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비폭력&불복종이란 무엇인가
내 삶에 울림을 준 영화 한 편을 뽑으라면, 대학 시절 우연한 호기심으로 보게 된 <간디(Gandhi, 1982년작)>다. 오늘날 인도는 전 세계에서 7번째로 가장 큰 영토를 갖고 있으며, 중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인구가 가장 많고(약 14억명), 국가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세계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전 세계 5위(약5조)를 기록한 강국이다. 국방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다음으로 4위다. 1947년 8월 15일 독립국가로 거듭나기까지, 인도는 1763년부터 약 184년동안이나 영국의 식민 지배 하에 살아야 했다. 어떻게 간디는 인도인의 정신을 하나로 결집시켜 인도의 독립을 이끈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 학교에서부터 배워온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지 알고 싶었다. 간디의 삶과 독립 운동을 묘사하는 이 영화를 보며 내 삶을 바꾼 간디의 가르침을 공유한다.
일상의 차별을 무시하지 마라
누구에게나 자신의 내면에 있던 중심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영국의 평범한 변호사였던 인도인 간디는 189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는 기차 1등석에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박대를 당한 이후 불평등의 현실에 대해 온 몸으로 억울함을 느끼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불평등한 상황을 알면서도 차별에 적응하며 고급스러운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남아프리카의 인도인들과 달리, 간디는 "우리도 영국 국민이기에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영국 국민으로서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문제’를 일으킨다. 최초로 남아프리카 인도 정당을 만들었고 인도인들이 지니고 다녀야 하는 통행증을 영국인들 눈 앞에서 불태워 버린다. 그렇게 저항은 시작된 것이다. 한 발을 떼기 위해서는 '무한한 두려움과 망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디는 이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기 전까지 고결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따르며 평소 모든 것에 '탐구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겪은 일상 속 경험은 모두의 인도인들을 대변하는 불의를 깨닫게 해 주었으며 불평등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했다. 내 안의 거인, 내 안의 커다란 잠재력을 깨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간디는 1915년 남아공에서의 성공적인 혁명을 완수한 뒤 조국인 인도로 돌아온다. 본격적으로 그의 날개를 펼칠 순간이 눈 앞에 찾아 온 것이다. 그는 인도 전국을 여행하며 인도인들의 열악한 삶과 영국인들의 인도인들에 대한 착취 현실에 대해 각성한다. 그리고 이들의 해방과 하나 된 인도를 위해 저항하기로 다짐을 하게 된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내 놓아라
그는 바로 앞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겁주는 백인 앞에서 굴욕을 느끼고 있는 지인에게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내 놓아라." 라는 성경의 구절을 내뱉는다. 이는 곧 용기를 내라는 의미다. 당당함만이 상대의 증오를 억누르고, 반대로 나에 대한 존경을 싹트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도 나쁘다고 여기는 일을 한 것에 대해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저절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굴욕감을 보이면 안 된다. 비폭력, 불복종. 그냥 폭력을 안 쓰고 복종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쉽게만 생각했는데 영화 속 그의 언행을 통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모든 저항운동을 할 때 맨 앞에 있는 원칙은 "무력은 안 쓴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무력으로 더욱 강하게 누를 것이기에." 작용은 반작용을 정당화시킬 뿐이다. 객관적으로 상대가 가진 물리적인 힘을 인정한다면 똑같이 맞대응 받을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평화적 투쟁만이 가능하다."는 결론과 함께 그들은 영국군의 몽둥이 앞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놓는다.
"우리 앞에는 죽음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력 없이 우리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다. 폭력을 쓰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이 '깨닫게' 하자." – 간디
"그들은 당당히 걸었다. 그들 앞에는 죽음과 부상뿐이었다. 서양이 주장하던 도덕성이 여기서 실측되는 순간이다. 인도는 자유다." - 당시 외신 기자
복종을 통한 불복종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 속에서 간디는 수 없이 감옥에 갇힌다. 영국인들이 적을 다루는 한결같은 방식이었다. 하지만 간디는 늘 "이것도 하나의 여행일 뿐이다. 명령에 따르겠소."라고 말하며 순순히 경찰들을 따라간다.
