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개발연구원(MDI) 설립 사업에 대해 매일 사무소에서 글로만 만나다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는 주체의 활동에 동참하며 현장에 대한 나의 강렬한 열망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코이카가 사업의 주체이지만 실질적인 사업 실행자는 한국 개발연구원(KDI)이기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황을 파악하는 데 제약이 있어 왔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사업의 관리 및 감독 역할도 현장 활동의 일부이며 사무소에서 사업을 지원하는 것도 현장이 될 수 있다.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다. 다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사업의 내용이 실제로 적용되고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미얀마에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MDI가 세워 지기 위해 사업의 수혜자 및 행위자 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련의 상호 활동이라면 정의가 될까? 나는 모든 역할과 지원이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때 사업은 보다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사업 수행자의 활동 현장에 동참하는 활동은 사업 전체의 관리자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지원을 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미얀마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연구소가 왜 필요하지?
MDI 설립 사업의 매니저(Project Manager, 보통 PM이라 칭한다)이신 KDI 소속의 고 박사님과 차로 이동하며 가진 질의응답을 통해 나는 MDI의 설립 의의와 연구활동의 실전에 대해 학습할 수 있었다. 나는 먼저 MDI가 미얀마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르네상스 연구소(RI) 또는 미얀마 개발 자원 연구소 (MDRI)와 가지는 차별성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박사님의 명쾌하고 보다 자세한 설명을 통해 어렴풋했던 나의 이해가 보다 명확해졌다. 한 국가가 민주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을 견제하고 이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시민 사회의 존재 및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이나 영국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이룩해 나간 것도 권력에 대항하고 자유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성장 덕분이었다. 그 시민 사회의 참여 영역에 싱크탱크(think tank) 또한 포함될 수 있는데, RI는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RI는 과거 미얀마의 독재 정부에 대항해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며 연구 활동을 진행해 왔다. 특별한 옹호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이에 반하는 사항이 정부에서 감지될 때 언제든 갈등의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정부에서도 이들의 연구 결과물을 정책으로 채택하는데 거부 반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민 사회와 공권력이 가지는 상호 견제의 특성 때문에 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지속 가능한 협력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고 견고하고 신속한 발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면서도 정부의 정책 활동에 '객관적인 태도'로 자문을 해 줄 수 있는 연구소가 필요하다. 그러한 취지에서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국가의 개발 정책 과정을 지원해 나갈 MDI의 설립은 정당성을 가진다. 고 박사님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민주주의 체제를 앞서 경험한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이 금세 독재 정부에 잠식당한 건 시민사회가 견고하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국가에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똑똑해지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저절로 정부 견제 및 비판 역할을 해 민주화도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하셨다. 박사님의 설명에 나는 설득이 되었고, ‘민관협력’ 이라고만 알고 있던, MDI 사업의 취지 및 성격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개발정책 연구 계에 20년 이상 몸담고 계셨던 고 박사님을 통해 연구 과정에 있어 연구 문제 발굴을 위한 '현장 조사'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재차 인식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게 있어서 연구는, 도서관에서 이미 기록된 자료를 가지고 상황을 간접적으로 파악하며 문제를 가정한 채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장 조사 없는 연구의 진행은 실제 현장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놓치기 쉽다. 따라서 연구 주제의 발굴 과정이 전 연구 과정의 절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사님은 MDI 연구진들이 앞으로 수행할 실질적인 개발 연구 주제를 발굴하기 위한 동기로 금일 현장 조사 일정을 마련하셨다고 한다. 미얀마 초기 경제 성장을 이끌면서도 미얀마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들과도 연관이 있는 영역을 찾다가 미얀마의 섬유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한다.
