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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쎄오 Oct 30. 2023

백일 아기와 함께한 호캉스란

23.09.30 이것은 휴가인가 전지훈련인가


연휴를 맞아 지구와 처음으로 함께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예약을 해 놓고서도 취소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인터넷을 보면 50일만 넘어도 데려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돌까지는 이러한 일탈(?)을 엄두도 내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나는 꼭 어느 시기에 뭘 해야 한다는 게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결정 기준은 철저히 지구의 발달상황과 컨디션으로 두었는데, 백일이 지나자 부쩍 많이 성장한 티가 났어서 한 번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호텔 예약을 완료했다.




묵은 곳은 잠실에 있는 소피텔인데, 아내의 배 속에 지구가 있을 때 오고 두 번째이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객실이나 시설도 깨끗하고 객실도 넓고 고급스러워 아주 만족했기에 첫 호캉스 목적지로 정했다. 


첫 방문에서 가장 만족한 부분 중의 하나는 조식이었는데, 프랑스 계열 호텔이다보니 특히 빵류와 디저트 퀄리티가 아주 높아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지구와 함께 가는 이번 숙박에는 아쉽게도 조식은 패스했다. 식당에 가면 십중팔구 울 것이기에 맘 편히 먹을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교대로 먹자니 또 재미가 덜할 것 같아서였다.


예약을 마치고 혹시 아기용품을 비치해줄 수 있을지 호텔측에 문의를 했는데, 친절하게 대응해 주시며 구비하고 있는 물품을 모두 세팅해 주시겠다고 했다. 목록은 아기침대, 아기욕조, 침대가드, 젖병소독기, 가습기 겸 공기청정기, 그리고 아기목욕키트 등 한가득이어서 마음이 든든했다.


호캉스 전날 밤, 챙겨야 할 짐들을 리스트업해보고선 헛웃음이 나왔다.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기려 해도 분유포트, 모빌, 허그곰, 목튜브, 기저귀, 쪽쪽이, 옷, 젖병 등 한가득이어서 마치 이사가는 것 같았다. (숙박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이 경험을 전지훈련이라 표현했다)


날이 밝고, 정오쯤 롯데월드몰에 도착하여 쇼핑을 즐긴 후 소피텔에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 인원이 몰리고 아기가 있어 로비인 6층이 아닌 레지던스 로비인 5층에서 체크인을 도와주셨다. 그러고선 방으로 입장! 


매니피크룸이었는데 방이 충분히 넓어 지구 아이템들을 내려놔도 공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짐을 풀고 지구랑 놀아주다 보니 어느새 저녁 루틴을 진행할 시간. 욕조가 크게 있는 덕분에 물을 한가득 받아 목튜브를 해서 띄웠더니 신나게 발장구를 쳐서 흐뭇했다. 그렇게 잘 놀고 씻은 후에는 잠으로 직행. 환경이 바뀌어서 잘 못 자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새벽에 한 번만 깨고 잘 자줬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룸서비스를 시키려는 큰 그림이었으니 큰 맘 먹고 주문을 했다. 메뉴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와 프렌치 어니언 수프.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는 1인분이었음에도 브레드 바스켓부터 오믈렛, 베이컨, 요거트, 커피 등 구색이 잘 갖춰져 있어 좋았고 별도 메뉴로 시킨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그뤼에르 치즈가 한가득 올라간 찌인한 수프여서 몸을 데우기에 딱 알맞았다.


호캉스의 마지막은 바로 수영장. 유아풀이 있어서 GAP키즈에서 득템한 수영복을 지구에게 입히고 목튜브를 감고 물놀이를 했다. 그동안 욕조에 물 받았을 때에는 항상 다리다 바닥에 닿았는데 처음으로 넓고 깊은 곳에 들어가니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 했지만 이내 적응하여 발장구를 쳤다. 모르긴 몰라도 옛날 생각이 났을 테다.


그렇게 호캉스를 마치고 집에 오니 다시 정리해야 할 짐이 한가득이었지만 뭔가 마음이 놓이는 게, 전지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는 느낌이었다. 


비록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소피텔에서의 경험 자체는 만족스러웠는데 특히 직원분들의 친절도가 높고 숙박객의 혼잡도다 낮은 것이 한 몫 했다. 무엇보다 지구와 함께 함으로써 많은 배려를 받고 지구와 좋은 추억(?)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돌이켜 보면 과거의 나는  ’굳이 이런 것 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아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정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데 시간과 에너지, 돈을 쏟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해 봐도 되지만 ‘굳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하기를 포기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도 함께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호캉스를 안 했다거나 호캉스에 와서도 수영장 방문을 포기했다면 깊은 물에서 마음껏 몸을 놀리는 지구의 모습을 보는 것도 늦춰졌을 것이고, 수영복도 안 샀을 것이고, 수영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나 유의사항도 경험하지 못했으니 잘 몰랐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알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굳이?


앞으로도 부정적 의미의 ‘굳이’ 라는 단어는 계속 불쑥불쑥 튀어나오겠지만 조금 더 포용적이고 다면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그 한 마디가 내 생각을 지배하여 멋진 기회들을 놓쳐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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