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다페스트_부다페스트의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15/30

by Hongchic


야경 투어: 겔레르트 언덕 > 국회의사당 > 어부의 요새


야간열차는 쉣이었다! 쉣!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온갖 버스와 숙소, 기차, 항공권 바우처 중 희한하게 야간열차 바우처만 프린트를 하지 않았고, 쿠트나호라 열차를 타면서 e-ticket에 문제가 없어서 야간열차도 e-ticket으로 해결될 줄 알았다. 근데 웬걸. 차장이 갑자기 나에게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 일단 알겠다며 열차에 탔지만 불쾌해진 나는 열차에서 차장에게 따져 물었다.


“돈 다 냈잖아요. 여기(e-ticket) 내 이름도 있고 QR코드도 있으니까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뭐가 문젠거에요?”

“e-ticket은 ticket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면 돈을 더 내세요!”

“이해가 안 가요. 관련 규정이 있는 문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계속 extracharge를 요구하면, 한국 대사관에 연락하겠습니다.”

(대사관에 전화한다는 말에 살짝 움찔하며) “확인해볼게요. 기다려요.”

(잠시 후) “체코는 QR코드 리더기가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 그냥 타고 가세요”

읭? 아니 QR코드 진작에 찍어봤음 되잖아요? 제 신분이 의심되면 패스포트를 확인해보고요.

밤새 불편했던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

불쾌한 기분으로 탑승한 야간열차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아주 작은 성냥갑에 나와 세명의 인도 남성이 함께 들어갔다. 그들은 아주 멋졌다. 매우 젠틀했으며, 아주 깔끔했다. 그들과 같은 칸을 사용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열차에서 눈을 뜰 수 없었다. 너무 좁은 공간이 눈에 보이면,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한국에 있는 나의 방을 상상했다. 약간 어질러진 책상과 화장대, 그리고 1인용 침대가 놓인 내 방.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내가 서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되다니.

아주 협소한 4인용 쿠셋. 자리가 있었다면 1인실을 예약했을거다. 돈과 산소를 교환함.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부다페스트. 대충 신발을 신고 나갈 채비를 했다. 밤새 여권과 돈이 든 가방을 암탉처럼 품고 잤더니 온 몸이 다 아프다. 어제 그 난리통에도 야무지게 세수와 양치를 하고 잠옷 바지를 갈아입었다. 그 말인즉슨 뭐 하나 바른 것 없이 얼굴이 매우 깨끗하다는 것. 쌩얼로 부다페스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나의 차림은 워커에 잠옷 바지를 입은 채 항공점퍼를 착용한 상태. 거기에 쌩얼과 기름진 머리까지 장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습이다.

갖은 홍역을 다 치루고 도착한 부다페스트 중앙역.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 엉엉 울고 싶었다.

빨리 호스텔에 도착해 씻어야겠다는 계획도 무산됐다. 호스텔에서는 두시부터 체크인이 된다며 짐을 맡겨놓고 두 시에 오라고 한다. 으어. 일단 근처 KFC에 자리를 잡고 어디에서 환전을 할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이 오전 열시니까 환전을 하고 점심을 먹고 호스텔에 들어가 샤워를 하면 돼’

이렇게 계획을 짜고 환전소에 들렀다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아 나섰다. 밤새 했던 고생이 무색하게 무척 날씨가 맑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내가 들어간 곳은 뷔페. 오늘은 먹고 죽을 거다. 샐러드부터 고기까지 배가 터지도록 퍼다 먹었다.

맑은 날씨 덕분에 어젯밤 설움 극복.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라니.
큰 맘먹고 들어간 뷔페. 이것 저것 잘 퍼다 먹었다.

두시에 딱 맞춰 체크인을 했다. 드디어 씻을 수 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했다. 오늘은 부다페스트 야경 투어가 있는 날. 화창한 날씨가 아까워 잠시 고민하다 야경 투어가 있는 오후 6시 30분까지 눈을 붙이기로 했다. 꿀잠을 잤다 쿨쿨.


자고 일어나니 감기가 도진 듯 몸이 더 무거워졌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방을 나섰다. 마치 월요일에 출근하는 느낌. 가기 싫다. 그렇지만 미리 결제한 투어 비용이 아까워서 만나는 장소로 향했다. 차량 투어니까 괜찮을 거라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차량 투어 만남의 장소 근처에 있는 관람차.

야경투어는 꽤 좋았다. 좋은 포인트를 쏙쏙 골라 차량으로 이동하고, 가이드님이 인생 샷도 많이 찍어 주시고 관련 설명도 풍부하게 해주셔서 재밌는 세 시간을 보냈다. 같이 투어를 받은 은서 씨와 친해져 다음날 온천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힘들고 피곤했지만 야경을 보며 이 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의 야경도 아름다웠지만,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곳에 힘들게 도착해서 그런 것일까?

국회의사당. 잘 보면 하늘에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보인다.
어부의 요새에서 가이드님이 찍어주신 사진.
부다페스트는 밤의 도시다.

작은 위험과 어려움도 있지만 그만큼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장기 여행.

나중에도 계속하려면 체력관리를 해야겠다.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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