미얀마 섬유 산업의 간략한 역사
한국이 1970년대부터 수출 주도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육성한 사업 중 대표적인 것이 섬유이며, 현재 미얀마 인근의 베트남, 인도, 방글라데시 등 국가들도 현재까지 섬유 산업에 상당한 의존을 하고 있다. 미얀마의 섬유 산업 개발은 1988년 외국 투자법 제정과 함께 미얀마 국내외의 해외 투자를 가능하게 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노동집약적이며 수출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는 섬유산업은 1990년대 후반에 가장 큰 성장을 보여 1990년부터 2001년 사이 69배나 수출량이 늘었다. 미얀마의 전체 수출에서 섬유 수출이 가지는 비중은 2.5%에서 39.5%로 늘었다. 2000년까지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전체 수출의 각각 약 50%, 40%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원이었다. 그러나 미얀마의 독재 정권 존속과 마약 문제 및 아동인권의 침해를 근거로 2003년 미국이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한 이래로 미얀마 내에 있던 섬유 제조업계는 타격을 얻게 된다. 당시 미국 출신 제조업자뿐 아니라 미얀마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을 하던 한국의 제조업계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코레이스(KORACE)라는 한국계 섬유 공장의 사장님도 그 당시 큰 물결의 직접적인 피해자 중 하나셨다.
김 사장님은 일생을 섬유제조업에 종사하시면서, 전 세계 노동 시장의 변화와 함께 세계를 떠도셨다. 9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 섬유제조업에 진출하셨다가 당시 수입 쿼터가 없던 이점을 이용해 98년에 미얀마 공장을 처음 세우셨다. 3년 반 동안 법인 장을 역임하시다가 2002년부터 사장을 6년 간 역임하셨단다. 당시 미국 소비 시장을 겨냥하던 공장은 2003년 미국 경제제재와 함께 급작스럽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고 2009년부터 한국 내수 브랜드 제품 하청 공급으로 방향을 재정립해 지금까지 공장을 운영해 오고 계신다. 한국은 1988년부터 미얀마에 대한 일반 특혜 관세(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 GSP) (개발도상국의 수출 확대 및 공업화 촉진을 위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수산품 및 공산품 등에 대하여 무관세의 적용 또는 저율의 관세를 부여하는 관세상의 특별 대우를 말한다.) 혜택을 정지했다가 2016년부터 일시적인 해지를 하며 미얀마로부터의 수입이 보다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2011년부터 미국, EU, 호주, 캐나다 등으로부터 주요 경제 제재 조치가 완화되거나 철회되면서 미얀마 섬유 경제는 회복 단계에 접어든다. 아직까지 미국과 미얀마 간의 거래는 없지만, 유럽은 GSP 혜택을 시작하여 거래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얀마 섬유업계는 지속적인 개혁과 변화를 겪으며 성장해 나가고 있고, 경제 제재 기간 일본과 한국이 차지한 미얀마 섬유 시장에는 더 다양한 투자자들이 유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얀마에서의 섬유 산업은 생산성이 낮고 부가 비용이 높아, 외국 기업이 선호하는 투자 대상지는 아니라고 한다. 미얀마 현지의 경제 환경 및 법적 제도가 재정비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현재 미얀마에는 MGMA(Myanmar Garment Manufacturers Association)이라는 미얀마 섬유 제조업자 연합이 있어 제조 환경 및 노동 환경 개선, 수출 촉진 전략 공유 등 다양한 상호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회원은 2014년 기준 65개며, 대부분은 중국, 한국, 태국, 미얀마 업체다. 미얀마 업체의 비율은 아직까지 높지 않다. 중국은 원자재 자체 공급부터 자국민 노동력 사용 등으로 다른 업계보다 훨씬 뛰어난 경쟁력으로 겨루고 있었다. KORACE에서 사용하는 대부분 섬유 원자재도 중국산이라고 한다. 사장님은 미국 제재 기간 동안 미얀마 섬유업계는 중국이 지배했으며 미국은 미얀마 시장을 놓친 꼴이 되었다. 현재 중국은 미얀마 내 석유 자원 개발에도 개입되어 자국으로 원유를 매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얀마의 섬유 노동 현황은 어떨까?
