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어, 너는 무엇이냐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되고 나면 바로 봉사단원이 되는 게 아니라, 1년 단원은 한 달, 2년 단원은 필수로 두 달간 서울/영월의 코이카 글로벌 인재교육원에 입소하여 다른 동기 단원들과 합숙하며 파견 준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 기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비) 단원들은 봉사단 정신, 해외생활 안전 관리 훈련, 정신건강 교육, 국제개발협력 및 세계시민교육 소양 교육, 현지어 학습, 프로젝트 관리 등 관련 수업과 실습을 받는다. 교육 기간 단원의 태도와 인성 그리고 성취를 평가하여 최종 파견 여부가 결정된다. 중간에 개인 사정 또는 단체 생활에서의 문제 발생 등으로 낙오되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한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미얀마로 가는 최종 티켓을 얻을 때까지 교육 기간 방심을 놓지 않고 임했다.
2016년 10월 24일 서울의 코이카 글로벌 인재교육원에 입소하여 11월 18일 교육 수료 및 봉사단 발단식을 마칠 때까지 한 달간 미얀마어를 배우면서,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게 영어라는 언어가 내 삶의 제2 언어가 되기까지는 12세 이래로 약 10년이 걸렸다. 현재는 자유롭게 생각, 작문, 익기, 말하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유로운 언어 학습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기초를 닦는 건 정말 고통스럽고 진척이 느린 과정이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12살에 영어학원에 들어가 처음으로 알파벳을 외웠고, 선생님께 혼나며 읽는 법을 익혔다. 지나고 난 뒤에는 실제 시간보다 짧게 느껴지는 과거지만, 그 당시 수많은 받아쓰기와 연습을 포함한 시행착오들이 있었음을 안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에는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서 프랑스어 수업을 받았었다. 그 당시에는 동사 변형을 외우기가 너무 어려워서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며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이후에 프랑스어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회화 단어는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언어를 배우는 매력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더욱 깊은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아주 기본적인 학습이 높은 벽으로만 느껴질 때, 그 고비를 넘겨야만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게 아닐까? 이런 면에서 미얀마 어는 내게 엄청난 도전과제로 다가왔다.
대학 시절 스페인어를 배웠을 당시, 다양한 동사 변형을 익히는데 힘이 들었지만 영어와 비슷한 알파벳과 단어 및 문법을 가지고 있어서 노력만 한다면 쉽게 익힐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미얀마 어는 내게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자음 글자와 소리를 매칭 하기도 어렵고, 3개 성조에 대한 각기 다른 표기법을 모두 알아야 하고, 혼성 자음을 표현하기 위한 특별한 표기도 있다. 그 복잡한 규칙성에 놀라 나는 거부감을 느꼈고 아직도 그 저항감을 소화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한편으로는 미얀마에 1년간 파견되어 있는 동안 언어가 어렵다고 등지고서 제대로 된 현지 적응에 지장이 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명색에 새로운 국가에 갔는데 그 나라 언어도 구사 못하면 창피할 것 같기도 했다. 이왕에 간 김에 그 나라에 대한 생활 및 소통 전문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어쨌든 나는 현재 눈 앞에 닥친 높은 벽을 뛰어넘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은 뒤로 하고 묵묵히 노력해야 함을 직시했다. 언어를 학습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저항감을 스스로 인정하고, 언어에 친근해질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수업 중에 어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 언어 정말 복잡하다,’ ‘이렇게 어려운 언어를 왜 가지고 있지? 한국어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로서 한국어의 우수성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 나는 나만의 잣대로 다른 국가의 언어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 엄연히 한 국가의 국민들이 쓰는 언어인데, 그 언어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외국인에게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가치를 판단해 버리는 건 나 스스로도 섣불렀던 것 같다. 엄연히 그 나라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쓰고, 읽는 문자인데 말이다.
