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의 순간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by Hongchic
나에게는 '각성의 순간'으로 여겨지는 몇 개의 기억이 있다.


가장 첫 기억은 중학교 2학년 영어시간. 식곤증 탓인지 눈꺼풀이 계속 감겨왔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졸음은 무섭게 나를 지배했고, 급기야 내 고개는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졸고 있는데, 갑자기 창자까지 흔드는 크고 날카로운 '탁!' 하는 소리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가지고 계셨던 막대기로 교탁을 힘껏 내리친 것이었다. (아마 나 말고도 여럿 졸고 있었나 보다.) 화들짝 놀라 깨어난 뒤, 졸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갑자기 또렷해진 정신과 시야에 나는 알 수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 이것이 나의 가장 첫 각성의 순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나는 또 한 번 각성의 순간을 맞이했다. 밤 11시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으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막고, 전공의를 처단하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계엄령을 기습적으로 포고했다. 국회의사당을 에워싸는 계엄군과 시민들. 그리고 계엄령 해제를 위해 담장을 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는 또 다른 국회의원들. 믿을 수 없는 이 순간들을 목격하며,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정치에 냉소하고 무관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각성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조의 정당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지? 현재 행정부를 장악한 권력에 의해 무슨 사건들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으며, 무슨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지? 텅 비워져 있었던 머릿속은 각성과 자조를 반복하며 이와 같은 질문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앞선 일련의 각성의 순간을 겪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스스로 나의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집어든 책이다. 그 제목과 서문에서 윤석열이라는 '나무'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개인적인 의견을 담은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의 정치와 권력에 대한 구조와 내재된 카르텔을 조망한 '숲'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윤석열 개인적인 기질 및 인간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어 있다. 그가 얼마나 비속하며 어리석은지. 그래서 충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여 부정 선거와 같은 음모론으로 왜곡해 버리는지에 대해 '알파 메일 침팬지'의 본능 연구까지 인용하며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러나 그런 비속한 사람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은 한국 사회와 정치 시스템의 이기주의, 권위주의, 카르텔에서 비롯됐다는 점 역시 꼬집는다. 자본이 점령한 언론사의 지배구조는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언론의 보도와 여론조사로 국민을 호도하고 실상을 은폐했으며, 정치를 '사업'으로 여기는 정치 업자들의 패권 장악이 그런 그를 국가 원수로 만들었다. 검찰 조직의 부패와 정치적 유착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수 없도록 상황을 미궁 속으로 처박히게 만든다. 엘리트주의에 물든 귀족정, 왕정 지향 세태가 일부 정치적인 세력에 의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국민을 개, 돼지처럼 여기는 지금의 환경을 조성했다.


1시간 회의에서 혼자 59분의 발언권을 사용하는 윤석열에게 충직한 직언을 올릴 국무위원은 없고, 모든 임명은 사적인 관계나 학연, 지연에 얽혀 있다. 이런 상황이 빚어낸 결과로 12.3 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마치 한 사람의 멍청함이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해프닝처럼 우습게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 잘못된 사회 인식에서 기인한 아주 큰 사건이며 또 다른 큰 사건의 조짐이다.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민주정치는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 나쁜 것이다.'라는 자명한 명제도 자본이라는 요인이 개입하면 너무 쉽게 산산이 부서진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대가로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하면, 몇 명이나 깨끗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옳지 않은 것을 너무 쉽게 용인할 수 있게, 옳은 것을 너무 편하게 포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논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돈으로 생존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12.3 사태를 통한 각성으로 나의 삶은 더욱 무거워졌다. 극복해야 할 것이 더욱 많아졌다. 인간으로서 세상을 사는 것이 더욱 괴로워졌지만, 한 편으로 눈이 밝아진 느낌이다.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하고, 경계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지러운 세태의 뿌리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나만의 시각을 정립하고 힘차게 행동할 다짐을 해본다. 무섭고 불편해서 피했던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하여 적어도 상식적이고 정상 범주에 있는 인간으로서 한 시대를 올바르게 살았다는 당당함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


덧. 기억하고 싶은 문장

- 포퍼는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질문을 다르게 제시했다. "사악하거나 무능한 권력자가 마음껏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권력의 제한과 분산이었다.

-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악을 최소화하는 제도다.

- 다수 민중이 마음을 먹었을 때 평화적 합법적으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으면 민주주의, 그게 불가능하면 독재 전체주의다.

- 아렌트는 그의 잘못이 '자기 머리로 사유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 비속해지면 악에 물든다. 스스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해야 비속함을 이겨낼 수 있다.

- 부족한 그대로, 서로 다른 그대로 친구가 되어 불완전한 벗을 관대하게 대하면서 나아가야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 국민은 이념적 균질 집단이 아니다. 국민은 복잡한 이질 집단이다. 민주주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신문을 보고 싶다.

-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데, 윤석열이 그런 경우다.

- 선거는 '기성복 고르기'다. 정치시장에는 맞춤복이 없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존재하는 정당 중에서 제일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정당, 제일 나아 보이는 후보를 선택하면 된다.

- 함께 나이 먹어가는 친구들한테 말한다. 나이 들면 지혜로워진다는 말을 믿지 말자고. 어리석은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고. 젊은이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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