현재 미얀마에는 300여 개의 섬유 공장이 있고 (대다수가 사립 업체), 약 23만의 노동자들이 이 분야에 근무하고 있다. KORACE에는 약 1600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사장님을 따라 공장 안에 들어섰을 때 라인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규모에 적잖이 놀랐다. 숙련된 미얀마 일반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법에 따라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한 달에 약 10만 8천 짯 이라고 한다. 일주일 40시간 일 한다고 했을 때, 한 시간에 약 2700원을 받는 것이다. 그래도 최근 몇 년 간 약 33%가 오른 가격이란다. 미얀마에서 법적으로 허용되는 초과근무 시간은 최대 44시간 (일 8시간, 토요일 4시간 기준)이며, ILO에서 권고하는 1주 60시간 (하루 약 12시간)의 최대 노동시간으로의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3년 처음으로 최저임금법을 시행했을 때, 당시 제조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 발표로 큰 발발을 사, 2015년 현재 가격이 책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이 원하는 5600짯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미얀마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국가 최저 임금 위원회를 조직해 철저한 조사와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한 임금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당시 미얀마 노동시장에서는 퇴직금의 개념은 없고 적은 해고 수당만 있었는데, 정부는 임금을 올리는 대신 해고 수당을 높게 책정해 법을 재 발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조업자가 공장 문을 닫으면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그만큼 아직까지도 권위적인 정부의 결정에 따라 경제 시장이 왔다 갔다 하는 불안정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얀마에서는 본래 15세 미만의 아동을 고용하면 안 되지만, 최근 ILO의 권고로 14세부터 비 위험 직종에 한해 법적 노동에 종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은 원칙상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 아동들은 자신의 나이와 신분을 확인하는 카드를 발급받는다. 때로 이들은 일을 하기 위해 위조 신분증을 제시해 제조업자들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 제조업자들은 18세 미만의 아동 고용을 피하려 한다고 한다. 미얀마의 인력 수준이 어떠냐는 고 박사님의 질문에, 김 사장님은 미얀마 사람들이 교육열은 높으나 교육 제도가 엉망이라 제대로 된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진단하셨다. 특히 1988년 민주화 운동 이후 정부가 대학에 대한 억제를 강화하면서 그 당시의 세대를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고급 인력에 대한 업무 조건 및 보상 체계도 열악해 수준 높은 미얀마 노동 인력이 태국, 싱가포르, 일본, 한국 (외국인 노동자 인권에 대한 법적 보호로 가장 선호되는 나라) 등지로 떠나가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 정부는 아직까지 행정 능력이 열악하고 국민들의 준법의식이 부재한 것 같다는 고 박사님의 지적에 김 사장님은 김 사장님은 미얀마 내 경제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외국 사업자가 겪는 다양한 고충의 현실에 대해 본인이 체험하고 공부한 내용을 공유해 주셨다. 현재 미얀마 경제 법 체계는 아직도 식민시절 구체제에 머물러 있어 현실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한다. 1999년 당시 사장님이 미얀마의 상법을 열람했을 때 당시 법은 1921년 인도 상법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고 박사님 또한 MDI 법인체 설립을 위해 열람했던 회사법도 1915년 버전으로 영국의 관습법을 따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현지 실상 및 관습에 맞지 않는 법이 사회와 잘 융합되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또한 미얀마는 오랫동안 정치권력이 법 제도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해 왔기에 국민들이 쉽게 무시를 하는 것 같다고 예측하셨다. 최근 미얀마 정부는 4월 1일부터 국민 세금에 소득세 원천 증세 제도를 도입했는데 어떤 방법으로 본 법을 이행할지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고 하셨다.
김 사장님은 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도층이 가지는 사명감과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방글라데시의 사례를 비교하셨다. 방글라데시에서 공장을 운영했을 당시, 당시 집권당의 정치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재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자 그럼 방글라데시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무책임한 대답을 들으셨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나는 아직까지 정치 권력자들이 국가를 국민 모두가 아닌 권력자 소수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얻었다.
미얀마도 지난 민주정권부터 국민들에게 관대해지기 시작해 현재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준법정신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질서 유지를 위해 권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미얀마 정부도 앞으로는 국민과 함께 대화로 소통하면서 적절하고 단호한 조치로 국가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객관적인 목소리를 내 줄 MDI 존재의 절실함을 다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