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으로 뛰어들기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by Hongchic
일생에 한 번은 의지할 지팡이 하나 없이 어두운 숲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가 온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원초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강함이란 자본이 많거나, 명예, 권력 같은 부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말하겠지만, 내가 되고 싶은 강한 사람은 이와는 다르다. 나는 신체적으로 강력하고, 두텁게 켜켜이 쌓인 문명과 기술이 걷어졌을 때도 야생과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장래희망 란에 '탐험가'라고 써서 제출하기도 했다. 물론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시선을 의식해 그냥 평범한 직업으로 대충 써서 내긴 했지만.


이런 마음은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할 때 극대화된다. 호캉스보다는 배낭여행을, 골프보다는 달리기나 등산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하다. 캠핑을 할 때도 오토캠핑보다는 백패킹이 좋다. 편안함보다 땀과 노력, 그리고 약간의 근육통이 동반된 활동에 더 만족감을 느끼고, 편안해진다. 이런 면에서 와일드는 나에게 교본과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야생의 길에서 와일드한 시간을 보낸 저자 셰릴의 이야기다. 엉망이 된 발로 거친 산길을 걷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생스러운 모습에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든든한 보험을 들어둔 것과 같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삶이 버겁고 괴로우면 맨몸으로 야생에 뛰어들면 된다. 자연과 땀, 그리고 모험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마음에 새긴 나만의 한 줄이다.


와일드는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가 Pacific Crest Trail이라는 멕시코부터 캐나다까지 이어진 4,265km의 길을 94일 간 걸어 나간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엄마의 죽음, 남편과의 이혼, 마약에 물든 문란한 생활로 피폐해진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녀는 길을 나선다. 엄청난 무게의 배낭을 메고 PCT를 헤매고 야영을 하며 한 발자국씩 길을 채워나간다. 그 길에서 그녀는 일찍 죽어버린 엄마에 대한 사랑과 원망,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결핍, 전 남편에 대한 그리움, 자기 자신에 대한 파괴적인 마음 같은 것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며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그녀가 맞닥뜨린 고난들이었다. 물이 떨어진 채 수십 킬로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나, 작은 등산화로 발톱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들. 꽁꽁 얼어붙은 눈으로 덮인 길을 얼음도끼에 의지해 걸어 나가야 하거나 물리면 바로 죽는 방울뱀을 밟을 뻔했던 일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벗어둔 등산화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린 최악의 상황. 다양하고 치명적인 위기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긍정'과 '일단 앞으로 나아가기'였다. 긴급 상황을 대비한 여러 준비물과 기지가 상황을 좀 더 쉽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에 불과했고, 궁극적으로는 일단 앞으로 걸어갈 용기와 긍정에 대한 다짐들이 그녀를 위기 속에서 구원했다.


PCT를 걸으며 그녀는 함께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로부터 위안, 나눔, 동지애 같은 것들을 나누지만, 셰릴은 혼자 걷고 생각하기를 자처한다. 사람들을 먼저 보내거나 떠나면서 그녀는 이렇게 서술한다.

혼자 있는 것이 내게는 더 맞는 것 같았다. 외롭기보다도 오히려 내 진짜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하는 먹고, 자고, 걷는 일은 마치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혼자라는 맥락 안에서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타인이라는 변수가 제거된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살피고, 이해하며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셰릴은 그렇게 혼자, 자기 자신만을 동지로 삼으며 4,000km를 94일 동안 걸어 나간다.


최종 목적지인 오리건주 신들의 다리에 도착하자 그녀는 벅찬 마음과 함께 이렇게 서술한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 외에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없었다. 내가 정말로 해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충분했다.

미래에 대한 일들 앞으로의 계획에 우리는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 해냈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다가올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나를 충분히 느끼고 충만해지는 것. 그 자세야말로 한정된 시간의 인생을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셰릴과 함께 PCT를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독서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몸담은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업무 중 쉬는 시간 틈새에 와일드를 읽으며 하얀 설원과 푸른 숲 속을 거닐었다. 그리고 지금, 언젠가 배낭을 메고 길을 걷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 길에서 내가 만날 풍경들과 생각들을 점쳐보는 것만으로도 내 속에 무엇인가가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땀과 노력과, 근육통의 환상적인 콜라보로 이루어질 언젠가의 모험을 위해 오늘 하루, 바로 이곳에서의 삶도 잘 보내봐야겠다.


덧.

좋았던 문장.

-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 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 나는 엄마의 남은 유골을 입에 넣고 다 삼켜버렸다.

- 내 안의 나는 이제 강하면서도 겸손하다.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그 사슴처럼 이 세상에서 안전했다.

-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 말고는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멋대로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생각했어야 했는데.

- 그리고 그 길이 나를 산산이 부술지라도 다시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야생에서 어떤 것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 지금, 여기 이곳의 나

-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나는 도저히 내가 질 수없는 짐을 지고 가는 중이었다. 내 육체적, 물질적 삶이 감정적, 정신적 영역까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 언제나 그랬듯이.

- 일생에 한 번은 의지할 지팡이 하나 없이 어두운 숲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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