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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미얀마 NGO 봉사 활동을 통해 발견한 나

미얀마를 떠나 온 뒤, 과거의 재해석을 통해 발견한 내 성격

by 은희망


미얀마를 떠나 온 지(2019년 3월 10일 귀국) 어느덧 2개월이 된 오늘(작성 시점-2019년 5월). 그동안 새로운 직장을 찾아 벌써 몇 군데에 지원서를 썼고, 대부분 낙방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마다, 가장 최근 이력서에 더해진 경력 6개월(2018.08.28.2019.03.03) 동안 얻은 것들을 활용해 나를 설명해야 했다. 지난 1년(2017.01.16-2018.01.15)의 해외봉사는 미얀마를 알아가고 독립심을 기르는 현지 적응의 시간이었다면, 이번 6개월은 직접적으로 나의 업무 경력을 쌓은 시기였다. 그래서 내게 더욱 중요하고, 나 자신을 어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이 시간의 경험들을 잘 기억하고, 해석하고, 발견하는 게 내겐 현재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더 단단해진 나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엄마 회사 책상 위에서 발견한 한 심리학 책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양창순 저, 2012)>에서 여러 성격 유형들을 상세하게 묘사해 주는 챕터를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제시해 주는 성격 유형별 설명과 묘사들을 기반으로, 나는 지난 6개월의 시간 동안 미얀마에서 있던 일들을 재해석하며 나의 성격적 특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 나의 과거 속으로 함께 빠져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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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무소 책상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게 되었는데, 당시의 나에게 제일 필요한 책이었다.

먼저, 나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자 하는 유형이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을 때 거기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며 탐색하는 것을 즐긴다. 내 몸과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반응한다. 이것은 리더십 발휘에 있어 중요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이 유형은 낯선 장소와 상황을 탐색하는 데서 흥분을 느끼며 구조화되고 단조로운 작업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점은 너무 지나쳐서 충동적이거나 일회적인 경향으로 향하는 상황이다. 이 유형은 종종 즉흥적인 이상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감정 변화가 많다. 규칙이나 규정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좌절을 잘 견디지 못한다.


이런 경향은 내가 미얀마에 있을 때 여지없이 나타났다. 특히 나와 비슷하면서도 성격이 정 반대인 지부장님과의 갈등은 내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난 계기가 됐다. 기존의 사업 유형과 패턴을 따라가기보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추가적으로 더 발전시켰으면 하는 것,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일들에 나는 더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오자마자 사무소 내부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파트너 개발과 사업 개선에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 제안서를 여러 개 작성했다.


지부장님은 나와 달리 보수적인 유형이셨다. 당시에만 그런 분이셨는지 모른다. 안전성과 현상유지를 최우선으로 두셨다. 그래서 지부장님께서 처음에 내가 온 지 몇 주 안 됐을 때 "허 간사는 밖으로 다니고 새로운 걸 찾는 것은 잠시 미루고 당분간 사무소에 있으면서 사무소 운영에 대해 파악하는 게 좋겠어."라고 했을 때 큰 실망을 느꼈었다.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눈 앞에 있는 데 못하게 되었으니 좌절감을 느꼈다. 일종의 반항심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덕분에 사무소 정비 작업과 OJT보고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변화를 추구하는 성격 덕분에 기존 시스템을 향상하기도 했다.


두 번째 나의 성격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인정이 많고 따뜻하다. 또 민감하고 헌신적이다. 타인에게 의존적이며 사교적이고 사회적 접촉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 적극적이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잘 내보이기 때문에 주변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단점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견해와 감정이 쉽게 영향을 받아 스스로가 가진 주관이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일단 나는 평소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내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을 주고받는 것에게 큰 활력을 느낀다. 직접 나서서 모임을 개최하기도 하고 주선자 역할을 자처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 대해 느끼고 평가하는 것에서 내 감정이 좌우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이랑 관계가 좋고 만남이 좋게 끝났을 때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모임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하거나 누군가와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나면 절망감과 우울을 느낀다. 이런 약점은 다시 한번 보완이 필요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세 번째 내 성격은 '자율성'과 '독립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유형은 자율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는 과정에 삶의 의미를 둔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려 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책임감 있고 목표지향적이며 대인관계에서 통솔적인 위치에 서려고 한다. 단점으로는 권위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목표나 가치와 어긋나는 명령이나 지시를 받으면 반발하고 도전하기 때문에 자칫 반항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의존적이거나 회피적이 아닌, 건강하게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성격은 인생에 큰 자산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내가 대부분의 삶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했다는 것을 안다. 물론 유년시절 대부분은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본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운명을 갖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것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계획대로 자율 학습하는 것을 좋아했고, 방학마다 혼자서 며칠 동안 서울 여행을 하는 것을 즐겼다. 쉽지 않은 일이었고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도 느꼈지만 내 정신이 원하는 일이었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쾌감과 만족을 느꼈다.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도 내 꿈이었고, 직접 해 보니 즐겁고 보람된 일이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해 나만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좋았다. 일 할 때에는 누가 시켜서 마감에 쫓겨하는 일보다 할 일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맞게 혼자서 해결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미얀마에서 나의 유일한 직장 직속 상사였던 지부장님께서 일하던 나를 갑자기 불러 새로운 일을 시키시거나, 내가 진행시키고 있는 것을 일방적으로 못하게 막아 버리면 화가 너무 났다.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는 게 내겐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꼭 언쟁을 한 번 해야 했다. "제 생각에는 가능하다고 보는 데요. 왜 안된다고 하시죠?" 이런 반응이 전직 군인이셨던 지부장님께는 꽤 반항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내가 만약 높은 자리에 가서도 내게 이러는 부하직원이 있다면 골치 좀 아플 것 같다.


