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9 지방러에게 집콕 추석이라니!
서울에 살고 있지만 각자의 본가가 각자 경북과 경남인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명절때마다 각종 전쟁을 치르곤 했다. 예컨대 KTX 예매전쟁 혹은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인내심 전쟁 같은 것이었는데,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항상 연휴를 온전히 명절 쇠는데 썼지 해외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풀로 휴식을 취한 적은 별로 없다. (전쟁이라는 표현은 썼지만 다행히도 명절로 인한 우리 둘 간의 트러블은 전쟁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석은 온전히 서울 집에 머무는 특별한 연휴이다. 물론 지구가 백일을 맞이할 때까지 약 한 달은 아내 친정에서 머물렀고, 그 와중에 우리 부모님까지 찾아뵈었기에 미리 명절을 쇠고 올라온 셈이라 마음이 한결 더 편하다랄까. 지구가 오랜 시간 이동을 하기엔 너무 쪼꼬미라 강력한 익스큐즈가 있어 맘이 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후 항상 명절이 되면 내려갔기에 그게 당연한 루틴이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 친척들도 가까이 있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설 추석 당일 오전에만 잠시 들렀다가 와서 휴식을 즐긴다는 경우도 많아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이젠 내가 그런 연휴 집콕족이 되다니! 하지만 지구가 조금 크면 그 때부터는 다시 부모님들을 찾아뵈야 할 텐데 몇 년 후의 명절 연휴는 어떨지 궁금하다.
난 어릴 때 명절 연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부산의 할머니댁에 가면 사촌들이 모여 있었고 낮엔 PC방도 가고 밤엔 윷놀이를 하는 등 즐겁게 놀다가 잠들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골 외갓집에는 엄마의 6남매가 항상 모두 모이고 사촌들도 그만큼 많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또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좋은 추억들은 대부분 내가 초등학생 때 정도이고, 사실 중학생 이후로는 잘 가지 않기도 했거니와 친척분들도 다들 바쁘셔서 못 본 날이 많았다. 나에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좋은 기억의 편린들은 사실 몇 번 되지 않는 특수한 상황(친척들이 모두 시간을 맞춰 모이는 상황, 혹은 친척들과 모두 사이가 좋았던 때)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지구가 겪어야 할 명절의 모습은 어떠할까? 바라건대 명절이 너무 개인적인 범주에서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이동 전쟁을 치르더라도 시간을 맞춰 친척들과 만나고 즐겁게 보내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만약 한 두 번의 좋은 기억이라도 있으면 훗날 그 기억조각을 곱씹으면서 잠시나마 행복감에 빠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도 일단 지구가 어느정도 컸을 때의 이야기겠지 :) 지금은 그저 건강히 잘 커서 몸과 마음이 튼튼해졌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오랜만에 서울에서의 연휴를 지구와 함께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