼는데 빵실빵실한 지구 얼굴과 잘 어울리면서 아주 따뜻한 느낌이 연출되었다. 특히 작가님과 우리를 보고 빵긋빵긋 웃어준 덕분에 좋은 컷들을 건질 수 있었다. 지구는 역시 웃을 때 이쁨이 x5배 정도 배가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압권은 살롱 컨셉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컨셉이라고 아내가 말해 줬는데, 내가 보기에도 세련되면서도 위트가 있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잘 맞았다. 온통 핑크색 물품들이 가득한 헤어살롱에서 흰색 목욕가운과 찜질방 모자를 쓰고 있는 지구를 보니 너무너무 귀여웠다! 여전히 다양한 포즈에서 빵실빵실 웃으면서 작가님을 흐뭇하게 만들었던 지구는, 파마 가발 씬에서 레전드를 찍었다. 통통한 볼살과 뽀글뽀글 파마 가발이 워낙 잘 어울리기도 했고 손에 쥐어준 빗 모양 인형을 머리 쪽으로 가져가서 슥 훑는 행동을 완벽하게 해 낸 것이다. (우리는 이걸 빗질이라 부른다) 작가님도 빗질 장면을 스탑모션처럼 찍었다며 자랑스레 우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이 나고 주변 카페에 들러 카페인 충전을 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촬영 과정은 퍼펙트했으나 아쉬웠던 점은 시간이었는데, 마침 긴 추석 연휴 시작 전날 오후 3시에 예약이 잡혀있던 바람에 촬영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퇴근과 귀향 등으로 쏟아져 나온 차들로 인해 역대급 정체를 경험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잘 견뎌내 준 지구에게 감사를.




여기까지가 지구 백일 스튜디오 촬영 후기였는데, 비즈니스 관점에서 우리가 촬영한 스튜디오는 상당히 이상적이서 그에 대한 단상을 남겨볼까 한다. 아기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보이는데 전국에 지점 수가 20개가 넘는 기업형 스튜디오이다. 각 지역의 산부인과에 영업이 잘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무료 만삭촬영 서비스로 방문을 유도하고, 다양한 컨셉과 전문적인 작가/매니저 체제, 헤어와 메이크업과 의상 일체를 제공하는 편리함으로 무장해 초보 엄마아빠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하지만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 촬영이 끝나면 잠깐의 대기시간을 거쳐 이른바 '상담실'로 안내한다. 상담실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으로 한 명의 매니저와 고객 부부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성장 시기에 따른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걸려 있고, 가운데 있는 큰 TV에서는 우리가 촬영한 만삭사진이 그새 감성적인 영상으로 제작되어 예비 엄마아빠들의 마음을 녹인다.


매니저님이 여러 개의 샘플 앨범으로 보이는 것들 중 하나를 집어들면 그 안에는 '성장 앨범'이라고 하는 패키지 상품이 A, B, C형 등으로 나뉘어 설명되어 있다. 가장 저렴한 A안을 골라도 돈 백만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이지만 사람 심리가 또 그렇게는 안 된다. 세 가지가 있으면 중간을 선택하는 마케팅 심리학이 업셀링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이 흐름에 쐐기를 박기 위해, 오늘 결제하면 서비스로 양가 부모님께 드릴 액자까지 만들어 준다는 제안을 하는데 여기까지 들으면 아무리 철벽을 치더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또한 이 은밀한 공간은 고객의 기를 세워주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가격 설명 이야기를 다른 부부들이 대기하고 있는 인포 데스크에서 어찌 할 수 있겠는가. 할인도 물어보고 서비스도 물어보고 하나하나 따져 보면서 이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이득인지 따져 봐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이 밀폐된 공간에서 조용히 해결하게끔 해 주고 최종 합의된 금액의 결제만 인포 데스크에서 도와준다. 쿨하게 카드를 내미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 하니까.


이제 모든 거래가 끝났다. 앞으로 할 일은 미리 잡힌 날짜에 꼬박꼬박 방문해서 사진을 찍고, 클라우드 사이트에서 사진 원본을 감상 후 양가 부모님과 SNS에 올리고, 또 다음 촬영 시간이 되었을 때 촬영을 한 후, 패키지에 포함된 모든 촬영이 끝나면 '성장 앨범'을 의기양양하게 받아보는 것 뿐이다. 스튜디오 내의 모든 요소들은 부부의 마음-지갑-을 열기 위해 교묘하게 배치된 장치이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윈윈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잘 짜여진 비즈니스라니! 유일한 단점은 출산율이 줄어드는 인구통계적 흐름인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 스튜디오는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밤은 클라우드에 올려진 지구 백일 촬영 원본들을 하나 하나 감상하며 잠을 청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석 전, 혼돈의 코스트코 장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