"체포 돼도 괜찮아요. 시위는 계속되니까요." - 간디
"반응이 없으면요?" - 기자
"민중 저항은 반응을 일으키죠. 우리가 계속 저항해서 반응을 일으키면 법이 바뀔 거에요. 우린 잘 통제됐지만, 그들은 아닙니다. 이것이 ‘민중 저항의 힘’ 입니다." –간디
이것은 인도 군중들이 거대한 힘의 무리에 맞서 자유를 쟁취해 가는 방식이었다. 어떤 폭력과 물질적 단절로도 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영혼을 잠재울 수 없으며, 회피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다. 영국이 간디를 가둠으로써 오히려 그를 따르는 인도인들의 의식은 더욱 각성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변화를 위해서는 일상의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하라
독립운동 시기, 간디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도인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자유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정의 등 모든 개념이 영국인들의 삶에서 나온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동양을 존중하면서도 서양의 단점에 동화되는 것이다." – 간디
그의 개인적인 저항 방식은 실제 삶 속에서의 영감을 통해 구현된다. 그를 대표하는 저항운동은 '물레 감기'와 '소금 생산'이다. 그는 영국이 인도인들을 착취해서 만들어 파는 면직물을 사 입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물레를 배워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다. 그는 어떤 수단에도 기대지 않고 인간의 몸 하나로도 충분히 자급자족하며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인다. 대륙 끝 해양의 마을에서 자란 간디는 고향에 갔다가 인도인들이 식생활의 핵심요소인 소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깨닫고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기로 한다. 사람의 생명과도 같은 귀중한 소금을 영국 왕 독점사업으로 운영함으로써 인도의 맥을 끊으려 하는 대하여 간디는 저항하기로 한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일이라는 것을 간파한 간디의 평화 쟁취운동이었다.
개인의 희생을 통한 참회는 타인의 분노까지 잠재운다
간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은 더 큰 시련을 통해 사랑을 느끼게 하려 했는지 1947년 8월, 하나의 국가는 '인도'와 '파키스탄' 두 국가로 독립 하기에 이른다. 독립 전까지 인도 안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해왔고 독립운동 기간 이들은 서로 단결해 공동의 적에 저항해 왔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독립 직전의 순간에 이들은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사이가 된다. 차별을 받은 이들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차별의 마음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 인도 내 무슬림들은 힌두교인들에 의해 정부가 구성되어 자신들이 소외되는 상황을 두려워했고, 힌두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 1948년 5월, 한때 단결되었던 인도는 민중의 잠재된 폭력성이 뚜껑을 열고 폭발하며 분열과 혼란을 겪는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육이 계속된다. 간디는 큰 실망을 느끼며 자신의 판단이 실패했음을 느끼고 사람들의 분쟁시위가 중단될 때까지 단식을 하기로 결정한다. '단식'이란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비폭력적인 저항 방법이었다. 개인의 생을 걸고 타인의 행동을 저지하는 방법이다. 간디가 무언의 몸짓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다음과 같다.
"폭력적인 대응은 세계를 눈멀게 한다. 살인으로 자유를 얻는 것은 안 된다. 나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참회의 뜻으로 시위가 중단될 때까지 먹지 않겠다. 전부가 멈춘다면 나의 (금식으로서의) 기도가 응답되는 거다." - 간디
참회를 위해 스스로 몸을 혹사시켰지만 오히려 그의 정신만은 더욱 명확해지고 확신에 차게 되었다. 존경하는 위인이 우리들의 행동에 비탄하며 아무 말없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도 국민들이 감동과 반성을 느끼게 했다. 결국 분노를 잠재우고 인간성을 찾은 민중들이 그에게 찾아와 용서를 구했으며 폭력을 멈출 것을 약속했다. 또다시 그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면서 가장 절실한 순간에 세상의 판도를 바로잡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을 사랑하라
내전이 휩쓸고 지나간 후, ‘자신의 아이를 잔인하게 죽인 무슬림의 아이의 머리를 똑같이 짓이겨 죽임으로써 자신의 손을 더럽혔기에 자신은 지옥에 갈 거라’며 절망감으로 찾아온 한 남자에게 간디는 말한다.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나? 이를 위해서 아이를 하나 찾게. 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를. 그러나 그 아이는 무슬림의 아이여야 하네. 그 아이를 친자식처럼 기르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아이를 무슬림으로 기르는 것이네." – 간디
남자는 이 말을 충격과 경외로 받아들이며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가장 전율했던 일화다. 사랑의 상실로 인해 짐승이 되어버린 인간의 황폐화된 마음을 바로잡는 것,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한 사랑’에 있었다. 적이라고 여긴 상대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도전을 함으로써 한 인간은 치유될 수 있음을 배웠다.
진리와 사랑은 늘 승리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자
이 세상에는 약 78억 인구가 살고 있다. 그 중 10%도 되지 않는 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며, 그들은 역사 속에 평생 기억된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 차이는 한 인간의 '정신'과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에 있다고 본다. 간디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전체의 관점에서 먼 앞 날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때문에 눈 앞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인내로 버텨낼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신념과 행동은, 그가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까지 변화시켜 나가는 정신적 지주로 거듭나게 한다. ‘위대한 영혼'을 뜻하는 '마하트마'라는 이름이 간디를 부르는 수식어가 된 게 이러한 면모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간디>는 인간은 언제나 편견의 벽을 뛰어 넘으며 자유를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 영화였다.
"절망을 느낄 때 나는 기억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진리와 사랑은 늘 승리했다는 것을. 독재자나 살인자도 있었고, 그들에게 당장 대항할 순 없어 보여도 결국에는 무너진다는 것을, 이것을 생각하라. 언제나." – 간디
이 말을 늘 가슴 속에 새기고, 나 또한 일상의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