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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Jan 14. 2016

사실 난 우리 집을 좋아해

회사에서 무첨가 두유를 마시고 절대로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며 귀가를 했다. 그러나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풍겨오는 꽁치 김치찌개의 냄새는 조금 전까지의 결연한 맹세를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다. 그렇게 오늘도 난, 나와의 약속을 어겼다. 다 엄마 때문이다.

아련한 무첨가 두유의 추억... 이것만 마셨다면 분명 뱃살이 빠지고 있었겠지

집이 좋다. 엄마가 개비해준 극세사 이불에 폭 들어가 버둥거리면 약 45억 살 먹은 지구가 그냥 다 내 것 같다. 퇴근하고 대문을 열었을 때, 거실에서 아빠와 엄마가 양손을 열렬히 흔들어주고 있으면 종일 탈탈 털려 텅 비었던 나의 불쌍한 자아도 금세 살이 차 오른다.

뭐든 한글자 씩은 꼭 틀리게 말하는 우리 엄마 & 슬랩스틱 개그를 구사하는  우리 아빠 

집에는 응석만 부리면 떨어진 단추나 헐거워진 고무줄을 순식간에 해결해 주는 할머니가 계시고, 아무 이유 없이 '똥꼬', '못 생긴 애', '멍청이'라고 헐뜯을 수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리고  청소하는 아내가 안타까워 바닥의 작은 먼지까지 손수 허리 숙여 주우셨던 다정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밥을 잔뜩 먹었더라도 엄마표 국수는  또 먹을 수 있징!

나는 나가서 놀길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집을 좋아한다. 아마 어딜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순간 맛보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너무 좋아서 자꾸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는 것 같다. 집이 최고다. 우리 집이 최고다.



아, 근데 김치찌개는 왜 처먹었을까.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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