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피도를 누비며 피어나는 한-미얀마 우정
네피도에서는 자동차가 참 귀하다. 미얀마 주민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자동차를 가질 능력이 안 되는 대부분의 미얀마 가족에게 오토바이는 자동차 역할을 한다. 한 오토바이에 아빠, 엄마, 아이들이 전부 타고 이동을 하는데, 심지어 달리는 오토바이 뒤에는 긴치마를 입고 옆으로 헬멧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앉은 엄마가 갓난아기를 안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오토바이 위에서 아무 보호도 없이 아빠 등에 매달려 서 있기도 하다. 목숨을 건 질주다. 나는 오토바이 뒤에 탈 때마다 코이카에서 지급해 준 최고급 한국 헬멧을 꼭 쓰고 다녔다. 얼마나 튼튼한지 머리를 때려도 아무 느낌도 안 났다.
나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오토바이 택시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택시 이용비용이 양곤보다 훨씬 비싼 이유도 있었다. 보통 처음 이용한 오토바이 기사 아저씨가 착해 보이고 마음에 들면 전화번호를 받아 두었다가 이동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 호출을 하면 내가 있는 곳에 데리러 와 준다. 개인 기사나 다름없다. 나도 네피도에 도착한 뒤 우연한 기회로 ‘우저윈(U Zaw Win)’이라는 착한 오토바이 기사 아저씨를 만났고, 어디를 가든 아저씨만 찾았다.
외진 곳에 위치한 공무원 친구의 집을 처음 방문할 때 아저씨가 함께 길을 찾아 데려다주시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갈 때에도 먼 길을 돌아오셔서 나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주셨다. 내가 몸이 아파 안마를 받으러 갈 때에도 나올 때까지 한 시간을 넘게 밖에 앉아 기다려 주시기도 했다. 내게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에는 나를 뒤에 태우고는 물건을 파는 가게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물으며 온 동네를 돌아다녀 주셨다.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자주 보다 보니 가족애 같은 정이 쌓여 나갔다. 주말에 먼 지방으로 여행을 다닐 때는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 네피도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모르는 사람의 오토바이나 차에 타는 게 무서워 아무리 죄송해도 멀리 있는 아저씨를 부르고는 했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찬 바람 속을 달려 먼 터미널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시고는 했다. 아저씨가 없었다면 내 모험정신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아저씨에게 제일 감동을 받는 순간은 한 번도 먼저 이익을 채우려는 마음을 앞세우지 않으셨다는 거다. 미얀마에 와서 배운 큰 교훈 중 하나는, 서로에게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는 순간 머릿속 계산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여기저기 내 마음대로 아저씨를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내릴 때 얼마냐고 여쭤 보면 아저씨는 값을 부르지 않고 늘 “다 괜찮아, 네가 알아서 줘.”라고 하셨다. 나에 대한 순수한 정과 신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만큼 사례를 해 드리게 되었다. 서비스 대해 값을 요구받는 게 아니라, 내가 받은 서비스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매기게 된다. 서로가 있는 것을 기꺼이 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은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나중에 아저씨는 자신의 딸과 아들의 결혼식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결혼식 당일 혼 주인아저씨는 직접 나를 데리러 오기까지 했다. 아저씨가 사는 마을은 알고 보니 우리 코이카가 새마을 운동 농촌지역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을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친숙함을 갖고 있었다. 결혼식은 완전히 미얀마 시골 전통식으로 집에서 치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단체로 음식을 해 손님에게 대접하고 방 안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식이 이루어졌다. 이날만큼은 나의 오토바이 기사님이 아닌, 한 대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이 날 마을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물질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착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저씨 가족은 정들지 않을 것만 같던 네피도에 대한 나의 사랑이 깊어지게 만들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