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쎄오 Oct 22. 2023

추석 전, 혼돈의 코스트코 장보기

23.09.26 사회는 직장인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긴 연휴동안 먹을 음식을 쟁여두러 코스트코에 가기로 했다. 나와 아내 모두 휴직자의 특권을 발휘하여 지구와 함께 세 가족이 차를 타고 코스트코로 향했다. 하지만 아직 2km는 족히 남은 거리에서부터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수준의 교통정체로 인해 긴 기다림 끝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차가 움직일 때에는 괜찮지만, 멈추면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지구를 달래느라 아내는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나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 길이 막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가정을 해 보았으나, 코스트코에 가까워질 수록 명확해지는 대기줄이 그 정체를 밝혀줬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비록 이틀 후부터 연휴가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평일 낮이고, 상당수의 경제활동인구는 평일 낮에 일터에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시간의 코스트코는 한산하리라 생각했다. 올 수 있는 케이스라야 가정에 계신 어머님들, 은퇴하신 우리 부모님 세대의 분들, 미리 연휴를 쇠기 위해 휴가를 내신 분들 정도만 떠올릴 수 있었다.


문득 코스트코에 입장하는 이 많은 차들 안에 과연 누가 타고 있을지 궁금해진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으리라 확신한 정육 코너로 가 보았다. 역시 코스트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구역 답게 엄청난 인파(!)가 있었는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인구통계적 특성이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약 70% 정도는 여성이었고, 40-50대로 추정되는 분들이 주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부부 또한 꽤나 큰 비중을 이루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스테레오타입에 갇혀 사람들은 평일 낮에는 일터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마트 또한 한산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평일 낮에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의심 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따져보니 그 생각에는 헛점이 많았다. 우선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여성분들은 가사일을 전담하시므로, 그 분들이 연휴를 앞두로 마트에 오신다면 결국 움직이는 가구 수(=자동차 수)는 평일이라고 해서 주말 대비 현저히 적지는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60대 이상의 분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신다면 평일 낮에 얼마든지 마트에 오실 수 있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기에, 그리고 통계적으로 다수는 아니었기에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했던 집단이 모인 것만으로 이렇게 심각한 교통정체가 일어났다니!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의 편협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한 측면에서는 역지사지의 사고인데,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기에 무지해서라거나 혹은 관심이 없어서 다른 집단의 입장이나 생각을 헤아리지 못 하는 것은 성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도 시간의 흐름이나 각종 상황의 변화로 소수 집단에 속할 수도 있으니 마냥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성 육아휴직자'라는 집단에 내가 편입됨으로써 나는 소수자로 status가 변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 측면에서는 비즈니스적인 깨달음인데, 회사에서 내 업무인 마케팅/사업기획을 할 때에는 항상 파이가 가장 큰 집단(세그먼트)만을 타겟으로 잡고 포지셔닝하곤 했다. 다른 집단은 수치적으로 규모가 작았기에 침투에 따른 비즈니스 임팩트가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오늘 마주한 장면은 현실 세계가 그리 선형적으로 흘러가지 않음을 일깨워 주었다. 마이너리티가 누군가에게는 메이저리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념은 뒤로 하고, 지구가 트래블시스템에서 워낙 잘 자 준 덕분에 코스트코 쇼핑은 성공적이었다. 앞으로 낮에 마트 갈 일이 종종 생길텐데 다음 번에는 편협하지 않은 사고를 통해 꼭 사람들이 적은 한산한 타이밍을 잘 노려 방문하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회사 출근날의 소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