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20/30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B코스
역시 오전 8시 40분 버스는 힘들었다.
아침 6시 30분에 기상.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고작 하룻밤을 묵었을 뿐인데 이렇게 챙길 것들이 많다니... 내가 부스럭 거리는 통에 룸메이트는 연신 잠을 설친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서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이제 버스 터미널에 가는 트램을 탈 차례. 저 트램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타고나니 반대로 간다. 무거운 짐을 끌고 한 정거장 뒤에 내려서 다시 반대 방향에서 트램을 기다렸다. 북적대는 아침 시간 20kg짜리(18kg->20kg으로 레벨업) 캐리어는 재앙이다.
짐을 끌고 트램에 다시 올라타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405번 플랫폼에서 무사히 플리트비체에 가는 버스를 확인하고 트렁크에 짐을 싣었다. 짐 값은 10쿠나.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만원이다. 이제 약 세 시간 동안 열심히 버스를 타면 된다. 눈을 좀 붙일까 했지만, 창 밖의 풍경이 아름다워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배가 고파져 간식을 꺼내 먹었다. 이제 요령이 좀 생겨서 이동 시간이 길거나 끼니때 가까운 시간에 버스를 타게 되면 전 날 미리 먹을 걸 챙긴다. 한국에서는 입에도 안 댔던 초콜릿, 사탕, 초콜릿 우유 같은 스위트 한 것들이 내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 있다. 버스는 중간 정류장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플리트비체에 도착했다.
오늘 나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안에 있는 호텔 벨뷰에서 묵을 예정이다. 국립공원 안에는 호텔 벨뷰 이외에도 호텔 예제로, 호텔 플리트비체 이렇게 총 세 개의 호텔이 있는데, 이 곳에 숙박할 경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하루 더 입장할 수 있도록 1일 티켓에 스탬프를 찍어준다. 나는 호텔에서 스탬프를 받아서 총 이틀을 공원에서 보낼 계획이다.
인터넷에서 호텔 벨뷰는 후기가 갈리는 편이었는데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실 그동안 호스텔에서 지내며 여러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다 나만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에 대해 감격한 게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후기와 달리 리셉션 직원은 아주 친절했고 더군다나 내가 배정받은 방은 무려 베드가 세 개짜리였다. 어떤 침대에서 잘지 코카콜라 맛있다를 해야 할 지경. 일단 체크인 시간 전까지 나는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공원으로 향했다.
플리트비체 티켓 오피스에서 표를 구매하고, 어떤 코스로 트래킹을 할지 살펴보았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갈 때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갈 때의 풍경이 다르다고 한다. 오늘 선택한 코스는 하류에서 상류로 향하는 B코스.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코스는 호텔 스탬프를 이용해 내일 탐방하면 될 것 같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시작 지점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서 자그레브에서부터 포장해온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먹었다. 먹는 중에 빵조각이 떨어지면 산새가 날아와 조각을 물어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더 많은 빵 부스러기가 떨어지도록 더 게걸스럽게 먹었다.
셔틀을 타고 하이킹 시작. 너무 멋진 풍경에 나는 두세 걸음을 걷고 나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초록빛 에메랄드 색 폭포와 호수들 그리고 떨어진 기온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들 거기에 파란 하늘. 이 모든 것들의 조화가 내 시선을 훔쳤다. 길을 가던 외국인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쉬엄쉬엄 트래킹을 즐겼다.
혼자 여행하며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을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있을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이름난 명소라도 감흥이 없는 곳은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한 마디로 그냥 모든 여행을 마이웨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을을 만끽하며 걷는 바람에 평균 4시간 정도 걸린다는 코스를 무려 6시간 동안 걸었다. 갑자기 아침 8시 40분 표를 강매한 터미널 직원이 고마워진다. 그래 단점이 하나면 장점도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
B코스를 완주하고 호텔로 향했다.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소녀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나와 함께 오르막 길을 오르고 있었다. 뭔가가 궁금한 모양인 듯 그녀는 나에게 쭈삣쭈삣 다가와서 휴대폰이 방전됐다며, 영어로 시간과 길을 물어보았다.
“Excuse me. What time is it now?”
“About 4pm. Do you have a problem?”
“My cell phone is about to dead. Do you know the way for the station 2?”
“May be… I think here is station 2?”
“Oh! really? where are you come from?”
“I’m from Korea.”
“아! 한국 분이세요?”
드디어 베일이 벗겨졌다. 영어로 신나게 대화하던 우리는 둘 다 한국인이었던 셈. 그녀는 21살 휴학 중인 학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나는 호스텔 셔틀버스를 타는 지점까지 그녀를 데려다주고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하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영어 회화 학원 같았던 재밌던 상황. 씩씩하게 혼자 다니는 그녀에게 늘 행운이 따르길.
호텔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자그레브에서 준비한 오렌지와 과자, 빵, 맥주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얼마만의 독방인 것인가.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기념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밤이 깊어지자 호텔 주차장으로 나가 별빛 샤워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헤라클레스 자리가 이 곳의 밤하늘에서는 아주 잘 보인다. 오늘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별 빛, 거기에 독방까지 모두 힘나게 하는 것들과 하루를 보냈다.