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크라쿠프_음악을 들으며 울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6/30

by Hongchic
크라쿠프 - 올드타운 중앙 광장 - 피터&폴 성당 콘서트 - 올드타운 야경
아, 이걸 보러 내가 여기에 왔구나.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겼다. 오늘은 크라쿠프로 이동하는 날. 크라쿠프는 한국으로 치면 경주와 비슷한 지역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금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에서 미리 폴스키 버스를 예약했다. 오늘의 최대 미션은 폴스키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 것. 18kg짜리 캐리어를 끌고 이동해야 하므로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기로 했다.


호텔 리셉션에 물어 조식이 서비스되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여는 순간, 50년 된 호텔의 위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엄청난 분위기. 그 속에서 빵과 시리얼을 먹으며 나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1박에 4만원짜리 꿈. 이렇게 쓰니 왠지 좀 비싼 듯 한 느낌이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문이 열리자 예상치 못했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곳에서 밥을 먹으며,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철을 타고 폴스키 버스를 타는 곳으로 찾아갔다. 역에서 내려서 좀 헤맸지만 구글 지도를 따라 무사히 정류장에 도착했다. 착하게 생긴 브라질 청년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받고 20분 정도를 기다려 폴스키 버스에 탑승했다. 화장실이 있는 2층 버스다.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이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버스에 탑승하니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잠이 쏟아졌다.

폴스키 버스에 탑승! 휴. 무사히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간식이라도 챙길 걸.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그래도 물을 챙겨서 다행이다. 폴스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구매한 레몬 물로 허기를 달랜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며 고픈 배를 달랬던 게 기억난다면 뻥이다. ㅎㅎ 물을 마시며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으악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에 버스 터미널 화장실을 약 500원 주고 이용했다. 젠장 마시고 먹고 싸는 데도 돈이 드는 구만. 생존 자체가 돈이다. 쳇

유럽에서 가장 넓은 크라쿠프 중앙 시장 광장. 우측에 성모 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 올랑과 인사를 나눴다. 나와 동갑인 올랑은 헤드쿼터를 독일에 둔 메디컬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웃음소리가 기분 좋은 올랑과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고픈 배를 달랠 겸 밖으로 나왔다. 근처 코스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시나몬 롤을 먹었다. 기운을 차린 나는 크라쿠프 올드 타운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가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풍경과 어우러진 그들의 연주가 자꾸만 나의 지갑을 열게 했고, 나는 약 5,000원을 그들에게 기부했다.

자꾸만 지갑을 열게했던 거리의 악사들.

피터 앤 폴 성당에서 클래식 콘서트가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고 오늘 저 공연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래식 콘서트는 화요일, 금요일 그리고 주말에만 열리기 때문에 내가 정한 일정 상 오늘이 아니면 영영 볼 수 없게 돼버린다. 맥도널드에서 샐러드를 먹으며 아낀 돈으로 클래식 콘서트 티켓을 구매했다. 티켓을 구매하는 순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공연장에 20분 전에 도착해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저녁값을 아껴 성당 클래식 콘서트 티켓을 구매했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피아노, 바이올린 1,2,3,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펼치는 성당 연주회는 기대 이상이었다. 차가웠던 공간을 악기의 현에서 비롯된 소리가 가득 메웠다. 연주자들은 에너지를 힘껏 발산했다. 음악을 들으며 울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 이걸 보러 내가 여기에 왔구나. 너무 기쁜 나머지 내 존재에 대한 감사함이 마음에 흘러넘쳤다. 난 즐거움을 위해 태어났구나. 더 즐겁게 살아야지.

성당 클래식 콘서트의 피날레 곡. 아, 이걸 보래 내가 여기에 왔구나.

바울 궁전의 야경을 끝으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약 1.5km를 걷는 동안 성당 콘서트 넘버 중 하나였던 비발디 사계: 가을 3악장을 들었다. 이토록 충만한 가을이라니. 지금의 기억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 같다. 이 곳에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이 기대된다.

밤이 되자 더 아름다웠던 크라쿠프 중앙 광장


덧.

올랑이 왜 한국 여자들은 화장 전과 후과 매우 다르냐고 물어보았다. 젠장.

나와 동갑이었던 인도네시아 친구 올랑. 나중에 한국식 화장을 꼭 해주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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