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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널 만나기 전(2)내 생 첫 해외여행국은 몽골

내 생 첫! 해외 여행국 '몽골'에서 품은 꿈

by 은희망


지금이 되어서야 돌아보니 ‘외교관이 되고 싶다’라는 꿈의 이면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랑 사귐을 갖고 같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근본 동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언어와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인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의 다름을 나누는 순간을 꿈꿨다. 그 꿈이 나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만들어 줬음에 감사하다. 2011년, 대학 1학년이 되어 내 첫 해외여행을 위해 여권이라는 걸 처음 만들었다. 내가 속한 사회과학 대학에서는 매 학기 ‘사회과학 리더십 캠프’ 걸 운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입학한 해 1학기가 마침 몇 년에 한 번 있다는 해외 캠프를 떠나는 시기였던 것이다! 대학 선배들의 기부와 학교의 지원금으로 아주 적은 금액만 내면 (1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였던 것 같은데……) 5일 간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말에 무작정 지원서를 썼고, 되고 나서야 내가 유일한 1학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복이 강원 소녀에게로 달려왔고 나는 그 행운을 덥석 물었다.


몽골은 의 첫 해외여행 지였으면서도 국제개발협력의 필요성을 처음 느끼게 해 준 현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당시 나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5일간의 짧은 여정이었다. 몽골 국립대학의 또래 학생들과 만나 서로 통하지도 않는 언어로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토론하고 합동 발표를 했다. 몽골 친구들이 영어를 조금밖에 하지 못해 깊은 소통은 못했지만, 한국어를 잘하던 몽골 친구의 도움으로 어떻게 소통을 해 같이 발표도 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서로 또래라는 점과 서로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 대학 팀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거리를 걷기도 하고 버스를 대절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몽골의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행기에서 내려 본 몽골은 초원과 빈 땅으로 가득했다. 사람이 살까 싶었지만 몇 개 안 되는 강 줄기 주변마다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물은 어딜 가나 정말 중요하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었다. 넓디넓은 초원에는 유목민들이 말을 의지에 살아가고 있었고, 도시는 차들로 가득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해 변화했겠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 도시는 차들로 복잡하고 교통 신호도 따로 없었다. 한국 것이라는 흔적이 보이는 중고차들이 도로를 휘젓고 다녔다. 신기했다. 차창 밖으로 밖을 내다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 한국에 있는 도로 기술과 발전 경험을 이 나라에 주고 싶다.’


나는 곁에 있던, 도시 계획과 행정학을 공부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오빠는 이 나라 도시 개발을 도와주고, 언니는 이 나라 행정 기술 개발을 도와주면 좋겠다!”


하고 신나게 이야기했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우리나라 정부와 코이카가 하고 있는 ‘기술 협력 및 개발 컨설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책과 TV에 이어 몽골은 내 생각에 혁명을 가져다준 이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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