버마어는 사실 아주 매력적이고 유용한 언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미얀마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4천3백만 명이 버마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버마어는 성조 어이자 분 석어로 중국 티베트 버마어파의 하부 언어이다. 버마 문자는 고대 몬(Mon)족 혹은 10세기 인도 남서부에서 사용하던 퓨 문자에 뿌리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재의 버마 문자는 33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모음 기호를 붙여 다양한 소리를 만든다. 버마어는 4개의 성조가 있다. 현대 버마 문자 모양은 동글동글한데, 원래 고대에는 사각형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F나 R발음은 없어 외래어를 표기할 때 현지식으로 소리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나는 버마어로 읽을 때는 무슨 의미인 줄 몰랐다가 의미를 알고 나서 영어 단어임을 깨닫고는 한다. 한국어처럼 주어-목적어-동사 문장 구조를 갖고 있고 조사 등 비슷한 원리의 문법들이 많아, 문자를 읽을 줄 알고 문법과 어휘만 익히면 쉽게 익힐 수 있다. 불교문화에서 파생된 언어답게 불교용어(빨리어)에서 파생된 전문 단어, 추가 문자들도 있는데, 이는 따로 익혀 두어야 한다. 동사나 단어가 성별에 따라 변하지도 않아 단순하게 단어만 외우면 된다. 물론, 남녀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는 건 있다. 아, 그리고 미얀마에도 존댓말과 반말이 있다. 미얀마는 나이 많은 어른과 지위가 있는 사람을 공경하고 우대하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 미얀마에 살면 살 수록, 한국과 다른 점들도 많지만 비슷한 점이 정말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미얀마어로 많이 부르지만, 엄연히 따지면 버마 민족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하는 '버마어(Burmese)'가 맞다. 하지만 2008년 미얀마 헌법은 버마어의 공식 영어 표기를 'Myanmar Language(미얀마어)'로 부를 것을 명시하고 있다. 버마어가 '미얀마어'로 불리며 대표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일부 미얀마 내 소수민족 국민들도 있을 거다. 본래 버마어는 미얀마 만달레이 지역 상부 영토에서 주로 사용되던 언어였으나, 19세기 초부터 하부 미얀마 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하며 기존의 몬(Mon)어를 밀어 내고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얀마 남부 지역에서 소수민족 아이들이 공용어로 배우던 몬어는 1962년부터 군부 정권이 펼친 버마어 중심의 강력한 언어 정책으로 점점 중심에서 사라져 갔다. 현실은,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도 통일적인 나라 운영과 업무 및 일상생활을 위해 공용어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버마 민족이 전 국민의 약 70%를 차지하는 미얀마에서 버마어가 자연스럽게 공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라카인주, 카친주, 친주에서는 버마어와는 문자 체계가 아얘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문명과 떨어진 소수민족 마을에서는 버마어를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현재 미얀마 공립학교들은 버마어를 국어교육으로 지정하여 공통교육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소수민족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버마어는 어려운 도전과제로 다가와, 주요 학년 졸업 시험 및 대학 입학시험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는 소수민족의 젊은 세대를 존중하고 소수 언어를 보존하기 위한 차원에서, 미얀마 언어 공교육이 나가갈 도전 과제이다.
버마어에 대한 더 많은 정보
https://ko.wikipedia.org/wiki/%EB%B2%84%EB%A7%88%EC%96%B4
현지어 공부 팁이 생겼다면, 나의 학습 과정을 현지 친구들과 공유하며 지속적인 피드백과 학습 동기를 얻는 거다. 평소 나는 문자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느꼈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을 하면서 언어를 구사하면 언어 학습에 보다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 내가 SNS에 새로 생긴 나의 미얀마 이름(띠 다 우)과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공유했더니 미얀마 친구들이 보다 특별한 관심으로 반응을 건네주었다. 그 반응을 보면서 미얀마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산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나의 언어로 말을 걸어 주고 질문을 했을 때 우리는 특별한 기쁨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많고 많은 언어 중 내 언어를 배울 만큼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그 언어가 자신에게 익숙해 지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의 투자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기쁨을 나의 친구들에게 줄 수 있도록 열심히 미얀마어를 배우리라 다짐한 것이, 현지에 파견되어서도 꾸준히 미얀마어를 배우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향후 현지에 파견되어 1년 반 동안 나는 약 4회의 미얀마어 공인 인증 시험을 치렀고 현재는 중급 2 레벨을 보유하고 있다(중급 4가 가장 높은 단계). 그 후기는 나중에 공유하겠다.
미얀마어를 벽처럼 느꼈던 때는 어디 갔냐는 듯이, 2년 후 미얀마어로 BBC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