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
네피도에 있는 동안 문득, ‘아기들을 돌보고 싶다’는 열망이 내 가슴속에 솟아났다. 평소 아기들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였다. 아기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또 마음껏 돌봐주고 싶었다. 그러다 운전기사 마웅 마웅에게 물어 네피도 북쪽 외곽에 스님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고아원을 알게 됐다. 킷예(Khit Aye)라는 수도원에는 영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약 85명이 기거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여건이 안 돼 양육을 포기했거나 전쟁으로 부모를 잃어 온 고아들이었다.
운전기사를 고용해 도착한 그곳에는 주말을 맞아 방문객들이 정말 많았다. 불교에 기반한 기부 문화가 발달된 미얀마에서는 주말마다 이렇게 가족단위 또는 단체 직원들이 와서 헌금 또는 물품을 기부하고 스님 앞에 앉아 절을 하고 축복을 얻는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 기부들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고도 불교 단체들이 존립할 수 있다. 첫 방문에서 기관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직 잘 모르기에 나는 약 90여 명의 인원을 위한 초코파이와 우유를 사서 갔다. 창고를 들여다보니 먹을 것들로 가득하다.
함께 와 준 미얀마 친구 가족을 따라서 스님 앞에 앉아 내 소개를 하고 기부 의식을 치렀다. 스님과 함께 기부물품에 손을 두고 스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같이 낭송한다. 그리고 스님이 불경을 낭송할 때 고개를 숙이고 작은 주전자에 있는 물을 쟁반에 조금씩 따른다. 아직 나는 이 의식의 의미를 모르지만 불교에서 물은 아주 신성하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 방문자들을 위해 점심 상을 차려 주는데, 정말 푸짐했다. 십 대 남자아이들이 파란색 교복이나 스님복을 입고 밥상을 차리거나 음식 앞에서 부채질을 하는 등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일손을 제공하고 있었다.
때 마침 어린이들의 점심식사 시간이라 내가 가져온 간식을 아이들에게 직접 나눠줄 기회가 있었다.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다 같이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줄을 서서 조그만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지속적인 소통과 일관된 훈육방식을 통해 정서 및 사교성 발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유아기대의 아이들에게 부모 및 교사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보육자의 깊은 인내와 관심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3명의 교사들이 합숙하며 32명이나 되는 유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교사 한 명당 약 10명 꼴을 돌봐야 하는 건데, 문제는 아이들을 돌볼 부모들이 없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육과 보육을 모두 담당해 24시간 돌봐야 한다는 거다. 혼자서 1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개개의 정서 및 행동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기는 역부족일 거다.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 줘도 분명 건강한 가정 안에서 부모들이 직접 주는 사랑과는 격차가 있을 것이었다.
유치부 아이들과 교사들이 먹고 자는 건물에 가봤는데 나무로 허술하게 만들어진 방 한 칸에서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선생님들이 보여 준 교구들은 색깔과 모양을 보여 주는 장난감, 영어 알파벳 모형, 인형 몇 개 등 한 눈에도 열악해 보였다. 수도원에서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많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기부되는 돈은 방문객을 위한 건물이나 기념비를 세우는 데 사용된다나. 한 아이가 상처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우는데 교사들이 다른 아이들 때문에 바빠 방치된 상태였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도 이 아이가 생각나 눈물이 흐르고는 했다. 모든 아이들은 스스로 독립할 때까지 부모 및 사회로부터 일정한 보살핌과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보살핌에 있어 결핍을 겪으면 안 될 것이다.
1살 미만 영유아 아이들의 방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1명의 남아, 4명의 여아 이렇게 총 5명이 있었다. 종종 방문객들이 육아를 도와주지만, 기관에서는 주로 한 할머니 혼자서 이 아이들을 돌본다고 한다. 나는 한눈에 한 남자아이에게 사랑에 빠졌다. 너무도 예쁘고 귀여운 아이는 작년 12월에 태어나 약 5개월이 되었는데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울지도 않을 정도로 순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놓고 간 부모들은 너무 어렸다고 한다. 모든 아이가 부모의 기대와 준비로 태어나지 않고 친부모에게 보살펴지지 못하지만 이 아이들이 태어난 것 자체는 축복이다. 이 아이들이 본인이 이 세상에 태어난 소중한 존재 가치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도록, 공동체와 국가는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내가 자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큰 스님께서 직접 숙소 앞까지 기관 차를 보내 주신다고 했다. 이런 감사함이!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나 스스로 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뜻을 품으니 이렇게 세상이 나를 도와준다는 걸 느꼈다. 나는 아이들 월령기 별 발달 단계별 육아법을 공부하며, 네피도에 있는 주말마다 이곳을 방문해 사랑을 나누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