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누군가와 함께 한 여행을 좋아해
친구 M이 일러스트 이미지를 메신저로 보내왔다.
제목은 '어서 오세요, 안동'. 이미지에는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 안동의 관광지가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
M: 홍식아 얼마 전에 발견한 일러스트야. 우리랑 코스가 같아서 소름 ㅎㅎ
엇, 정말이었다. 그림에는 3년 전 이맘때쯤, 나와 M 그리고 Y가 함께 떠났던 여행 코스가 모두 담겨 있었다.
홍식: 우와 대박~ 우리 코스 되게 잘 짰다 그치 ㅎㅎ
M: 응 저게 알짜 배기였나 봐
홍식: 안동도 다시 가고 싶다. 찜닭 골목의 찜닭, 정말 멋졌는데~
M: 맘모스제과도 짱! 찜닭도 역시 안동~
홍식: 응! 그리고 그 여관.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정말 여관 ㅎㅎ
M: 진짜 쌌지만, 정말 추웠어~
홍식: 맞아 ㅎ 재밌다~ 같이 갔다 오니까 얘기할게 많아져서 좋네~
우리의 대화는 다음 달에 휴가를 내고 또다시 같은 여정을 함께하자는 약속으로 마무리됐다. 아마, 목적지는 부산 정도가 될 것 같다. 3년 전,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갔던 추억을 되새기며.
나는 종종 겉멋을 부리며, '혼자 하는 여행도 괜찮아'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난 누군가와 동행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2인분이 기본인 음식을 부담 없이 시킬 수 있다든지, 인증샷을 전신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든지, 뭔가를 결정 내리는 데 좀 더 수월하다든지 등의 실용적인 사유도 일부 인정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행의 추억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행지의 기온, 바보 같은 실수, 독특했던 음식의 맛,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했던 대화. 이런 것들을 동시에 경험하고 평생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함께 하는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매해 12월 2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왜냐면, 내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ㅋㅋ) 모바일과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지인의 생일에 특별한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생일자의 SNS에 축하 메시지를 남기는 것.
생일날 아침, 나는 저 흉측한 사진을 나의 페이스북 홈에서 발견했다. 저 사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7년 전 유럽여행 중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친구 U가 도촬 한 (아마?) 것으로, 내 기억에 저 시뻘건 선글라스도 흰 눈에 너의 눈이 부실 수 있으니 이걸 쓰라며 U가 직접 빌려줬던 것이다. U는 저 사진과 함께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저때 저 선글라스 엄청나게 쿨 해 보이고 우리가 패션을 선두 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거 같은 아이템이 되어버렸어
패션을 돌고 돈다잖아. 십 년 뒤에 저 촌스런 선글라스는 다시 또 유행이 될 거고 다른 관점에선 우린 유행을 먼저 앞지른 트렌드세터가 되는 거야. 나이를 먹어가면서 드럽고 추하고 짜증 나는 꼬라지를 많이 보더라도 시대를 한 발짝 앞지른 트랜드세터처럼 넘겨.
홍식아 내년에 니 생일에 로마로 젤라또 또 먹으러 가자. 그때는 내가 니 생일선물로 사줄게. 니가 내 21살 생일에 해준 것처럼 나의 식이 알라뷰 오늘 나와 동갑이 된걸 축하헌다.(사실U는 나보다 1살 언니다. 그러나 빠른이라 우리가 태어난 해는 같다. 그러면서 언니 대접은 다 받으려고 한다. 흥칫뿡이다!)
처음 저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발견했을 때, 현재 호주에서 유학 중인 U를 당장 찾아가서 세게 한대 때려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그녀의 메시지를 읽으며 자존심 상하게 눈물을 몇 방울 훔치고 말았다. (진짜 몇 방울이다. 나는 저런 거 가지고 질질 짜는 사람은 아니다.) 당시 유로화 환율은 1유로에 2,000원을 호가했고, U와 나는 쫄쫄 굶으며 여행하다 결국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말았다. (나는 7kg/ U는 10kg을 감량) 여행 중 그녀와 나는 길을 잃고 낯선 버스 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기차에서 만난 사기꾼에 벌벌 떨기도 했으며, 굶주림에 못이겨 박물관 관람 대신 피자 두 판을 택해 한 방에 아작 내기도 했다.
살면서 더 많은 추억을 더 많은 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 눈이 쏟아지는 한 겨울의 제주에서 M과 먹었던 농심 새우탕.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보기 위해 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멈춰섰던 통영 가는 버스 속 B와 나. 여동생 홍나와 신기해했던 사람 수보다 동물 수가 더 많은 전주 동물원. 기사 아저씨, 나, 그리고 J 무려 세명이 헬맷도 없이 탔던 세부의 오토바이. 기차 옆자리에 잘생긴 남자가 앉으면 이기는 내기를 했던 윰과의 담양 여행 등등. 건조한 나의 삶에 가습기 같은 기억들. 그리고 이런 기억과 동시 생각나는 소중한 이들이 있어 참 좋다:)
+
새벽녘, 내가 잠든 호텔 방 초인종을 눌러 서프라이즈를 해줬던 B와 함께한 대만.
나이와 하는 일이 달라도, 그리고 딱딱한 사회에서 만났어도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줬던 라오스팀.
등등등등등등등등등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는 '함께한 여행' 전부를 담지 못해 미안하다ㅠ 그렇지만 모두가 내 마음속에서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