한 사례가 있다. 오기 직전 2월 말 내가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어린이 결연 사업에 있었다. 매 월 말 총 이틀간 두 곳의 어린이 사업장을 각각 방문해 지원 물품을 배급하고 교육 활동을 펼치는 임무였다. 지부장님이 몇 개월간 부재하셨기 때문에 거의 나와 팀원들이 기획하는 대로 모든 일정들이 기획됐다. 지부장님이 복귀하시기 직전에 우리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 두었다. 어린이들에게 환경과 쓰레기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과 함께 마을의 쓰레기를 줍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라 애착이 있었다. 양곤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Clean Yangon이라는 캠페인 네트워크에게 연락해 만남을 가졌고, 이들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받아 협동을 하기로 했다. 봉사단 두 명을 사업장에 초청해 교육 캠페인을 진행할 약속까지 잡아 둔 상태였다. 다 좋았는데 이 점이 지부장님의 마음에 내키지 않았나 보다. 지부 회의에서 활동 계획서를 공유서를 쭉 보시던 지부장님은 생각지도 못한 지시를 하셨다.


"취지랑 다 좋은데 시간이 너무 길어. 1시간으로 줄이고, 다른 기관과의 협력은 취소해. 간단한 교육 주제 아닌가? 우리 현지 직원이 인턴까지 세 명이나 있는데 직접 준비하고 연습해서 하면 되는 거 같은데. 여기서 사람이 더 필요한가? 전에도 말했지만 내 원칙은 우리가 INGO등록이 될 때까지 타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최소화하는 것이니 이 점 유념 바라네."


이 말을 듣고 나와 다른 미얀마 직원 두 친구는 당혹감과 실망을 감출 수 없어 얼굴에 다 티가 났다. 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됐고, 지부장님이 막무가내로 개인 생각을 밀어붙인다고 생각해 분노가 치밀었다. 직원들의 의견을 따르는 게 리더 아닌가? 원래 당시 같으면 지부장님 지시를 따르는 게 맞다. 책임자인 리더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맞다. 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가 사고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당시 나는 무모했다. 그래서 나는 기분 나쁜 티를 표정에 다 내놓고 반항적으로 계속해서 지부장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반박을 했다.


"지부장님, 이건 문제가 없습니다. 저희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내용을 쉽게 이야기하시는데 저희도 다른 기관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얻고 싶습니다. 이 단체가 이 분야에 있어서는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예요. 이미 공인된 활동이라 장시간 아이들이 지루해할 염려도 없습니다. 봉사단들에게 교통비 조금만 지급하면 알아서 개인 차량으로 왔다 갔다 해 준대요. 지부장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번에 저희 요청을 수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부장님은 끄떡도 없으셨다. 그리고는 약간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불러 엄격하게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으셨다.


"허 간사, 내가 이미 결정한 일인데 왜 계속 반박을 하지? 내가 이미 설명을 했는데? 내가 지시한 대로 다시 준비해 진행하게."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참은 순간이었다. 지부장님이 나가시고 직원들이랑 논의를 해 다시 한번 지부장님을 설득해 보기로 하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역시나 같은 대답을 받았다. 결국 우리는 결정 사항대로 조정을 했고, 어쨌든 활동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우리끼리 간소하게 교육물을 만들어 미얀마 친구들 셋이 수업을 진행했고, 마지막으로 쓰레기 줍기 활동도 펼쳤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배움을 얻는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했다.


이번 경험의 핵심은 '리더와의 가치관 차이에 대응하는 법'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협력하는 것을 추구하고 그게 몸에 배긴 내 가치관이, 내 활동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상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정말로 괴로운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지부장님께 나 또한 도전 과제였을 것이다. 이제 일로서는 인연이 끝났고 지난날 지부장님과 겪었던 모든 부정적 감정과 상황들을 털어 버리려고 한다. 그 마음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위에 올랐을 때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열어 죄송한 마음이 함께한 메시지를 남겼고 답장을 받았다. 지부장님이 주신 말속에 나의 모습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성격이 개성으로 다가온다. 내게 '개성이 강하다'라고 하신 것은 내게 '고집이 세다, 자기주장이 강하다'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점이 언젠가 내가 새로운 사업의 팀 리더를 맡았을 때는 장점으로 작용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좋고 나쁜 성격은 없는 것 같다. 단지 예측 불가능한 환경과 상황에 어떻게 발휘되고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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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고 서운한 마음도 많이 들게 해 주셨지만 동시에 내에게 있어 여러 인생의 과제를 주셨던 스승님이신, 지부장님과 마지막으로 주고 받은 메세지

이번 6개월간 나는 처음으로 한 조직에 온전히 몸 담는 경험을 했다. 그것도 근본적으로 한국의 조직이면서 해외에서 국제적인 사업을 하는 한국 NGO에 말이다. 여러 갈등을 경험했기에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 사람들과 충돌을 빛 지는 않았는지,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지는 않았는지 깊이 걱정을 했었다. 분명 나로 인한 실수와 잘못들이 있었다. 내겐 모두 처음 겪는 상황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보다, 당시 상황 속의 나와 내 선택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내가 나를 평가해 개선되는 게 더 중요할 거다. 이 점을 염두하고 앞으로도 꿋꿋하게 나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려고 하다. 6개월의 경험은 내게 매우 값지고도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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